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화월 Dec 26. 2020

내가 내가 아니게 되었다. _낯선 나와의 만남

나를 돌보기 시작하다

[혀 끝에 가시가 돋아나다]


지난날을 떠올려 보니 사람들의 말에 의무적으로 반박을 해야 한다는 강박에 갇힌 듯했다.

'그건 아니야'를 외치며 잔다르크라도 된냥, 불합리한 사람들 속에서 나 홀로 이로운 세상을 이끌어 나가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어리석은 날이었다.


불합리한 상황에 '아니다'란 목소리를 낸 것을 후회하는 게 아니다. 그저, 그 불합리함에 대한 대처가 좀 더 지혜롭고 현명하게 대처는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다. 나 혼자 반박해 화를 내고, 나 혼자 사라지는 그런 게 아닌. 모두와 함께 이 상황을 바로 잡고 헤쳐나갈 수 있는 길 말이다.


선배들이 말했다. 프리랜서인 나는 목숨줄이 달랑달랑 매달려 있는 것과 같아 처신을 잘해야 한다고. 그 말이 나에게는 윗사람의 말에 무조건적인 복종을 하라는 것처럼 느껴졌다. 실제로 그런 윗사람들을 많이 만나봐 왔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게 느꼈다.


말이 안 되는 요구에도 모든 걸 들어주는 그런 사람들을 보며 나는 경멸의 시선을 보냈다. 실제로 경멸까지는 아니나 함께 하고 싶지 않았다. 그게 가능했던 건 그 당시에는 삶의 무게를 지금처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시에 나는 그런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을 증명하려 불합리하다고 생각되는 모든 이야기에 NO! 를 외쳤다. 혹은 그 말을 돌려서 무시했다. 그리고 고고한 학처럼 세상을 살아가려고 했다.


그런데 이런 버릇이 일상생활에서도 스며들었다. 나와 의견이 다른 이야기에 어느새 NO! 를 외치고 있었다. 편한 사람들에게는 혀에 가시가 돋친 것처럼 못된 언어들이 쏟아져 나갔다. 친한 친구가 회사일을 상담하며 자신은 열정이 없다고 했다. 그저 돈만 벌고 싶다는 말에 나는 경기를 일으키는 아이처럼 네가 그래서 안 되는 거다. 나는 그런 사람이랑 일하기 싫다. 루팡이다는 말을 던지며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과연, 내가 그럴 자격이 있었을까? 좀 더 좋은 말로 이야기할 수는 없었을까? 하는 질문이 나를 감싸 안았다.


나중에야 알았다. 우울증이란 병이 나에게 스며들어왔고, 나는 감정이 컨트롤되지 않았고, 좋은 말로 세상을 살다가 어느 순간 못된 언어들이 내 입을 감싸고, 그걸로 나는 또 괴로워했다는 것을. 나는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생각하기 시작했다.



[과거의 나는 웃음이 헤픈 사람이었다]


걱정이 없어 보여. 너는 늘 행복하구나.

사람들이 나에게 던지던 말이었다. 나는 불어오는 바람에도 늘 웃음이 떠나지 않았었다. 행복해서 웃었던 건지는 모르겠다. 그냥 웃음이 절로 나왔다. 사람들의 농담에도 늘 웃었고, 눈치를 보지 않았다. 그저 '좋은 게 좋은 거지'라는 마음으로, 내 주변 사람들이 모두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세상을 살았다.


어렸을 때는 뭐든 내가 먼저 챙겼다. 지인의 생일, 기념일. 먼저 만나자고 연락을 하고, 식사를 대접하고, 대부분의 돈을 내가 내기도 했다. 그것은 그저 좋아서 한 행위였다.  주변 사람들의 부탁을 거절하지 않았고, 고민을 함께 나누고, '의리'란 이름하에 주변 인들을 먼저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러면 안 되는 거였다.

그것이 나를 갉아먹었던 거다. 나는 나를 잘 알고, 내 마음을 잘 돌본다고 생각했지만 실상은 달랐다. 가장 중요한 나를 돌보지 않았던 것이다.



[왜 이렇게 됐을까? 나는 생각해봤다]


못된 내 모습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부인하고 싶었다. 하지만, 부인하면 할수록 나는 나를 갉아먹고 있었다. 나는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


'그래, 나는 지금 못났다. 패배주의자. 한심한 모습을 하는 내가 싫어.

나는 왜 이렇게 됐을까?'


곰곰이 생각해 봤다. 과거의 웃음이 많던 나는 그저 과거일 뿐이었다. 지금은 웃는 일이 없었다. 내 스스로 생각했을 때도 언제 웃었던가 생각을 뒤섞어봐야 할 정도로 기억이 나지 않았다.


어느 날, 갑자기 이렇게 된 게 아니다. 그동안 써왔던 글들에 적었다시피 믿었던 사람들의 배신으로 인해 사람에게 지쳐갔고, 또다시 믿음을 행했지만 다시 무너졌다. 내 평생 생기지 않을 것이란 사건들도 나에게 생겼었다. 그런 일과들이 오늘날의 나를 만든 것이다. 만약, 나 자신을 먼저 돌봤다면 이런 상황에서도 일어났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니었다.

결국, 나 스스로를 돌보지 못해 벌어진 거다. 이 못난 모습은.


그리고 동시에 현실에 눈을 떴다. 더 이상 나는 꿈만 좇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됐다. 현실을 살기 위해서는 돈이란 강력한 무기가 필요했다. 그제야 선배들이 했던 이야기들이 마음에 들어왔다. 나를 고용하는 사람들에게 잘 보여야 한다는 것을. 그것을 깨달음과 동시에 윗사람에게 눈치가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이것 또한 잘못된 것이라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런 모든 것을 생각하자 마음이 차분해졌다. 나를 지키면서 나를 표현하는 방법을 고민해 보기로 결심했다. 구름처럼 두둥실 떠돌아다니던 것을 하나로 엮어가 보려고 한다. 앞으로의 글들은 나를 찾아가는 여정이 될 것이다. 부디 그 결과가 웃음으로 끝나기를 바란다.



[나를 돌보기 시작하다]


첫 번째로 어떤 걸 바꾸면 좋을까 고민했다.

생각? 생각은 생각보다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동안 내가 노력해봤지만 쉽지 않았다.

습관? 습관도 결국 생각과 행동의 결합이 아닐까. 이 또한 단기간에 바꾸기 쉽지 않다.

적어도 지금의 나에게는.


그래서 나는 예쁜 말을, 긍정적인 언어를 쓰기로 결심했다. 부정적인 단어를 자제하고 칭찬과 행복감이 담긴 말들을 내뱉어 보기로 했다. 그러다 보면 생각도 점점 긍정적인 게 자리 잡지 않을까?


하루아침에 달라지는 게 아닌 가랑비가 스며들 듯, 나의 일과 속에 스며들어 결과적으로 내가 바뀌기를 바란다. 나를 돌보는 하나의 방법이 되길 바란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는 말을 나는 믿는다. 그로 인해 결과적으로 내 안의 내가 더 고운 사람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부디 이 여정을 잘 마칠 수 있기를.


첫 스타트가 좋은 결과가 되어 나타나기를 나 스스로에게 간절히 바란다. 그래서 현실적이면서도 다시 웃음이 맑은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사람들에게 이런 힘든 일이 있었지만, 결국 나를 지켜냈어. 나를 돌보는 데 성공했다고 이야기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