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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드는 사람의 두 세계

아티스트 웨이 12주 워크숍 중간회고

by 두두


첫 정규직 직장에서 2년 정도 다녔을 때, '나만의 길'을 만들고 싶은 갈증이 무척 심해졌었다. 이 '나만의 길'이라는 게 도대체 뭘지, 그렇다면 지금 가는 길은 왜 '나만의 길'이 아닌지, 내가 생각하는 그 길은 어디로 향하는 길인지 알고 싶었다. 그래서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들으면 똑똑해지는 라디오(듣똑라)'에서 진행하는 일 태도관련 워크숍을 들은 적이 있다.


내가 생각하는 '일'이란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 정말 솔직하게 대답했다. 유치해보일 수도 있지만 일이란 '두근두근 설레는 마음이 드는 일을 만드는 것'이라고 나만의 정의를 내렸었다. 이 두근두근 설레는 감정에는 살짝의 긴장감도 감돌고 마치 모험을 시작하기 직전에 기대감에 부푼 어린아이같은 마음을 내포하고 있다.






어린이라고 하는 관점은 단순히 물리적인 나이뿐 아니라, 무엇인가에 대한 기대에 두근거리는 심성과 모든 것을 받아들일 때 긍정적이고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마음. 즉 어린이의 순수한 속성까지 포괄하는 것이다.

그림책 작가 한성옥




워낙 활동적인 성격이라 퇴사 이후 쉬는 시기에도 사람들을 많이 만났었지만 최근 들어서 조금 달라졌다.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들며 사람들 사이에서는 가끔 수줍어하기도 하는 어린아이 같은 나의 면이 돌아온 것이다. 어렸을 때 내향적이어서 친구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혼자 인것이 늘상 아쉬웠다. 외롭다고 생각했다. 점차 커가면서 MBTI에서 E가 나왔지만 여전히 내 안에는 혼자 있는 어린아이가 있다. 이걸 부정하지 않기로 했다. 안아주기로 했다. 이 아이는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간직하고 포장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여전히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도 쓰기도 하지만, 글쓰는 시간 자체를 소중하게 여기고 글에 몰입해서 쓰는 시간 자체가 즐거워서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는 글도 쓴다.







어릴 때는 세상의 정보를 받아 내 것으로 만드는 과정에 방해물이 훨씬 적었다.
우리는 원래 자유로웠으니까

릭 루빈,『창조적 행위: 존재의 방식』, 20




'나만의 길'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던 요즘 생각지도 못한 기회가 찾아왔다. 먹고사니즘에 대한 고민을 잠시나마 풀 수 있는 기회였다. 창작을 하고 내 세계를 보여주고자 노력 중이었지만 어딘가 모르게 불안감이 깔려있었다. 무언가 생산적이고 결과가 바로 바로 나오는 걸 해야할 것 같은데 그렇지 못한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마감 기한 없는 나만의 레이스를 완주 해나가기에는 내 안에, 검열이 심한 사감 같은 목소리가 늘 말했다. 이걸로 되겠냐고.


그러던 차에 1년이 채 안되지만 회사에 들어가서 새로운 일을 배울 수 있게 되었다. 다음 달부터 먹고사니즘, 자기 효능감, 그리고 사람들과 함께 일하며 에너지를 얻을 생각에 기쁘다. 그리고 사실, 무엇보다도 '나만의 길'을 위한 여정을 조금 더 깊고 오래 생각할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서 감사하다.


어쩌면 지금 당장 내게 필요한 것은 단 한 갈래 길에 서서 혼자만의 세계를 만드는는 게 아니라 세상에서 필요한 일을 배우고 외부의 세계와 내부의 창작자로서 두 세계를 다 오가는 통로일지도 모른다. 이 두 세계 사이에서 갈팡질팡 할 것이 아니라 리듬감 있게 오갈 수 있는 유연한 웜홀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일생에 걸쳐 훌륭한 작품을 계속해서 만들어내는 예술가는
아이의 모습을 잃지 않는다.

릭 루빈, 『창조적 행위: 존재의 방식』, 21



어린아이일 때는 아무것도 재지 않고, 효율을 따지지도 않는다. 이 어린아이를 잃지 않기 위해서 내가 해야할 일은 무엇일까? 계속해서 읽고 쓰고 만들고, 세상에서 나에게 주는 경험들을 마다하지 않고 겪는 것이다. 분명히 이 경험들은 한 곳으로, 마치 블랙홀처럼 아이디어가 모일 것이다. 그 지평선 너머 어떤 창작이 기다릴지 모르지만 끝까지 마음 가는대로 '창조적 행위'를 하려 한다.


손을 붙잡고 내 안의 어린아이와 다 커버린 내가 화해해서 두 세계를 모두 잇는 다리를 만들자. 빠르게 디지털화되고 복작거리는 어른의 세계에서 나만의 세계, 마치 어렸을 적에 의자에 천을 얹어서 텐트를 만들어 놀던 것과 같은 우주를 만들자. 손으로 만들고craft 만지는feel 세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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