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학교에는 '테크노파크'라고 하는 몇몇 산학협력 기업 직원들이 상주하고 있는 건물이 있다. 일반 직장인들도 있어서인지 건물이 세련되고 학생회관과 다르게 점심 메뉴도 매일 다르다. 교수님이나 교직원 분들은 주로 여기서 식사를 하시는데, 학생들도 가끔 4,200 원 짜리 식권을 끊어서 먹곤 한다. 나는 직장인도 학생도 아니지만 테크노파크에 가는 것이 가끔 설렐 때가 있다.
오늘은 점심 메뉴로 고등어조림이 나왔다. 고등어조림을 잘 사 먹진 않지만 반찬으로 나오면 가리지 않는다. 젓가락으로 살을 갈라 가장 큰 덩어리를 한 입 베어 물었다. 씹자마자 느껴지는 이 퍽퍽함, 빨간 양념이 살 안쪽까지 푹 배어있지 않고 양념의 질감도 너무 묽다. 조림이 아니라 뜨거운 물에 데쳐낸 고등어를 씹는 기분이다. 살을 조각내어 조림 국물을 충분히 적셔 먹었건만 그래도 밍밍하다. 이 고등어의 어두육미(魚頭肉尾)를 함께 비난할 식구(食口)도 없다. 싱거워진 나는 머릿속 깊이 배어 있는 짭조름한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갖은양념으로 오랜 세월 졸여진 생각들, 내가 누군가에게 반찬으로 주어진다면 내 몸 깊은 곳에서도 느낄 수 있는 특별한 맛에 대해서 말이다.
나는 열심히 살아왔다.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은 깎아내고 더 성장하기 위해 끊임없이 반성하며 살아왔다.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낯선 곳에 내던지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을 망설이지 않았다.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많은 것들을 흡수하고 뿌리를 깊이 내려 삶을 단단하게 만들고 싶었다. 20대는 그렇게 살아야 된다고 생각했다. 나에게는 가진 것이 없고 이룬 것도 없고 책임져야 할 것도 없다. 그 말은 잃을 게 없다는 것이다. 나의 육신을 해하지 않는 한에서 다양한 것들을 경험하고 기록하여 다채로운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왜 자신이 없을까, 열심히 살아왔다면 그것으로 충분히 자신이 있어야 하는데 이토록 겁을 먹고 있는 까닭은, 그들 입맛에 맞지 않을 것 같아서이다. 나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네가 그렇게 열심히 살아온 것은 알겠지만 그것이 널 뽑을 이유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그런 생각이 스스로 들기 때문이다. 내가 그런 생각을 품고 있으니 나를 바라보는 사람도 같은 생각이 들 것임이 분명하다.
방향성이 맞지 않다. 내가 지금까지 겪어온 일들은 PD를 하기엔 좋은 경험인 것 같다. 방송사의 입맛엔 잘 맞을 것 같고 자신감이 생긴다. 오히려 흥분돼서 스스로 자제해야 할 것만 같다. 하지만 제조회사의 품질, 생산관리, 생산기술 등의 직무는 내가 살아온 발자취가 가리키는 곳이 아니다. 나는 지금 옆 길로 새서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나를 바라보는 면접관의 입장에서는 의아할 것이다. 이 친구가 혹시 길을 잃었거나 처음부터 잘못 걸어온 것은 아닌가 싶을 것이다. 아무리 자극적인 양념을 칠해서 나를 숨기더라도,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입 맛에 맞지 않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저 밍밍하고 창백한 고등어조림처럼 말이야.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이럴 땐 명상을 하며 생각을 지워버려야 한다. 자신감을 높이기 위해 내가 해온 것들을 되새기며 나는 정말 열심히 살았어라고 다짐할 게 아니다. 차라리 찬물로 샤워를 하거나, 생각을 떨쳐내기 위해 머리를 세게 흔들거나, 양볼을 짝 때리면서 잠시나마 내가 가진 생각보다 육체를 활성화시키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이다. 사람들이 술에 취하면 나오는 자신감 같은 것 있잖아. 그게 정말 순수하고 강력한 자신감이다. 면접을 보기 전까지 훈련을 하고 있다. 파블로프의 개처럼, 숨을 깊이 들이쉬면서 고개를 가로 지으면 난 자신감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