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상대라던 야구단의 구단주가 되었으니 과거의 언급은 정말 과거가 됐다. 이마트 정용진 부회장은 정확히 2016년 8월 스타필드 하남 개점을 앞두고 "유통업의 경쟁 상대는 테마파크나 야구장이 될 것"이라며 체험형 유통 시대의 도래를 예고한 바 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나고 나서 전격적으로 SK 와이번스 야구단의 구단주가 됐다. 왜 정 부회장은 이마트의 경쟁상대가 테마파크나 야구장이 될 것이라고 언급한 것일까? 그리고 왜, 경쟁상대를 이겨보기도 전에 야구단 매입을 결정했을까?
'야구장'과 '놀이시설'을 벤치마킹 하세요. 그래야 소비자의 시간을 뺏아올 수 있습니다
그 답을 ‘고객’에서 찾을 수 있다. 고객을 생각하는 이마트 총수의 경영마인드에서 찾을 수 있다. 정용진 부회장은 2010년 주주총회에서 신세계 대표이사로 선임됐다. 대표이사 취임 후 첫 외부행사에 참석한 정 부회장은 신세계그룹이 나아갈 목표로서의 지향점에 대해 “항상 고객의 입장에서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물론 협력회사와 상생에도 앞장서 나갈 것”이라고 했다. 회사 총수로서의 원론적인 답변 같지만 여기에 관전 포인트가 있다. 바로 ‘고객’. ‘소비자 중심’을 언급한 것이다. 소비자가 ‘왕’이라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유통업의 미래는 시장점유율보다 소비자 일상을 점유하는 라이프셰어에 달려 있다. 물건을 파는 회사가 아닌, 문화와 예술이라는 가치를 선물하는 회사가 돼야 된다.” 정 부회장의 말이다. 고객의 24시간, 365일 일상을 함께 하는 신세계가 돼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따라서 소위 정 부회장의 어록을 통해 살펴본 유통업의 미래는 ‘고객은 소비자요. 소비자가 신세계에서 이용하는 시간’에 이마트를 위시한 신세계그룹의 미래가 달렸다는 것을 함축하고 있는 언급이다. 따라서 정 부회장이 경쟁상대인 야구장을 ‘쓱(SSG)’ 벤치마킹하라고 언급했던 것은 소비자들에게 주어진 하루라는 귀한 시간을 경쟁상대에게 뺏기지 말라는 주문이었던 셈이다. 소비자가 활용할 하루를 경쟁 상대에게 뺏기면 이마트가 ‘돈’을 벌어야 할 시간을 뺏기는 것과 동일하게 본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한 가지가 중요한 의미가 더 있다. 바로 소비자들의 ‘만족’이다. 야구장을 찾는 고객 입장에서 최고의 만족은 찾아간 그 날 자신이 응원하는 팀의 승리다. 경기를 참관하면서 먹는 치킨과 맥주는 응원하는 팀의 승리를 위한 스스로 선택한 ‘덤’이다. 이기면 기뻐서 한 잔 더. 지고 있으면 힘 빠져 한 잔 더. 소비자의 만족은 그래서 고객 ‘스스로에게 채워지는 자신의 선택과 그 결과’다. 스스로 야구장에 올 것을 선택했으니 응원하는 팀이 게임에 졌다고 해서 잘못된 일이 될 수 없다. 그러나 스스로 선택하는 대상을 이마트로 바꿔보면 얘기가 달라지는 대목이 생긴다.
필요한 것이 있어 대형 마트에 사러 갔는데 찾는 물건이 없으면 고객의 만족도는 떨어진다. 사고자 하는 제품이 있는데 비교 상품이 없어 판단이 모호해져도 대형 마트를 찾은 만족도는 충분하게 채워지지 않는다. 거기에 만약 제품을 찾고자 현장에 있는 스탭(STAFF)에게 물어봤는데 응대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대형마트를 찾은 ‘그 날’ 고객의 만족도는 야구장을 찾아 응원하는 팀이 진 것과는 다른 차원의 '불만족'이 생기게 마련이다. 이게 대부분의 소비자들이 가질 수 있는 인지상정의 보편적 정서다
(네이버지도 화면 캡처. 서정렬) 커피점이 집중되어 있으면서도 개별 점포의 매출을 고려한 의사 결정. '소비자들의 시간'을 뺏기 위한 기업의 '자본의 이동' 사례 가운데 하나다.
따라서 소비자들이 선택한 ‘시간’을 만족스럽게 만들어야만 유통업계가 비로소 경쟁상대인 야구장이나 테마파크를 이길 수 있다는 게 정 부회장이 강조하고자 하는통찰로서의 ‘인사이트(insight)’인 셈이다. 소비자들이 야구장이나 테마파크보다는 대형마트를 스스로 찾아오도록 만들어 ‘내가 대접받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간파한 것이다. 그럴 때 바로 ‘소비자 혁명’이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소비자가 소비할 때 ‘왕’이 될 수 있도록 돕는 게 유통업체의 생존전략이라고 힘주어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마트는 이제 야구장의 구단주다. 더 이상 야구장이 벤치마킹할 대상이 아니다. 상생의 파트너가 된 것이다. 야구장을 품은 유통 공룡 신세계그룹의 앞으로의 상생 방안이 어떻게 전개될지 소비자 가운데 한 명인 '내' 입장에서도 궁금해지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