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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들 Feb 21. 2022

"저런 직무도 있나"에서 '저런 직무'를 맡고 있습니다

제 직무를 소개합니다. 근데 이제 약간의 호들갑(?)을 곁들인..

Employee Experience Editor. 뭔가 싶으실 텐데 제 직무명입니다. 혹시 이런 직무 보신 적 있으세요? 이전 직장에서 기업 이야기를 다루면서 수많은 직업인을 만난 저조차도 이런 직무를 가진 사람을 만나본 적은 없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제가 손수 지은(?) 이름이기 때문이지요. 피플팀에서 글 쓰는 제 정체성을 보여주는 데는 지금 이름이 최선 아니었나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봐 나 작가야… 직원 경험 작가(?).

문제는 다른 이들에게 제가 무슨 일을 하는지 설명할 때 생기는데요. 대충 그림을 그려 보자면 이렇습니다.


(명함을 건넨다) "Employee… Editor?"
"네네. 인사팀에서 글 쓰고 있어요."
"인사팀에서 글을요?"
"뭐 각종 커뮤니케이션도 돕고 조직문화도 만들고.."
"아~ 그럼 인사 교육 같은 거네요?"
"아니 또 교육은 아닌데… 그냥 글 써요.." (얼버무림)


이런 상황이 거의 매번 있습니다. "기자입니다"라고 말하면 한 방에 해결되던 자기소개가 이제는 복잡해진 게 종종 짜증 나고 억울합니다. '왜 이런 직무를 뽑아가지고는..' 화살을 괜히 회사에 돌려보지만 뽑아 달라고 한 것도 저 자신이니 이내 미운 맘을 고쳐먹곤 합니다.

제 책상입니다. 작가의 필수템인 세로 피봇 모니터가 구비돼 있습니다.

이랬던 생각의 향방이 조금 바뀐 건 온택트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한 타운홀미팅에서 대표님 말 한마디를 들은 이후부터였습니다. 대표님은 ‘온택트 선생님’이라는 직무에 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온택트 선생님이라는 일이요. 과외나 학원에서 가르치는 것 하고는 또 다르잖아요. 비슷한 일 해보신 분 계세요? (일동 침묵) 없죠. 다른 일을 해 보고 왔어도 이 일은 쉽지 않아요. (중략) 여러분은 세상에 없던 일로 변화를 만들어 내고 계시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온택트 선생님 직무 체험을 하고 있던 당시의 저는 그 이야기가 제게도 적용된다는 걸 느꼈습니다. 제 일이 어디 가서 설명하기 어려웠던 까닭은, '세상에 없던 일'을 하고 있으니 어쩌면 당연한 셈이었습니다.


대표님 얘길 들은 후로는 괜한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듣는 이는 별 관심 없을 수도 있지만, 제 직무나 온택트 선생님 체험을 한 이야기는 물론이고, 회사 서비스에 대한 이야기를 쏟아 놓고서는 '세상에 없던 일'을 하고 있는 셈이라며 자랑 비슷한 걸 하게 되더라고요.

뭔가 멋드러진 걸 쓰는 것 같지만 사실 저녁 먹으러 어디 갈지 알아보는 중입니다.

사실 제 직무를 설명하기 가장 쉬운 방법은, 제가 지금 회사에서 하고 있는 일을 전부 다 읊어 내는 것입니다. 사내 뉴스레터 제작, 채용 콘텐츠 제작, 팀원 인터뷰 등 조직문화 콘텐츠 제작, 이렇게 써낸 콘텐츠들을 온/오프라인으로 발행, 비전 문서 등 조직문화 관련 문서 제작, 각종 조직문화 활동 기획 및 실행… 실컷 설명하고 나면 "회사에 글쟁이가 왜 필요한데?" 따위의 질문이 되돌아오긴 하지만, "그런 거 하는 구나.."에서 '그런 거'라도 이해시키면 다행입니다.


세상에 없던 일을 한다는 근거 미약한 자부심(?)으로만 일하는 게 버거울 때도 물론 있습니다. 처음에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행정적으로 놓치지 말아야 하는 일들도 몇몇 맡고 있고, 더 나은 조직문화를 만들기 위해서 덜컥 해보겠다고 나섰다가 후회 중인 일도 있고요. 그럼에도, 제가 하는 모든 일이 이 회사에선 처음인 일이고, 제가 쓰는 모든 글이 처음 만들어지는 콘텐츠라는 사실 하나 딱 붙잡고 열일을 다짐해 봅니다.


안토니오 마차도라는 스페인의 시인은 "길은 걸으면서 만들어진다"고 썼다더군요. 비록 꽃길은 아닐지라도 뚜벅여 보면서 길을 터 보아야 겠습니다. 저도 참 유난이지요. 언제 태어나서 언제 죽었는지도 모르는 스페인 아저씨가 끼적인 문장에서 힘을 얻고 있다니..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저를 긍정할 수 없기 때문일지 모르지만요. 언젠가는 제 문장에서 힘을 얻고 있을 누군가를 마주할 날이 올까요? 저도 훗날 한국의 이름 모를 아저씨(?)가 되겠지만, 일단은 써 보려고 합니다. 인생이 쓰니 계속 써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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