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tis Fortuna Adiuvat

첫 번째 논문 투고

by 명연재

Fortis Fortuna Adiuvat.

라틴어로 대담한 자에게 행운이 따른다는 뜻이다. 영어로는 Fortune Favors the Bold. 영화 <존 윅> 주인공의 등에 새겨진 문신이기도 하다.


평소엔 은둔자처럼 지극히 조용히 살던 그는, 소중한 것(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대수롭지 않은 것)을 잃자 납득하기 어려울 만큼 대담하고 잔인한 복수를 시작했다. 존 윅에게 시작은 곧 끝이었다. 그 끝이 행운이든 그렇지 않든 간에.


영화 <존 윅>의 스틸 컷


나에게도 뜻밖의 행운이 찾아왔다. 인생, 버티며 살고 볼 일이었다. 10월 말, CAC 논문을 저널에 투고했다. 큰 기대 없이 시작한 공동연구였는데, 1년 반 만에 세상에 내놓을 수 있는 첫 성과가 생겼다.(<제 17화, 무한 점찍기> 참조).


아이러니하게도, 첫 번째 성과가 될 거라 철석같이 믿었던 메타분석 논문은 교수님 책상 서랍에서 2년째 잠자는 중이었다. 그 녀석을 깨우려면 기적이 필요했다.


박사과정 3년, 준비한 생활비는 바닥났고, 이제 퇴직금마저 꺼내 쓰기 시작했다. 벌어 쓸 때는 몰랐는데, 통장 잔고가 바가지 새는 것처럼 줄어들었다. 아무리 마음을 다잡아도 소용없었다. 보이는 현실이 가슴을 무겁게 짓눌렀다. 나는 특별한 존재가 아닌 그저 평범한 가장일 뿐이었다.


며칠 전 둘째 아이 안경을 맞추러 갔다. 여기저기 둘러보던 아이가 불쑥 말했다.

"아빠, 여기 비싼 데 같아. 딴 데 가자."

학생 안경이 비싸면 얼마나 비싸다고. 그 순간, 눈시울이 붉어졌다. 사고 싶은 건 사주고, 먹고 싶은 건 먹이며 살아왔다고 믿었는데.... 아이가 우리 형편을 이미 알고 있었던 걸까? 늘 자기주장이 강하고 부모 마음은 잘 헤아리지 않는 고집쟁이인 줄 알았는데... 자격지심까지 겹치며 맹랑한 그 말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누굴 탓할 일이 아니었다. 신중하게 내린 선택이었고, 이미 지나간 일이었다. 다만 이번만큼은 냉정해야 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순 없었다.


논문을 제출한 뒤, 나는 고급 인력 채용 사이트인 하이브레인넷을 틈틈이 들여다보고, 앞서 이 길을 걸어간 선배 박사들의 조언을 귀담아 들었다. 애써 거부하던 현실, 이제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현재의 트랙을 그대로 밟아간다면, 교수는 어렵다."

황금빛 가을 들판을 배경으로 금의환향할 내 모습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건만, 이젠 내려놓아야 했다. 허황된 어사화(御賜花)와 거추장스러운 옷을 벗어던지고, 나는 다시 내 길을 찾아야 했다.


지난 3년 내 삶을 돌아보며 논문, 지도교수, 연구, 인맥, 임용 가능성, 연봉, 과거 경력 등, 모든 것을 냉정하게 따져봤다. 근거 없는 희망은 배제하고, 최대한 보수적으로 현실만을 기준으로 삼았다. 이 작업을 나는 변수(變數)의 상수화(常數化)라 칭했다.


Fortis Fortuna Adiuvat?

이 말은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았다. 내 선택은 대담할지 몰라도, 행운까지 닿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무지(無知)와 무모(無謨)함 위에 빛이 드리워지자, 감춰진 진실이 하나둘 드러났다.


첫째, 학위 취득을 마치고 교수 임용까지 앞으로 2년 걸릴지, 그 이상이 될지 알 수 없다. 그때가 되면 이미 내 나이 오십이 넘을 터였다. 가능성은 점점 줄어든다.

둘째, 생활비는 이미 바닥났다. 내년엔 큰아이가 고3이고, 이사도 해야 한다. 최저시급 수준의 강사 월급으로는 네 식구의 생계를 부양하기 어렵다. 조교수가 되더라도 이미 어려워진 가계를 회복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셋째, 현재의 연구 성과와 경력으로는 수도권 대학 임용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대전, 충청권 또는 강원권 정도가 현실적이다.


고민은 깊었지만 결론은 단순했다.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졸업 요건을 채워 박사학위를 받는다. 학교를 떠나 현장에서 새로운 길을 찾는다. 무엇보다 절대 게을러지지는 말자. 그리고 깔끔한 끝맺음을 위해 어떻게든 SCI 논문 두 편을 완성한다.


어느 날, 아내가 조용히 말했다.

"여보, 사실... 친구 따라 광명에 있는 아주 용하다는 점집에 갔거든.

무려 여섯 시간을 기다렸지 뭐야. 근데 그 점쟁이가 그러더라

당신, 공부한 걸로 교수도 되고 나중엔 사업도 크게 한다고.

우리 준이도 내년에 좋은 대학 붙는데.

그러니까 힘 내."


독실한 기독교인인 아내였다. 오죽 답답했으면 점집을 찾았을까. 아마 태어나 처음이었을 것이다. 나 또한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살 수 있는 심정이었다. 속 마음을 감추고 힘주어 대답했다.

"그래? 그럼 힘내서 더 열심히 해야겠네."


첫눈이 내리는 날, 나는 홀로 남한산성에 올랐다. 북문에서 출발해 동문, 남문을 지나 수어장대로 향했다. 길은 가파르고 햇빛도 잘 들지 않는 듯 축축하고 어두웠다. 전반 코스는 별다른 볼거리가 없어서인지 인적마저 뜸했다. 하지만 수어장대에 가까워지자, 구름이 걷히고 성곽 위로 햇살이 번져왔다.


쉴 새 없이 소곤대는 마음을 보며, 나는 성곽길을 따라 걸었다.


집에 돌아오니 뜻밖의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여동생 내외가 아이들을 데리고 가서 겨울옷을 사준 것이었다. 큰 아들은 긴 패딩 점퍼를, 작은 아들은 카드지갑을 골랐다고 했다.


얼마 전 아내가 엄마와 통화했다고 넌지시 말했던 기억이 났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고, 놀란 어머니가 물어보셨다고 했다.

"다희야, 너무 힘들면 얘기해라."

아마 이 일이 여동생에게도 전해진 듯했다. 한편으론 부끄럽고, 다른 한편으로 여동생 부부의 따뜻한 마음 씀씀이가 고맙기만 했다.


선물을 꼼꼼히 살피고 있는 둘째를 바라보며 물었다.

“너도 형처럼 겨울 패딩을 사지, 왜 카드지갑을 골랐어?”

“그냥, 이게 필요해서."

퉁명스러운 대답이 돌아왔다.

의아해서 다시 물었다.

“고모가 이왕이면 비싼 거 사라고 여러 번 말했다던데... ”

“그냐앙…"

둘째는 눈치가 말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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