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히이즈어메이징 Feb 17. 2024

그렇게 아빠가 된다,

January 1월

January 1월


어린 시절 나의 꿈은 막연하게 좋은 아빠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좋은 아빠는 무엇일까? 퇴근 후에 아이랑 즐겁게 어울려 잘 놀아주는 아빠? 아니면 맛있는걸 잘 사주는 아빠? 책 잘 읽어주는 아빠? 


20대 시절부터 막연한 꿈이었다. 


평소 친구들에게 자주 하던 말이 있었는데, "나는 결혼을 일찍 하고 싶다!"라고 말이다.

하지만 직장생활에 치여 사회에 문득 찌들어 있었을 즘을 돌아보니 어느새 30대 중반이 되어있었다. 

그 무렵 나는 생각했다. "혼자 사는 것도 나쁘진 않은데?!"하고 말이다.

그렇게 열심히 일의 노예로 살던 나는 "운 좋게도, " 직장동료의 소개로 아내를 만나게 되었다. 여느 부부가 된 사람들과 다를 것 없이, 연애를 하며 자연스레 결혼 준비를 하였다. 


우리 부부는 만난 지 1년여 채 안되어 속전속결로 결혼에 골인하게 되었다.


우리 부부는 항상 결혼전 하는 이야기가 있었다.

"우리 신혼기간은 1년만 갖자, 저금도 하지 말고 여행하는 걸로 지출하자."라고 말이다.

넉넉지 않은 자금으로 우린 전셋집을 마련하였고, 결혼 후 나름 국내외로 여행을 하면서 우린 즐겁게 살아가고 있었다.


여느 날과 다를 것 없이 퇴근 후 저녁식사를 마치고, 샤워를 하기 위해 화장실에 들어가 있던 나는 아내에게서  뜻밖의 소식을 전해 들었다.

아내는 요 며칠 배가 콕콕 쑤시고 당기기를 며칠째 반복하여 혹여나 싶어 임신테스트기 즉, 임테기를 한 결과 두줄이 나왔다는 것이다. 물론 처음에 장난치지 말라고 말한 나였지만 두 눈으로 확인하고 나니 뭔가 감회가 새로왔다.

아주 미세하지만은 확실한 두줄이었다. 늦은 저녁 한편으론 어리둥절한 채 설레는 마음을 가지고 맞벌이 부부인 우린 그 주의 토요일 산부인과를 방문하기로 계획하였다.

첫 임신테스트기 두 줄 확인.

누워서 잠이 들기 전, 와이프에게 말을 했다.

"여보, 우리 이제 혼인신고도 하러 가자.!"라고 말이다. 우린 요즘 흔히 보이는 맞벌이 부부이다. 두근거리고 설레는 마음을 가득 지니며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우린, 여느 부부들과 같이 치열하게 살아가는 직장인 중 일부였다.


주택청약이라는 기회를 핑계로 미루고 있던 혼인신고를 마침내 하게 되었다. 다행히 올해는 무슨 일이든 잘되려고 그런지 정책도 많이 바뀌어 좋아지는 중이었다.

그렇게 잠이 들고 우린 또다시 치열하게 일을 하며, 일주일을 버텨내고 대망의 산부인과 방문일이 찾아왔다.

평소 주말에 늦잠을 많이 자던 우리지만 방문일만큼만은 기어코 일찍 일어나리라 다짐을 하며 잠이 든 우리는 당일 아침 또 늦잠을 자버렸다.


어렸을 적 동생이 태어났을 때, 초등학교 4학년 무렵 산부인과를 방문한 이후로 처음 방문을 하게 되었다.

주말, 그리고 9시가 지난 시각. 방문을 해서 접수를 하려고 보니 대기자들이 엄청났다.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 우린 접수를 하고 1시간가량 커피숖에서 브런치를 먹으며 시간을 보낸 뒤 병원을 다시 방문하니 마침내 대기자 순번에 우리 차례가 확인되었다.


의사 선생님을 만나고 초음파 검사라는 걸 해본다. 물론 나는 모니터상의 영상만 확인하며 설명을 들었지만 말이다. 검사가 끝나고 의사 선생님이 설명해 주셨다.


"임신한 지 4주 차 정도가 되어 보이고, 아직은 아기집만 확인되는 시기네요."라고 말이다.


아기집의 위치가 자궁의 중간이 아니라 오른쪽으로 치우쳐져 있다고 해서 다음 주에 한번 더 검사를 진행해야 한다고 말을 듣고 난 뒤 다시 한번 접수처로 향했다.

약간의 해프닝이 조금 있었지만, 우린 그날 임신확인증이란 것도 받을 수 있었다.


그전까지 아내에게 임신이 아직 100% 아니라고, 장난을 치던 나였지만, "확인증"이란걸 병원에서 받고 나니  더 이상 부정(?) 하기 힘들기도 했고, 뭔가 책임감이 뿜뿜 넘쳐흘러지는 느낌(?)이 들었다.

다른 때 같았으면 밖에서 돌아다니고 데이트를 했을 주말이지만 선생님의 의견을 듣곤 뒤도 안 돌아보고 집으로 돌아온 우리.


 아내에게는 다음 주까지 "절대안정"이라고 신신당부를 하며 태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쁜 거, 건강한 거, 트렌디한 거.. 인터넷 검색까지 한 결과. 의견차이가 좁혀지지 않은 채 또 하루가 저물었다.


다음 방문일까지는 5일 정도의 시간이 있었다. 아내는 회사에 육아단축근로를 신청하여 12주 차까지는 근로단축을 적용해 일찍 퇴근을 하고, 집에서는 "절대안정"을 취했고, 나 또한, 회사가 끝나면 쏜살같이 집으로 향했다.


아내가 이야기했다. 


"오빠, 우리 임밍아웃은 언제 할까?" 하며, 나에게 물어본다. 임밍아웃이란 말 참 생소한 합성어이다.


양가 부모님께 언제 이사실을 알려야 하나 하고 고민하던 찰나 2월 설날 명절 때 알리기로 결심했다.

임신을 확인한 후 달라진 점은 우리가 육아에 관해 관심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평소 공통의 관심 키워드가 없던 우린 이제 육아, 임신, 출산이라는 공통된 키워드로 관심이 가기 시작했고, 

어린 줄만 알았던 아내 또한 제법 늠름한 강인한 여성이 되어가고 있어 보였다.


"오빠 꽃은?"


"응? 무슨 꽃?"

아내가 딱 꼬집어 이야기한다. 임신을 했는데 왜 꽃 선물 안 해주냐고, 속으로 나는 말했다.


"바보, 미리 준비해 놨는데... 주말에 줄려고 말이야.."


주말근무가 있었던 나는 한가득 꽃 바구니와 케이크를 들고 집으로 돌아갔다.


"여보, 임신 축하해!"







23년 12월 우리의 결혼 1주년을 지나서부터 임신을 계획한 우리에게 소중하고 살포시 다가와준 용용이, 


24년 1월에 널 만나 알게 되어 너무 감격스럽고, 큰 행운이라 생각해.


엄마 너무 힘들게 하지 말고,  만나는 그날까지 건강하자!





그렇게 88년 용띠인 나는 24년 청룡의 해에 용용이 아부지가 되어간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