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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 도황리 Sep 07. 2022

우여곡절 끝에 여행 첫날이 무사히 끝났다.

여행 첫날은 늘 서툴지만 서로를 배려하는 걸 배운다

"괜찮나?"

딸의 발은 고등학교 때 기브스를 한 뒤부터 자주 삐끗거렸다. 그날은 혼자 길 찾는다고 카카오 맵을 보다가, 미처 보지 못한 턱에 걸려 넘어졌다.

나는 딸을 일으켜 세우려고 손을 내밀었다.  

" 발 괘안나?" 내 손을 잡고 일어나, 모래를 툭툭 털며  " 응. 근데 엄마, 나 혼자만 길 찾고, 엄만 사진만 찍고. 우리 언제 숙소가."

딸의 목소리엔 약간의 짜증이 묻어났다.

미안했다. 딸에게 다 맡기고 신경을 하나도 안 썼던 것이.


노랗고, 붉고, 오페라 색(분홍에 가까운 색)이었던, 노을은 완전히 사라졌고, 벌써 7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가 없어, 큰 도로로 향했다. 비행기에서 내려 4시간 동안 걸으며 아무것도 먹지 않은 뱃속은 아우성이고. 그때 당시 2차 백신을 맞지 않은 사람은 혼밥을 해야 했다. 나 때문에 딸까지 혼밥을 해야 하는 상황. 딸은 "첫날부터 혼밥은 싫어"라고 했다. 다행히 청춘당이라는 꽈배기 집이 보였다. 청춘당 밖에 우리 같은 사람을 위한 건지 탁자가 있었다. 그곳에서 꽈배기를 먹었다. 아우성치던 배는 진정시켰지만, 단 것이 배 속으로 들어가니까 이번엔 목이 말랐다.

공항에서 산 생수는 이미 바닥이 보인 지 한참. 생수를 사기 위해 우리는 다시 걸었다.


그렇게 한참을 걸었지만, 편의점은 나오지 않았고, 11월에 그림친구들과 제주 여행 왔을 때 첫날 먹었던 고등어찜 식당이 나왔다. 식당에서 밥을 먹으면 젤 편한데, 딸은 혼밥이 싫고, 나는 꽈배기 때문에 배가 부르고. 

그래서 전복죽 하나만 포장을 해서 다시 숙소를 향해 걸었다.  

딸이 컴컴한 골목 앞에서 멈췄다. " 이 길 말고 다른 길 없나?" 쉰이 넘어도 캄캄한 골목길, 그것도 초행길은 무서웠다. 그래서인지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 밤이니까 그냥 카카오 맵에서 가라는 데로 가자. 여기서 10분만 가면 도착한대."

딸은 카카오 맵을 보며 말했다. 하는 수없이 골목길로 들어갔다. 다리는 이미 천근만근이지만, 꾸물댈 수가 없었다. 10분쯤 걸었을까? 골목길 끝에 파도소리가 들리더니 이윽고 밤바다에 고요히 떠있는 배들의 불빛이 보였다.


밤하늘에 보름달은 빛나고, 달빛 아래 일렁이는 밤바다는 참 황홀했다. 그러나 조금 전 넘어진 딸을 생각하면 하염없이 밤바다를 감탄하고 있을 순 없었다.

"바다 예쁘네."

딸이 말했다. 

"월광이 떠오르지 않나? 너거 어렸을 적에 영어 캠프 끝나는 시간에 데리러 갈 때, 해양대 앞바다에 오늘처럼 저런 달이 뜨면, 베토벤도 이런 풍경을 보고 월광을 작곡하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했다. 바다 보면서 월광 들으면 좋겠네."

" 나는 기억이 하나도 안 나는데..."

" 그땐 어렸으니까... 그나저나 숙소는 아직 멀었나."

" 아니. 바로 이 근처라는데."

카카오 맵에선 우리가 서있는 근처에 숙소가 있다는 표시가 떴다. 나와 딸은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고개를 들어 간판을 쳐다보았다.

[17. 68km 걸었다. 2021]

펜션에서 하루의 피로를 씻어내고, 미지근한 전복죽을 나눠 먹었다. 그날 찍은 사진을 보고, 나는 그림을 그리고, 딸은 일정을 정리를 한 다음 티브이를 켰다. 내가 좋아하는 싱어게인 2가 방송 중이었다.

그림을 후다닥 그리고, 침대에 앉았다.

" 엄마, 내가 마사지해 줄게. 발 내밀어 봐."

딸이 뜨거운 물에 수건을 빨아서 갖고 왔다.

" 난 괜찮으니까, 아까 넘어진 발 좀 보자."

" 그럼 서로 마사지해 주자."

그날 밤, 방 안엔 김기태 님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이 흐르고. 

우린 서로의 발에 따뜻한 수건으로 고생한 발을 마사지하고, 바셀린을 바르고, 종아리에 파스를 붙였다.

그랬더니 정말 졸음이 쏟아졌다. 그날 밤, 아주 오랜만에 꿀잠을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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