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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 도황리 Sep 08. 2022

제주 바당길

여행자들이여, 화이팅!

[다락쉼터로 가는 길,  UFO펜션. 2021]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발에 바셀린을 잔뜩 바르고 양말을 신었다.

여행을 오기 전, 몇 해전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오신 샘이 말해준 꿀팁이었다.

날짜가 지나갈수록 바셀린뿐만 아니라 반창고와 파스를 바르는 것이 여행 내내 우리들의 아침 의식이 되었다.


무릎 보호대까지 차고 가방을 메었다. 펜션을 나와서 바닷길 쪽으로 향했다. 밤엔 몰랐는데, 아침에 보니 펜션 근처 바닷길은 11월에 왔었던 길이었다. 그땐 렌터카를 타고 와서 몰랐는데 또 보니 반가웠다. 아침 일찍 출발해서 태양은 아직 뜨지 않았다. 우리는 자전거 도로를 따라 걸었다, 바다와 함께. 길엔 사람도, 차도 지나가지 않고 한적했다. 도로를 온전히 전세 낸 기분, 그때만큼은 재벌 부럽지 않았다. 전날처럼 날씨는 4월의 봄날 같아서 겨울 아침이란 말이 무색했다. 그렇다고 롱 패딩을 벗을 순 없어서 지퍼를 반만 내렸다. 롱 패딩 안으로 밀려들어오는 바람이 톡 쏘는 탄산수처럼 알싸하고  상쾌했다. 얼굴에 닿은 바람의 촉감을 어찌 말로 전할 수 있을까, 종이비행기만 있었다면 마음을 실어 바다를 향해 날리고 싶은 동심이 저절로 생기는 아침이었다.


다락인증센터 빨간 부스 앞, 먼저 오신 아저씨 두 분이 벤치에 앉아서 쉬시고 계셨다.

딸과 나는 인증센터 도장을 찍고, 바다를 보았다. 어제부터 보아 온 바다였지만, 정말 좋았다.

벤치에 앉아 계시던 아저씨 한 분이 우리에게 다가오셨다.

" 사진 한 장만 찍어주세요."

딸은 사진을 찍고 폰을 돌려 들렸다.

폰을 받은 아저씨가 " 어느 쪽에서 출발했어요?"라고 물었다.

" 용두암 쪽에서 출발했어요." 내가 대답했다.

" 우린 성산포에서 출발했는데, 그쪽에서 출발하면 일출도 볼 수 있어 좋아요."

" 아..."

그때, 자전거를 타고 아저씨 한 분이 우리가 있는 곳으로 오셨다. 그분은 이번이 처음 여행이 아니시란다.

나는 당 떨어지면 드시라고 커피 사탕을 패딩 주머니에서 꺼내 아저씨들에게 골고루 나눠드렸다.

" 화이팅"

아저씨들과 우리 모녀는 서로에게 응원의 인사를 건네고 헤어졌다.


동쪽에서 뜬 해가 서쪽인 이곳까지 닿았다. 그러나 아직 햇살이 당도하지 않은 겨울바다는 청색과 남색을 섞은 울트라 마린 색, 그 바다 위로 파도가 잘게 부서지고 흩어졌다.

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간간히 돌멩이에 '제주 바당길'라고 적힌 글자가 적혀있었다. 굳이 사전을 찾지 않아도, 제주 바닷길이라는 추측이 가능한 길, 그 길을 따라 하염없이 걸었다. 식당을 찾아서.

여행하기 전, 맛집을 찾는데 시간을 허비하않기로 했었다. 그냥  걷다가 배고프면 눈에 보이는 식당에 들어가기로 했었다. 그러나 눈에 보인  식당마다 휴일이라는 팻말이 걸려 있었다. 여기 제주의 식당은 화요일이 쉬는 날인가 보다. 어젯밤 나눠 먹은 전복죽이 전분데... 배가 고프니까, 바다도 더 이상 아름답게 보이지 않았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은 선조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만든 말이 확실하다. 그때의 우리들 또한 배가 고프니까 한 시간 전까지 아름답고 멋지던 바다 풍경이 시들해지고, 배고프다는 생각뿐이었으니까.


" 엄마, 순두부 어때?"

멀리 보이는 24시 순두부집 간판을 발견한 딸이 말했다.

" 아무거나 먹자."

그렇게 들어간 순두부집은 예상과 달리 맛있고, 정갈하고, 푸짐했다.

뜨끈한 돌솥밥, 보글보글 끓는 뚝배기에 담긴 순두부, 그리고 정갈하고 맛있는 밑반찬들. 그날 아침 먹은 순두부가 제주에서 먹은 식당에서 먹은  밥의 처음과 마지막이었다.   

혼밥이 싫은 딸과 나는 배달을 시키거나, 포장 주문해서 숙소에서 먹었고, 아침은 저녁에 남은 것들을 대충 먹거나, 편의점 앞 야외 탁자에서 계란, 핫도그, 바나나우유 등으로 대충 때웠다. 그리고 너무 지쳐서 밥 생각보다 물만 먹고 싶었다. 시절이 하 수상하여 여행 내내 우리 모녀는 제대로 된 밥을 먹지 못해서 조금 불편할 뿐 큰 어려움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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