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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 도황리 Sep 16. 2022

새였으면 좋겠다.

협재해수욕장에서 신창동 풍차 해변까지

[제주, 둘째 날. 2021]

협재에서 출발할 땐 하늘엔 잿빛 먹구름이 몰려 있어 꼭 비가 올 것만 같았다. 야자수길을 걸어서 지척에 있는 금능해수욕장에 도착했을 땐 다시 해가 나왔다. 여행자는 화장실이 보일 땐 따질 거 없이 무조건 가야 하고, 짐은 최대한 줄이는 것도 여행을 통해 배웠다. 금능해수욕장 화장실을 들리고, 편의점에 들러 생수를 두 개를 샀다. 그리고 다시 걸었다.

딸은 묵묵히 카카오 맵을 보며 앞장섰고, 나는 짐이 되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해 걸었다. 그러다가 만난 산타 돌하르방. 커다란 눈, 주먹만 한 코, 빨간 모자와 빨간 망토 그리고 하얀 목도리를 한 돌하르방 덕분에 잠시 잊고 있었던 크리스마스를 떠올렸다.


노을이 다 지기 전에 신창동 풍차 해안도로에 도착해야 하는데 나는 자꾸 처졌다. 엄마만 아니었으면 진즉 포기했을 텐데, 엄마라서 아픈 발을 절뚝이며 걸었다.

"엄마, 괜찮아." 앞 서가든 딸이 뒤를 돌아보곤 내 상태를 보고 걱정스럽게 물었다.

나는 대답할 힘도 없어서 그저 손짓으로 먼저 가라는 신호를 보냈다.

지난 11월에 그림친구들이랑 왔을 때 월령리 선인장 마을을 참 예쁘서 좋아했는데. 파란 바다와 하늘 그리고 검은 현무암과 손바닥 모양의 초록 선인장과 빨간 열매를 보았지만, 감동할 여력이 없었다. 그저 딸이 사진을 찍는 동안, 딸과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한 발 한 발 걷는 데 급급했다. 그렇게 해서 도착한 해거름 마을공원인증센터, 인증 도장을 찍고 벤치에 앉았다.

" 저기가 신창동 풍차인가 보다." 딸은 먼바다에서 나란히 서있는 나무젓가락보다 조금 큰 풍차들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 내가 새였으면 좋겠다. " 나도 모르게 한숨과 함께 그런 말이 툭 튀어나왔다.


날개가 없는 우린 한 발 한 발 걸어서 신창 풍차 해변에 입구에 도착했다. 그러나 내가 너무 지체하는 바람에 이미 해가 떨어지기 직전. 우리는 해변까지 못 가고, 이차선 도로 중간 어디쯤에 앉아서 지는 노을을 보았다. 오렌지색과 노란색이 하늘과 육지의 물 웅덩이에 내려앉아 물들였다. 노을이 사라지면 금방 어두워질 걸 생각해서 우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오른발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낭패다'. 기어이 우려했던 걱정이 현실로 나타났다. 이차선 도로 위에 번지는 노을의 그림자에 감동할 여유가 없었다. 간간이 자동차는 지나갔지만 택시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서울처럼 카카오 택시도 부를 수도 없었고, 시도했지만 잡히지도 않았다.

버스 정류장까지 가야만 했고, 버스정류장까지 가는 길도 만만치 않게 멀었고, 버스가 있다는 보장도 없는

그때, 구세주처럼 택시가 나타났다.  딸은 재빨리 손을 들고 택시가 잘 보일 수 있는 거리까지 뛰었다. 그러나 택시는 야속하게도 우리를 못 본 건지 쌩하니 지나갔다.

"어쩌지. 엄마 걸을 수 있겠어?"

딸이 내게 다가와 발을 보며 물었다.

" 걸어봐야지."

한탄할 겨를도 없었다. 그냥 여기서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 엄마 가방 줘. 내가 들게."

" 업고 가지 않을 거면, 가방은 됐어.ㅎㅎ 어둡기 전에 빨리 가자."

썰렁한 농담이 아닌 농담을 던지고, 몇 발 걸었다.


그때 거짓말 같이 우리 앞을 지나쳐 갔던 택시가 다시 우리 앞으로 와서 멈추고, 택시 아저씨가 창문을 열고 물었다. 

" 어디까지 가요?"  

" 섬 풍경 펜션 갑니다." 딸이 말했다.

 " 타요." 아저씨의 그 한마디가 눈물 나게 고마웠다.

달리는 택시 안에서, 아저씨는 " 이 시간엔 버스도 없고, 그래서 집에 가다가 다시 돌아왔어요."

" 감사합니다." 나와 딸은 온 마음을 다해 인사했다.

 "제주에 언제 왔어요?"라고 아저씨가 물었다. "어제 왔어요."라고 내가 답했다.

 "차도 없이 다녀요?" 아저씨는 나와 딸을 룸미러로 한 번 보신다. 

" 자전거도로를 걸어서 제주도 한 바퀴를 돌려고요." 딸이 말했다.

"아이구, 많이 힘들 텐데." 룸미러로 우릴 보는 눈빛이 염려와 걱정이 가득했다.

한 시간 삼십 분을 걸어야 할 거리를 택시 아저씨 덕분에 15분 만에 숙소에 도착했다.


숙소에 도착했을 땐 이미 깜깜했고, 산 밑에 펜션이라 보이는 건 밭뿐이었다. 우리가 그 펜션을 어쩔 수 없이 예약을 한 것도 주변에 숙소 할 만한 곳이 없어서 예약한 곳이다.

" 혹시 근처 식당 전화번호 좀 알 수 없을까요?" 나는 객실 키를 받으며 펜션 사장님에게 물었다.

사장님이 주신 소문난 물회 집 명함을 보고 딸이 전화했지만, 여기도 정기 휴일인지 신호만 가고 연결이 안 됐다. 딸은 인터넷을 검색해서 전화했고, 연결된 식당에선 거리가 멀어서 몇 군데 퇴짜 맞고, 겨우 육개장 주문을 성공했다.

" 엄마, 파스 사 올게. 밥은 한 시간 뒤에 온다니까 씻고 있어."

" 근처에 아무것도 없고, 깜깜한데, 파스는 무슨. 그냥 있어라."

" 사장님한테 물어보고 없으면 그냥 올게. 문 잠가."


딸이 나가자마자 나는 발을 살폈다. 삔 곳도 없는데 오른쪽 발은 조금 부어 있었다.

손으로 만질 수 없을 정도로 아팠다.

"어쩌지..."엄마인 내가 이러면 안 되는데.

"어쩌지..."

엄마인 내가 이러면 안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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