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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 도황리 Sep 23. 2022

두 갈래 길 1

황우지 해변에서 생긴 일

[산방산 가는 길. 2021]

딸은 말했다. 양심에 찔린다고.

택시를 타고 와서 찍은 인증 도장에 대한 딸의 양심 고백으로 우린 계획을 다시 수정했다.

" 이 발로 하루에 35킬로미터를 걷는 것은 무리야." 멀리 형제섬이 보이는 풍경을 마주한 내가 말했다.

" 그건 나도 알지. 그럼 어떻게 하면 좋을 것 같아?" 딸은 물을 마시고 나를 쳐다보았다.

" 실험은 해봐야겠지만, 하루에 20킬로 전 후 정도 걷는 건 괜찮지 않을까?" 겨울의 날씨가 이렇게 더워도 되는 건지, 롱 패딩이 너무 거추장스럽게 느껴져 반쯤 벗으며 말했다.

" 나머지는?"

" 버스를 타려고, 넌 어떡할 거야?"

나는 고개를 돌려 딸을 봤다.

" 엄마는 버스 타도, 난 걸을래. 그래야 양심이 안 찔릴 것 같애"

" 그래. 융통성 있게 잘 조절해보자."

송악산에서 산방산 방향으로 가는 바닷길을 30분 정도 걸었더니 발에 통증이 심하게 왔다. 우리는 한의원에서 송악산까지 택시로 이동했기에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그래서 30분만 쉬기로 했다. 나는 가방에 무겁게 지고만 다닌 스케치북을 꺼내서 멀리 보이는 형제섬을 배경으로 여행 와서 첫 어반 스케치를 했다. 그림 그리는 내 옆에 앉은 딸은 하염없이 바다 멍을 때리고.


천천히 걸었지만, 우리는 앞으로 조금씩 나아가고 있었다. 산방산으로 가는 길에 노란 유채꽃밭이 보였다. 파란 바다와 노란 유채꽃 그리고 파란 하늘.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 사진 같다는 말 대신에 그림 같다는 말을 한다. 그 말의 어원은 모르겠지만, 나도 모르게 "한 폭의 그림 같네"라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완만한 경사지만 경사는 경사인지라 나는 자꾸 뒤처졌다. 딸은 걷다가 자꾸 뒤돌아보며 내가 어디쯤 오는지 확인했고, 그때마다 나는 가라는 손짓을 했다. 산방산에 도착해선 산에 오르지 않고, 잠깐 화장실만 들렸다가 다시 황우치 해변으로 향했다.


산방산에서 황우치 해변 쪽은 내리막길이었다. 올라온 만큼 내려가는 이치를 몸소 느꼈다. 그러나 내 발은 이치를 모르니 중심 무게가 앞으로 쏠려서 더 힘들었다. 등에 멘 가방까지 자꾸 떠미는 착각이 들 정도로. 몸과 발의 엇박자, 그럼에도 나아갔다. 오전에 쓰지 않은 체력 덕분에 딸은 씩씩하게 걸어 벌써 황우치 해변에 도착했다는 전화가 왔다. 처음 들어보고, 가 본, 황우치 해변엔 아주 커다란 카페가 있었다. 관광객들인지, 현지인인지 모르지만 사람들이 평일임에도 제법 많이 있었다. 나를 기다렸던 딸이 나에게로 왔다.

" 엄마, 숙소까지 가는 길이 네이버 지도랑 카카오 맵이 다르거든. 근데 네이버 지도가 2킬로 정도 짧아."

" 같은 길인데?"

" 아니. 카카오는 아까 내려온 도로로 쭉 가면 되고, 네이버는 저쪽으로 가라는데."

딸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길은 울퉁불퉁 바위와 돌멩이들의 밭. 거기에 산 모퉁이 돌아서는 푸른 물결이 넘실대는 바다밖에 보이지 않았다.

" 저기 길이 있다고?" 나는 믿기지 않아서 딸 손에 든 폰을 가까이서 보았다.

" 설마 우리나라 최고 아이티 기업인데 잘못 표기했겠어."

" 그래도 저 길은 아닌 것 같은데."

" 그럼 내가 가보고 있으면 엄마도 와."

딸은 씩씩하게 바닷길을 걸어갔다. 황우치 해변에서 지켜보던 나는 아무래도 위험해 보여 딸에게 전화를 걸었다.

" 길 있나?"

" 응. 엄마 여기로 와."

" 돌 때문에 지금 엄마 발로 가기엔 무리야."

" 그럼. 위에서 만나."

" 먼저 도착한 사람이 전화하자."


그렇게 딸은 전화를 끊고 내 눈앞에서 점점 작아지더니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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