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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 도황리 Sep 21. 2022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놀자

아프지 말고

[이때만 해도 걸을 만했다. 2021]

발이 퉁퉁 부은 것도 아닌데 바닥에 발을 디딜 수가 없었다.

일찍 숙소를 나섰다. 원래 아침 일찍 송악산을 가야 했지만, 병원이 급선무였다. 버스를 타기 위해 차귀도 선착장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길가에 운동회가 열릴 때 만국기처럼 오징어가 널려 있었다. 어제 파스 사러 나갔던 딸은 파스는 없어서 못 사고 마른오징어를 사 왔던 것이 이해가 되었다. 천천히 걷는 내 속도에 맞춰 딸도 천천히 걸었다. 서울에선 창을 열고 맡는 텁텁한 공기였다면, 이곳 아침 공기는 상쾌하고, 더없이 맑았다. 버스 정류장 주변으로 오징어를 판다는 간판과 입간판이 정말 많았다. 오징어는 동해에서 나는 줄 알았는데 여기도 많이 잡히는 모양이었다. 방파제 쪽에도 아저씨 한 분이 열심히 물오징어를 널고 계셨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작은 어촌 마을 같은 이 마을을 천천히 한 번 돌아보았다. 마을 전체가 오징어와 깊은 관련이 있어 보였다.


버스 정류장 앞에 한의원이 있었고, 길 건너 병원이 있었다. 더 이상 걷는 것도 힘들어 한의원으로 들어갔다. 일찍부터 나오셨는지 물리치료실에 아주머니들의 이야기 소리가 대기실까지 들렸다. 그러나 제주 방언으로 하시는 말씀이라 해석하기가 어려웠지만, 대략 같은 동네 분은 아닌 것 같고, 한의원 친구쯤 되시는 두 분이 농사와 자식에 관련된 이야기였다.

나도 물리치료실로 갔다. 물리치료를 받으며 배 위에 올려 주신 온열매트 때문에 침대 너머 아주머니들의 이야기가 자장가처럼 들렸다. 물리치료가 끝나자 한의사 샘이 오셔서 물었다.

" 어디가 젤 불편하세요?"

" 발을 바닥을 딛기가 힘들어요."

" 혹시 삐끗하셨어요?"

" 삐지는 않았고, 어제 35킬로 걸어서 그런 것 같아요."

" 35 킬로면... 여행 중이신 것 같은데 이 발로 더 걸어 다니는 건 무린데... 일단 침 맞고 괜찮은지 봅시다."

한의사는 침을 꽂고, 적외선 치료기를 발에 비추고 다른 칸으로 건너갔다.

시간 지나 간호사가 침을 뽑고, 파스를 바르려는 걸 부황을 놓아달라 했더니, 다시 한의사 샘이 오셨다.

" 혹시나 해서 다시 말씀드리지만, 어제처럼 무리하시면 큰 일납니다. 오늘은 절대 쉬시고, 계속 아프면 다른 병원으로라도 가셔야 합니다." 한의사는 부황으로 피를 뽑으며 말했다

할 수 있는 대답이 "네" 밖에 없었다. 부황까지 뜨고 딸이 기다리는 곳으로 대기실로 나왔더니, " 뭐래? 괜찮대?" 딸은 절뚝거리며 나오는 나에게 물었다.

" 좋아지겠지." 한의원 밖으로 나왔더니 딸이 진지하게 물었다. " 의사샘이 진짜 뭐래?"

" 그냥 무리하지 마라지. 근처에 다이소 있더나?"

" 다이소는 왜?"
" 발목 보호대 사려고."

나와 딸은 발목보호대를 샀다. 처음 해본 발목보호대를 하고 신발을 신으려니 너무 뻑뻑하고 불편했다. 체력은 생각지도 않고 너끈히 걸을 수 있으리라 믿었던 나의 오만의 대가치고는 참을 수 있을 정도였다. 우리 할머니의 십팔번 중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늙어지면 못 노나니. 화무홍 십일홍이요. 달도 차면 기우나니라. '라는 노래의 참뜻을 비로소 깨닫는 아침이었다.

약국에서 파스를 사고, 치료를 받는 동안 딸이 검색해서 사 온 맛있는 도넛을 아침 대용으로 먹었다.

" 송악산 인증센터까지는 택시 타고 가야 할 것 같다." 나는 손에 묻은 설탕을 물휴지로 닦으며 말했다.

" 많이 아파?" 딸은 금세 걱정스러운 눈빛이다.

" 그냥 조심하자는 거지."

" 나 혼자 걸어도 되니까, 엄만 너무 무리하지 말고, 차 타고 다녀."

" 그건 아니고, 발 상태를 보고 조절 하자."

어느새 내가 딸의 걱정과 보살핌을 받을 나이가 됐다는 것이 조금 서글펐다. 그럼에도 짐이 되고 픈 마음은 조금도 없었기에 택시를 잡으려고 자리에서 일어나 택시를 향해 손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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