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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 도황리 Sep 24. 2022

두 갈래 길 2

길 위에서

[딸을 기다리며. 2021]

딸은 바닷길로 떠났고, 나는 아스팔트 도로 길로 향했다.

아스팔트 길 위엔 많은 사람들이 지나갔지만,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내가 선택한 길 위에서 앞을 보고 묵묵히 걸었다. 문득 오래전 읽었던 시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 생각났다. 의미가  많이 다른 시인데 하필 그때 그 시가 생각났는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생각의 꼬리를 자르고 걷는 것에만 집중해야만 하는데, 30분쯤 걸었을까? 길 위에서 딸의 모습이 전혀 찾을 수가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사람의 그림자는 눈 씻고 봐도 없고, 간간이 차들만 도로를 달릴 뿐이었다. 느린 걸음 때문에 딸이 보이지 않는 건지  조바심이 일었다. 아무도 없는 길 위에서 딸이 너무 오래 기다릴까 봐. 딸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는 가는데 연결이 안 된다. 울퉁불퉁한 바윗길이라도 같이 갔어야 했나. 엄마인 내가 분리불안증이 있는 건지, 가끔 뉴스에서 제주도 여행 가서 일어나는 나쁜 사건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며 머릿속이 복잡했다.  


아무것도 없던 길 위에 짠하고 나타난 만복 흑돼지 집 간판. 일단 위치 찾기에 알맞은 장소라는 생각이 들어 그곳을 향해 필사적으로 걸었다. 흑돼지 식당 바로 옆에 편의점도 있고, 야외 탁자도 있었다. 생수를 한 병 사서 의자에 앉아, 다시 딸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번엔 받을 때까지 들고 있었다. 한참만에 핸드폰에서 딸의 목소리가 들렸다.

" 어디고?" 밀려오는 안도감에 목소리가 커졌다.

" 모르겠어." 딸의 목소리가 약간 갈라지게 들렸다.

" 지도에 현 위치 뜨잖아?" 나의 다급한 목소리의 위로 수만 가지 나쁜 상상이 다시 치고 올라왔다.

" 왼쪽은 바다고, 오른쪽은 산인데, 길이 없어. 엄마가 있는 위치 찍어서 보내줘. 끊을게." 순간 딸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전화는 끊겼고, 일단 내 위치를 카카오 맵에서 찾아 캡처를 해서 딸에게 보냈다. 전화를 할까 약간 고민하다가 일단 기다려보기로 하고, 사온 생수를 마셨다.

한숨 돌리고, 딸에게 보낸 톡을 보았다. 메시지를 읽지 않아 숫자 1이 그대로 떠있었다. 초조하고, 조금은 불안했지만, 일단 전화 거는 것은 보류하고 기다리기로 했다.


톡을 보낸 지 30분이 지나도록 숫자 1은 없어지지 않았다. 평소의 딸이라면 벌써 내가 보낸 톡에 답을 보내고 도 남을 시간이었다. 여차하면 내가 가야 할 거 같아서 다시 딸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가고, 한참만에 딸이 전화를 받았다.

" 왜 톡도 안 보노?" 최대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물었다.

" 길 찾아야 하는데, 나 밧데리도 얼마 없어. 엄마, 일단 여기를 나가면 볼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딸의 목소리는 불안, 두려움과 짜증 그 어디쯤의 혼재된 감정들이 말이 되어 귀에 와서 꽂혔다. 황우치 해변에서 헤어질 때,

" 엄마가 걸음이 느리니까 보조배터리는 가져 가."  그 보조배터리는 탁자 위에 있고, 보조배터리와 선으로 연결된 내 폰은 충전 100%.

" 엄마가 갈게. 니 있는데 주소 찍어 보내봐라." 

" 엄만 여기 못 찾아오니까, 지금 있는 곳에서 가만히 있어. 길 엇갈리면 더 큰일이잖아."

" 그럼 조심해서 오고, 될 수 있음 빨리 왔으면 좋겠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말이었다.

" 알았어. 끊는다."

끊긴 핸드폰을 보는 내 마음은 불안, 초조로 인해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가방에서 스케치북이랑 펜을 꺼냈다. 다른 곳에 집중해서 시간을 보내는 것에는 그림만큼 좋은 것은 없다. 마침 앉은자리 맞은편에 산방산도 있고. 그때의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딸이 무사히 오리라 믿으며, 그림을 그리며 기다리는 일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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