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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벌 김화숙 Dec 21. 2020

생애 첫 3주 효소 단식 일기

'암(癌)', 뫼 산(山) 자 위에 입 구(口) 자가 세 개


암(癌), 뫼 산(山) 자 위에 입 구(口) 자가 세 개나 있다.


'암(癌)'을 누군가는 이렇게 풀었다. “산처럼 많이 먹어서 암이 되었다.” 어릴 때부터 나는 잘 먹는 아이였고 많이 먹었다. 산처럼 먹어서 암이 된 사람, 조롱인 듯 뼈 때리는 소리가 아닐 수 없었다. 단식은 그 잘 먹는 밥을 끊는다는 점에서, 내겐 너무 '급진적인' 치료행위가 아닐 수 없었다.


나는 2015년 3월 16일 서천 '산들 산야초 효소 단식원'에 들어갔다. 간암 절제 수술 후 8개월, 직장 생활 11년 만에 자유인이 된 직후였다. 돌아볼수록 용기백배요 절박한 '생존 욕구'였다. 4월 5일까지 3주간 효소 단식을 했이어서 보호식도 3주 했다.



단식하니 밥 할 일 없었다. 


단식은 밥에 매였던 삶으로부터 해방이었다. 의사, 간호사, 트레이너를 내가 다 해먹었다. 단식 매뉴얼을 참고하며, 책을 읽으며, 잠을 자든 운동을 하든 내 재량이었다. 나는 효소를 마시고 쉼 없이 배설하며 몸 관찰하고 기록했다. 몸이 허락하는 만큼 산야를 돌아다니며 놀았다. 단식은 내게 참 맞는 자연치유였다.


아침 5시 반 풍욕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거실에서 불은 끈 채 창문을 활짝 열어 찬바람이 들어오게 한다. 알몸으로 담요 위에 앉는다. 음악에 맞춰 담요 한 장을 몸에 덮었다 걷었다 한다. 가벼운 스트레칭과 체조를 안내에 따라 한다. 30분간 모든 피부로 산소를 마시고 탄소를 배출하는 시간이다. 풍욕  마그밀 4알을 물과 함께 삼킨다. 천일염을 조금 먹기도 한다. 7시 간단한 예배 후 두어 시간 걷거나 산을 탄다. 오후엔 자유롭게 바이오포톤 온열기구 쬐기, 독서와 글쓰기, 정원일 거들기, 봄나물 뜯기도 한다.  


단식 기간 똥이 그렇게 많이 나오는 건 충격에 가까웠다. 밥 안 먹는 날이 이어지는데 몸은 점점 가볍고 힘이 나는 것도 신비였다. 날마다 두 시간 이상 어떤 날은 세 시간 걷고 땀 흘려도 피곤을 몰랐다. 단식 초반에, 컨디션 떨어져 두려움이 엄습할 때도 있었다. 원장님과 대화하고 명현반응으로 알고 넘어갔다.  


명현반응: 몸이 치료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일시적 반응. 호전반응. 명현현상. 근본적인 치료가 이루어질수록 반응이 강하게 나타날 수 있으나 마침내 치료되는 과정이라 보는 관점이다. <사람을 살리는 단식>에는 단식 명현 반응과 대처법이 상세하게 나온다. 사람에 따라 다른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경험한다. 현대의학과 한의학에서는 명현반응이란 없다, 있다, 논쟁적인 개념인 거 같다.  


그때 쓴 단식 일기를 지금 보니 알맹이가 좀 부족해 아쉽다. 의욕은 있었으나 감이 모자랐던 것. 처음 가는 길이라 전전긍긍 두려워하는 모습이 생생하다.(<사람을 살리는 단식>을 늦게 읽은 게 아쉽다.)




2015년 3월 16일(월). 맑음. 내복 입고 47.5킬로.

아침부터 집에서 단식하고 오후 서천 산들 산야초 효소 단식원 입소. 딸과 둘이 한 방. 간단한 오리엔테이션 받고 본격 단식. 황갈색 바나나 똥 큰 거. 황색 바나나 중간 크기. 노란 무른 똥에 설사. 종류별로 똥을 계속 누고 밤엔 설사가 이어짐.

"의료에서든 어디에서든 판단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순간 자신의 입장은 철저히 약해진다."-곤도 마코토

"암에서 목숨을 건진 사람은 의사에게 버림받은 사람과 의사를 버린 사람뿐이다."-이마무라 고이치


3월 17일 단식 2. 47.0킬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선한 일을 하기까지 비움과 채움이 함께 있어야. 병들었을 때 비움의 중요성. 상식을 뒤집는 신비. 비우고 쉬게 하면 독소와 숙변이, 종양과 찌꺼기가 빠지고 몸이 리셋된다. 기대된다.

호숫가 산책 2시간. 노란 똥물 07시, 08시, 10시. 이후부턴 자주 눠서 똥 눈 시간 기록이 무의미해짐.

오후에 온열기구 바이오 포톤 속에 누워서 1시간 온열 치료.


3월 19일 단식 4. 46.5킬로. 소금. 감잎차.

산책 햇빛 쬐기 한 시간. 이후 온열 기구 1시간 쬐고 땀 흘리고 나니 어지럽고 매스껍고 땀 심하게 나며 쓰러질 듯 힘들었음. 계속 누런 물똥 조금씩 나오나 숙변 같은 덩어리는 안 보임. 원장님 말씀은, 아직 더 나올 거라는데 얼마나 붙어있길래. 


321일 단식 6. 45.7킬로.

여전히 누런 똥물. 컨디션 오르락내리락. 얼굴살 볼살 눈꺼풀 쑥 들어감. 산행 한 시간. 산 정상에서 모녀와 홍목 대화 한 시간. 햇볕 쬠. 돌아오니 전신 무력감. 오후 몸 차갑고 기운 없어서 온열기 쬐며 누워있음. 미국 뉴저지에서 온 60대 여 교포, 집에서 혼자 단식하다 오늘 입소, 맞은편 방에.

 

325일 단식 10일. 45.3킬로.

암환자로서 단식 21일까지 해도 안전한지? 쉬었다 또 하는 건 어떤가? 체력 급격히 떨어진다거나 예상치 못한 문제 발생할 우려는 없는가?” 남편이 전화로 문제 제기함. 고민해 보기로. 긴 단식 경험 있는 암 친구가 없음. 책과 인터넷 참고. 묵상과 기도. 내 컨디션 좋고 할 만하다는 결론. 언제라도 위험 감지되면 중단하는 것으로. 일단 3주 가기로 함.


327일 단식 12. 45킬로. 벌나무 차 마심.

숙변 덩어리 같은 건 안 나오나 몸상태 좋다. 가볍고 산책길 피곤을 몰랐다. 쑥 뜯고 2시간 넘게 딸과 들길을 쏘다녔다. 버들피리 만들어 불며 놀았다. 좀 더 짙은색, 입자가 조금 큰 점액과 고형, 마치 씹다 만 나물 찌꺼기 같은 똥물 배출. 쉬지 않고 변을 내보냄. 3주 완주에 대한 자신감 커진다.


3월 29일 단식 13일. 맑음. 새벽안개 미세먼지. 44.9킬로.

숙변 배출 위해 주열기 두 시간 쬐며 배 주무르고 마사지. 하수구 냄새 역한 똥물 부유물 있는 변. 6~7미터 된다더니 소장 속에 얼마나 찌꺼기 끼었길래 이렇게 쉼 없이 나오는가. 내 숙변은 이런 정도인가.


3월 30일 단식 15일. 흐림. 안개. 44.8킬로

아침산 양지쪽에 진달래가 만개. 월명산이 온통 붉었다. 찔레순도 따고 쑥도 뜯고 산과 들에서 3시간 햇빛 쬐며 웃고 떠들고 돌아다니며 딸과 놀았다. 이런 힘이 나오는 게 신기하다. 기분이 말할 수 없이 가볍다.


41일 단식 17일. 흐린 하루. 44.0킬로

아침에 거울 속 내 눈 흰자위가 좀 노란 듯. 너무 긴 단식? 몸에 무리? 두려움. 황달? 이제 5일 남았다. 귀에 붙인 이침 때문인지 어젯밤 자정쯤에야 간신히 잠들고 새벽 3시 반 소변. 4시 반 또 눈떴다가 다시 자고 5시 15분 일어났다. 몸이 평소보다 살짝 무겁고 힘들게 느껴지니 여기서 그만해야 할까? 잠시 고민했다. 오후 봉선지 둘레길 3시간 걸으며 머위와 종나물 뜯고 햇볕 쬐었다. 컨디션 이상 무.


45(일요일) 단식 21. 오후 비. 44.0킬로

3주 단식 마지막 날. 아침 풍욕. 약간 흐리나 비 온 뒤 깨끗하고 상쾌한 봄 공기. 지저귀는 새소리. 부활주일 아침. 단식은 죽음과 부활의 은유. 육체적으로 비우고 청소하고 새 몸으로. 내 안에 예수가 사는 새 삶. 내 몸은 얼마나 새롭게 되었을까? 사랑하는 딸과 함께라 더 즐겁게 보낸 3주였다. 감사 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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