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식(보식)이란 단식으로 비워진 몸이 먹는 음식을 말한다. 조금씩 절제해서 몸을 보호하며 먹여야 해서 보호식이다. 최고의 의사인 내 몸의 소리를 따라 조심조심 먹는 게 핵심이다. 기왕이면 먼저 한 사람이든 책이든 곁에 있으면 좋다. 가 본 적 없는 낯선 길, 보호식 기간 내 길잡이 역할을 한 문장이 있었다.
단식의 효과는 보호식이 70% 결정한다.
장두석의 <사람을 살리는 단식>에는 '단식 후의 회복 50훈'을 조금 더 센 표현으로 주의를 주고 있다.
1. 단식을 끝낸 후 회복식을 잘못하면 그야말로 '십 년 공부 도로아미타불'이라는 것을 깊이 명심해야 한다. 이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2. 생명의 위험은 단식중보다도 오히려 단식 직후의 잘못에서 온다는 것을 깊이 새길 것.
3. 단식 예정일수를 채웠다 하더라도 식욕이 나지 않을 때는 단식을 중지할 필요가 없다. 사정이 허락된다면 단식을 하루라도 더 연장할 것.....
'70%'보다 '십 년 공부 도로아미타불'이 훨씬 무섭지 않은가? 보호식은 과연 단식보다 어려웠다. 먹되, 안 먹는 것처럼 먹어야 했다. 나는 공부하며 먹었다. 몸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조금만, 천천히. 그렇게 먹어도 죽지 않을 뿐 아니라 힘도 넘쳤다. 열심히 기록을 남겼다(역시 좀 더 꼼꼼히 기록하지 못한 건 아쉬움이다). 알레르기 비염 기록이 새삼 낯설다. B형 간염 항체 생기면서 싹 사라졌기 때문이다.
2015년 4월 6일 월. 흐림. 보호식 1일
3주 단식 끝나고 보호식 시작. 아침은 변함없이 효소. 거창한 숙변은 없어서 마그밀 4알 그대로 먹음. 배설물 찌꺼기는 색깔이 좀 짙으나 장을 뒤틀며 떨어져 나온다는 숙변 덩어리 따위는 없었다. 보호식 기간에 나오기도 한다니 기다릴밖에. 나올 게 여기까지가 아닌지 모르겠다.
점심- 묽은 죽 1/3 공기. 쑥 된장국, 방풍나물 무침, 물김치.
저녁- 점심과 동일.
4월 7일 화. 맑고 쌀쌀. 43.9킬로. 보호식 2일.
아침- 효소
점심- 묽은 죽 1/3, 청국장, 물김치
저녁- 묽은 죽 1/3. 나물 우렁이 두부 된장국, 물김치, 개망초 나물
손님 많아 분주하고 보호식 위한 손이 모자람. 바쁜 주방에서 보호식 내가 스스로 챙김. 집으로 가서 계속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함.
4월 9일 목. 보호식 4일. 맑음. 43.7킬로
토요일 남편 데리러 오기로 함. 단식원에 알림. 딸과 호숫가 걷고 봄나물 뜯음. 고들빼기, 민들레, 머위.
점심- 잣죽, 생된장, 비트, 머위, 단호박, 매실장아찌, 마늘쫑 절임.
저녁- 호박죽, 생된장, 비트, 단호박, 머위, 망초.
4월 11일 토. 맑음. 보호식 6일
오전 단식원 퇴소. 원장님이 직접 담근 고들빼기 민들레 김치 챙겨줌. 돌아가는 길에 먹을 보호식 점심 도시락 받음. 보온 통에 죽, 단호박, 비트, 머위, 망초, 콩나물, 쌈장, 마늘청 초절임. 수덕사에서 세 식구 함께 도시락 먹고 구경함. 저녁은 집에 와서 스스로 준비. 묽은 쑥국, 개망초 무침, 머위대 절임에 팥죽 끓여 먹음.
4월 14일 화. 보호식 9일.
아침- 효소
점심- 찐 고구마, 물김치, 개망초, 머위나물, 은행 대추 곶감,
저녁- 동일.
4월 16일 목. 보호식 11일. 44.5킬로
마트 장 보며 바나나 한 입 시식함. 식간에 음식 입에 대는 것 단식 이후 처음. 대변 두 번. 아침 고형으로, 낮엔 풀어지는 녹갈색.
점심- 쑥국, 물김치, 비트, 샐러리, 양파, 미역국 건더기
저녁- 고구마, 가래떡 한 손가락, 비트, 샐러리, 미역국 건더기
4월 18일 토. 보호식 13일
보호식 처음으로 양배추, 진달래, 배로 만든 샐러드 먹음. 생채소 과일을 식단의 50% 이상 먹기 시작.
아침: 효소 한 잔. 과채 갈아서 한 잔.
점심: 생샐러드, 된죽, 나물, 견과, 물김치
저녁: 생샐러드, 고구마, 떡 한 입, 단호박, 비트.
4월 19일 일. 보호식 14일
점심 떡볶이. 막내는 디델리 맛이라고 좋아하나 큰아들은 효소 넣었다고 인상 쓰며 맛없다고. 효소를 왜 넣냐, 표준으로 해라. 갑자기 내가 화나고 분노. "못 먹겠으면 먹지 마! 니가 해 먹어!" 단식하고 온 내가 지난 한 주간 밥하며 지켜보니 나를 배려하고 돌보는 사람 아무도 없었다. 뭔가 잘못된 느낌. 날 위해 음식 만들어주는 건 고사하고 내가 이런 식으로 가족들 시중드는 게 정상인가. 구조조정 필요하단 느낌.....
4월 20일 월. 보호식 15일
아침 단식 체제로 남편까지 동참. 효소 또는 해독주스로 아침. 셋이 본격 1일 2식 하기로. 어제의 분노를 삭이며 아침 운동 갔다 와 보니 큰아들이 싱크대 어지러운 거 치워놓고 엄마 눈치 보는 모습. 아침 먹을 거냐니까 먹겠다, 챙겨주는 나는 뭘까. 자기 먹은 설거지하고 다녀오겠다 학교 가는 놈 응대해 줬다. 내 삶에 근본적인 회의가 몰려왔다. 왜 아들에게 이토록 마음이 약한가.
4월 21일 화. 보호식 16일
아침에 막내 머위 쌈밥 먹이고 도시락 싸줌. 엄마 암 수술 때문에 엄마 없는 고딩 생활하다시피 한 고3 막내. 엄마 해주는 대로 뭐든 잘 먹는 녀석이라 또 맘이 짠하다. 체대 입시 운동 때문에 엄마 도시락 먹겠단다.. 가벼운 엄마 도시락으로 매일 준비해 주기로. 수능까지만 고3 엄마 노릇하기로 맘먹어 본다.
점심- 생채소 샐러드 50% 이상.
4월 22일 수. 보호식 17일
김밥 10줄 싸서 아들들 아침으로 먹고 막내 도시락. 남편 시골 가는 길 도시락. 딸과 모녀 점심으로 먹음.
현미 맵쌀 섞은 밥, 개망초 나물, 고들빼기, 냉이, 아스파라거스, 당근, 무 절임으로 싼 김밥. 아직 보호식 중인데 된죽만 먹기 싫증 나서 김밥을 먹었다. 거친 음식일까 봐 한 시간씩 씹어 먹었다.
저녁은 생채소 샐러드 한 접시, 과일 한 조각, 익힌 채소 조금 먹었다. 내 멋대로 생채식 보호식이다.
4월 23일 목. 보호식 18일. 44.3킬로
아침에 일어나 대변 완벽 바나나 녹갈색 중간 굵기. 다시 좀 무른 녹갈색 빅 똥 많이 눴다. 굵기는 아직 내 평소 변 굵기의 반 정도? 형태와 질도 절반 넘어선 듯. 체중은 안 는다. 단식 마지막 날 44킬로. 보호식 중간 43.7 찍더니 오늘 아직 44.3이다. 잘 먹어야 한다는 생각 떨치기 어렵다. 먹는 욕심 부질없다. 씹고 또 씹어 소화 부담을 덜어줘야. 인내심 필요. 독소 없게 잘 비우고 잘 흡수하길. 대중목욕탕 걸어서 다녀옴.
4월 24일 금. 보호식 19일.
시어머니 해 보내신 무염무설탕쑥찰떡. 밥보다 훨씬 부드럽다. 부추를 많이 보내왔으니 통밀가루와 현미가루 섞고 채소 국물에 반죽해서 부추전 했다. 동네 산 2시간 걸으며 새싹 구경하고 생강나무 잎 조금 뜯었다. 큰놈한테 운동해라 건강 생각해라 잔소리하게 된다. 평안 감사도 제 싫으면 그만 아닌가. 남편 하는 소리가 나를 빡치게 한다. 당신 그 나이 때 생각하면 모든 게 아이들이 더 낫단다. 관대할 수 있는 비밀이란다. 말은 맞는데, 백 프로 공감은 안 된다.....
4월 25일 토. 보호식 20일.
대변 상태 점점 좋고 아침 쾌변 바나나. 녹색 있다. 남편과 도시락 싸서 수리산. 칡 순, 쑥, 지칭개, 명아주, 광대수염, 쇠뜨기, 고들빼기, 봄나물 뜯었다. 임도 오르다가 숲에서 점심 도시락 먹음. 아기 손바닥처럼 가지각색 초록 잎이 바람에 나풀거리는 사이로 봄 햇살이 눈부시게 비침. 달콤한 공기 맛. 산벚 꽃잎이 눈꽃인 양 우리 위로 떨어졌다. 밀양 쑥떡, 단호박, 배, 우엉, 표고조림, 무말랭이. 쑥떡을 무염무설탕으로 잘함. 여든셋 노모께 큰며느리 암 수술이 얼마나 무거울까. 건강하기만 하란다. 알레르기 계절이다. 콧물 흐른다.
2015년 4월 26일 일요일. 보호식 21일. 44.6킬로
보호식 3주 마지막 날. 아침은 효소 또는 해독주스 한 잔으로 자리를 잡아간다. 아침밥을 안 먹으니 바쁘지 않은 오전 여유가 좋다. 늦잠꾸러기들 주일에 좀 더 자게 둘 수도 있고 청소 시간도 여유다. 소화와 배변에 이상 없이 보호식을 잘 마치니 감사하다. 딸과 함께라 씹고 절제하는 게 훨씬 쉬웠다. 생채식 비중 늘리고 떡이며 고구마며 먹었으나 무리 없었다. 내일부터 밥 먹을 수 있다니 또한 기쁘다. 점심은 단순하고 무른 떡볶이로 먹었다. 저녁은 봄나물과 함께 찐 고구마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