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아침 7시 안산을 출발해 서울의 한 여대에 와서 글을 쓴다. 이곳에와야 맛보는 즐거움이 있다.
수험생 딸이 졸업생으로서 모교에서 공부하는 덕에 나도 내 학교인양 드나들며 익숙한 공간이 됐다. 딸의 막바지 수험생활 응원 모녀 데이트 겸 맛있는 거 먹을 핑계 겸. 딸은 도서관 자기 자리에서 공부하고 나는 교내 편한 공간에서 책도 보고 글도 쓴다. 오늘처럼 혼자 조조 영화 보는 날도 있다. 끼니 때 만나 우리만의 컨셉으로 찾아 먹는다.
여기만의 즐거움이란 먹는 이야기다. 어떤 장소에 가면, 먹고 싶은 음식이 떠오르는 경우가 있잖나. 고향 가면 어릴 적 먹던 게 떠오르고 김장철에 김장김치가 먹고 싶고 겨울 거리에서 붕어빵이 땡기고. 올 겨울 최저 기온을 찍어대는 요즘, 언 손을 호호 녹여주는 군고구마와 군밤은 어떻지? 그래, 대학 캠퍼스에서 군고구마 먹는 즐거움을 누가 알까.
비건에겐 바깥 음식 선택지가 좁아 늘 아쉬운데 편의점 군고구마로 완전 위로받았다. 평소 아침을 안 먹는 모녀지만 아침 군고구마를 지나치고 싶지 않았다. 어른 주먹만 한 군고구마 한 개 2,200원. 한 개씩 안으면 온몸이 따끈따끈 마음이 보드라워진다. 커피 한 잔 나눠 마시며 수다를 떨고 각자의 자리로 흩어졌다. 점심시간에 만나 같이 밥 먹고 다시 각자의 오후를 보내고 저녁밥시간에 다시 만난다.
군고구마는 내게 어릴 적 아궁이 불 때던 시골의 추억이다. 도시 생활에서 찐 고구마는 자주 먹지만 군고구마는 늘 그리운 추억 같은 음식이었다. 집에 첨단 조리기구가 없어서 더 그랬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편의점에서 군고구마가 있었다! 그 첫날을 잊을 수 없다. 소리를 지르며 춤을 추며 난리 부르스를 췄다는 말이다.
찐 고구마도 군고구마도 같은 고구마인데 군고구마는 왜 더 맛있지? 군고구마가 더 달다. 맛만 다를까? 놀랍게도 100g 당 칼로리를 계산할 때 생고구마가 111kcal고 삶은 고구마는 114kcal가 되고 군고구마는 141kcal가 된다. 놀라워라. 수분이 좀 더 날아가면서 당도가 더 올라갔겠지? 구우면 파괴되는 영양소가 있을 텐데 열로 합성되고 맛도 식감도 더 좋아질 테다. 덕분에 칼로리는 높아진다.
100g 당 칼로리가 더 높으면 나쁜 음식일까? 칼로리 낮으면 좋은가? 무조건 그럴 리가. 과하게 많이 먹을까 비만 걱정하는 사람들의 관점이겠다. 조금 먹어도 고칼로리를 낸다면 가성비 좋다는 뜻 아닌가? 나는 생고구마도 좋아하고 찐 고구마도 군고구마도 다 좋아한다. 맛도 칼로리도 군고구마가 가장 좋다는 거 알겠다.
그럼 기후위기 시대엔 고구마를 어떻게 먹는 게 가장 좋을까? 군고구마는 열을 쓰고 살짝 탄 껍질은 벗겨 먹어야 하니 에너지 소비와 쓰레기 생산 피할 수 없다. 찐고구마 역시 에너지를 써야 한다. 그럼 생고구마로 먹는 게 에너지 소비도 탄소배출도 쓰레기 생산도 적은 기후미식이라 하겠다.
내친김에 기후미식 이야기 조금만 하고 마치자.
산해진미 맛난 걸 가려 잘 먹는 사람, 미각이 섬세하게 발달한 사람을 '미식가'라고 한다. 탁월한 미각으로 맛집을 분별하고 음식 조예가 깊은 사람이다. 미식가는 맛있는 걸 먹기 위해 천리 길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러나 기후 위기 시대엔 그런 미식가는 기후 악당이기 십상이다. 기후도 생각하고 사람과 환경 동물과 지구의 미래까지 생각하며 먹고살아야 하는 기후위기 시대엔 미식가라면 기후미식가로 먹어야 맞다.
기후미식을 정리하면 이렇다.ㅣ
온실가스 배출을 최소화하며 먹는다. 쓰레기 생산, 에너지 소비, 탄소 거리 등 지속가능한 생태계를 고려해서 소비하고 먹는다. 동물성 식품 섭취를 억제 또는 제거한다. 채소 과일 통곡물 등 자연 식물식으로 식생활 한다. 이런 식으로 살자면, 불편을 감수하자는 소리다. 동물성 안 먹는 방향이 제일 어렵다고라고라?
어쩌겠나. 우리가 먹는 것이 지구의 미래인 걸. 내가 먹는 게 내 몸이듯 내가 먹는 게 결국 지구의 미래를 결정한다. 가후위기 시대 모두를 망하게 하는 길 말고 모두를 구하는 생존식습관, 그게 기후미식이다. 생존수영을 배우듯 기후위기 시대 누구나 생존 식습관을 기르라 말하는 책이 이의철의 『기후미식』이다.
아~, 아쉽지만 군고구마 너무 좋아하진 말자. 이벤트로만 사 먹되 찐 고구마도 고집하지 말고 생고구마를 더 즐기기로! 생고구마 좋아하니까. 에너지 덜 쓰고 쓰레기 덜 만들고 힘 덜 쓰고 먹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