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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영미 Jul 29. 2020

노년의 삶을 생각하며

 

출처 - https://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image&sm=tab_jum&query=%EB%85%B8%EC%9D%B8#imgId=pos


우리가 생각하는, 꿈꾸는 노년의 삶은 위의 사진과 같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자신의 노년은 건강하고, 즐겁고 의미 있는 삶일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가. 


지난주, 출근길에서 한 노인을 만났다. 그는 자신이 사는 집 입구 문에 발이 끼여서 발을 빼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쳐다보자 나에게 와서 다리를 빼 달라고 요청했다. 

나는 자연스럽게 노인에게 다가갔다. 가까이 다가가자 노인에게선 고약한 냄새가 났다. 그제야 노인의 옷과 몸 상태를 확인하니 오랫동안 빨지 않은 옷에서, 씻지 않은 몸에서 강하고 역한 냄새가 풍겼다. 내가 냄새에 약한 사람도 아닌데, 심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다리를 빼자 이번에는 옆 건물에 주차된 자신의 휠체어를 꺼내 달라고 한다. 노인이 가리키는 곳으로 아무 생각 없이 갔다가 전동 휠체어라 다를 줄 몰라 다시 어떻게 작동하느냐고 묻고, 노인이 알려준대로 전원을 켜고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전동 휠체어를 뺐다. 운전이 미숙해서 내 발이 밟히기도 했지만 분주한 출근 시간에 빨리 일을 해치우고 출근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그 정도 아픔은 참을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제 전동 휠체어에 자신을 앉히라는 노인의 요구였다. 마른 체형이었지만 혼자서 노인을 들어서 앉히기가 어려웠다. 내가 끙끙 대자 노인이 또다시 지나가는 성인 여자에게 손짓하며 도움을 요청했다. 그렇게 해서 나와 그녀가 힘을 쓰며 노인을 휠체어에 태웠다. 그녀는 노인에게 아침부터 어디를 가느냐고 한 소리했다.  노인은 동사무소에 간다고 했다. 이래저래 아침 출근 시간이 10분 이상 지체되어 버렸다.  그녀는 나와 같이 걸어 내려가며 "늙어서 저렇게 사는 건 의미가 없다, 남 일이 아니다."라며 자신의 모친을 병간호한 얘기를 오랫동안 풀었다. 나는 그녀의 얘기를 들으며 잠자코 들었다.  곧 나의 모친이 방금 전 노인의 모습과 같은 어려움에 처할 것이다. 남 일이 아니라는 그녀의 말처럼, 그녀도 나도 노인과 같은 삶에 처할 것이다. 


그 뒤 나는 노인을 관찰했다. 노인은 그날 나와 만난 시간보다 좀 더 일찍 움직였다. 나에게 부탁한 날은 다리가 문에 껴서 좀 더 시간을 지체한 것이다. 아침마다 그는 이미 누군가에 도움을 받아서 휠체어에 앉거나 이동 중이었다. 그러다 보니 매일 아침 노인의 휠체어가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하게 되었다. 


저 몸으로 어떻게 매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나갈 수 있을까, 노인은 왜 매일 나가는 것일까, 동사무소? 그곳에서 무엇을 할까, 노년의 삶에서 이동은 무엇을 의미할까, 아침마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고 이동하는 것이 정당한 일일까,  그에게는 도움을 줄 가족이 없는 것일까, 사회 구조적인 문제는 무엇일까, 내가 저 노인이라면 나는 어땠을까..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노년의 삶에서 누군가의 도움을 받기보다는 혼자서 살아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렇다 보니 내 노년의 삶이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갈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내가 원하는 삶으로 살기 위해서 할 수 있는 노력들을 지금부터 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는 노년의 삶에서 타인의 도움을 받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나 역시 국가나 사회적인 제도는 그렇게 지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삶에서 누군가의 도움을 어느 정도 받을지는 개인의 판단에 따라 다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노년의 삶에서도 주체가 내가 되는 삶을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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