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 히데코 글, 그림/김소연 역 | 천개의바람
책 제목이 [나무의 아기들]이다. 바로 씨앗과 열매 이야기이다. 나는 몇 년 동안 수목원에서 숲해설을 했기 때문에 이 책을 처음 보았을 때, 분노와 안타까움이 먼저 들었다. 책에 문제가 있어서? 책의 내용이 부족하거나 잘못되었기 때문에 이런 감정이 든 게 아니다. 그토록 숲을 다니면서 줄곧 보았는데 나는 왜 이런 책을 만들 생각을 못했을까 하는 나 자신에 대한 분노와 안타까움이었다. 작가가 얼마나 자주 숲을 다니며 나무와 열매를 관찰했을지, 열매들의 모양과 움직임을 아기들의 몸짓에 적용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갔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나는 이세 히데코의 글과 그림을 좋아한다. 이 작가는 수채화로 그림을 많이 그리는데, 글들은 대게 무거운 주제를 담고 있다. 무거운 주제의 글에 담담한 색감의 수채화 기법을 이용해서 덜하지도 더하지도 않는 아름다운 한 권의 그림책을 완성하는 작가이다. 글과 그림을 같이 작업하면서 이렇게 완성도 높은 작품을 연달아 내기란 쉽지 않다.
보통 그림을 잘 그리면 글에 약하기 마련이고, 글을 잘 쓰면 그림이 약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글, 그림을 동시에 작업하는 작가들도 많지만, 글과 그림이 따로 작업해서 2인이 완성한 그림책도 많은 이유이다. 아는 그림책 출판사 대표는 늘 글과 그림을 동시에 하는 것보다 잘하는 한 분야를 하는 게 낫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림책은 글, 그림 저자가 다를 경우 협업하는 과정이 쉽지 않고, 서로 만족스럽지 작업물이 완성되기 때문에 한 작가가 동시에 하는 경우가 더 많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글과 그림을 같이 작업하면서 완성도가 높은 그림책을 내는 작가들을 보면 존경을 보내는 동시에 질투가 섞인 부러움이 생긴다. 내게 그림이라는 재능을 좀 주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표지와 면지를 만나보자]
이 그림책은 씨앗과 열매라는 딱딱하고 건조한 정보 이야기를 시적인 글과 환상적인 그림으로 제대로 풀어냈다. 표지를 살펴보면 나무의 아기들 제목 아래에 도토리 열매 아기들이 보인다. 하나는 나뭇잎을 단 도토리 가지 하나를 들고 가는 도토리 열매 아기이고 하나는 도토리 열매 모자에서 떨어지고 있는 아기의 모습이다. 그리고 뒷면지에는 나무에서 기생하며 사는 겨우살이 아기의 모습이다.
겨우살이는 사시사철 푸른 잎을 가지고 도토리나무인 참나무나 밤나무 등에 기생하며 사는 나무이다. 잎은 그림처럼 마주나고 잎자루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열매는 초록색의 동그란 모양인데, 작가는 열매 위에 마치 프로펠러처럼 마주난 잎자루를 그려서 겨우살이 열매 아기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 그림들은 본문에 있는 그림으로, 그림 요소들을 다시 디자인해서 표지를 완성했다.
면지는 흰색 바탕에 얼레지처럼 보이는 꽃잎과 나뭇잎을 들고 가는 아기들이 보인다. 나무의 구성원인 꽃과 잎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그림은 오른쪽 아래 구석에 그려 자연스럽게 [페이지터너] 기능을 하게 만든다. 다들 영화나 드라마, 또는 콘서트 장에서 피아노를 치는 연주자 옆에서 대신 악보를 넘겨주는 사람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바로 이런 [페이지 터너] 기능이 그림책에도 존재한다. 책을 읽는 독자의 시선은 우리나라의 경우 자연스럽게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움직인다. 또한 위에서 아래로 내려온다. 그렇기에 오른쪽 하단에 독자들이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도록 유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니 우리는 이 면지 그림을 보면서 귀여운 아이들의 몸짓에 살짝 미소를 지으며 재빨리 뒷이야기가 궁금해서 페이지를 넘기게 된다.
다음 표제지에서도 작가는 마치 이불속에서 뒤엉켜 있는 아기들의 귀여운 모습을 그려주고 있다. 마치 이불처럼 보이는 이 나뭇잎은 바로 벽오동나무이다. 벽오동나무 열매는 마치 돛단배 모양 또는 보자기 모양의 ‘포엽’ 안에 4, 5개의 콩처럼 생긴 열매를 갖는다.
포엽은 잎의 변한 것으로, 꽃이나 꽃받침을 둘러싸고 있는 작은 잎을 말한다. 처음 벽오동나무 열매를 만났을 때 작은 꽃과는 달리 커다란 포엽이 생기는 것에 너무 놀랐다. 어찌 저리 작은 꽃에서 저렇게 큰 포와 열매가 언제 생겼는지 궁금했다. 매일 살펴보지 않고서는 그 과정을 알아내기 어려워서 누군가 그 과정을 다큐 프로그램으로 찍어서 보여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작가는 본문에서 벽오동 열매의 포를 배라고 비유했으며, 바람의 여행을 떠난다고 묘사하고 있다.
[본문으로 들어가 보자]
이야기의 시작은 여름이 시작될 무렵이다.
[여름이 시작될 무렵, 느릅나무 아기는 빛의 조각처럼 하늘을 헤엄쳐요.]
이 텍스트와 함께 귀여운 모자를 쓴 것 같은 느릅나무 열매 아기들이 웃으며 멀리 날아가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느릅나무 열매를 본 적이 없다면 이 글과 그림에 열광하기는 어렵다. 정말 느릅나무 열매는 그림처럼 생겼다. 이처럼 날개를 가진 열매를 식물학계에서는 ‘시과’라고 하는데, 단풍나무, 물푸레나무 등이 이런 날개를 가진 나무들이다. 단풍나무는 날개가 좀 더 길게 프로펠러처럼 생겼다면 느릅나무는 좀 더 챙이 넓은 신생아 모자와 닮았다. 자 그럼 다시 한번 텍스트와 그림을 음미해 보자.
[여름이 시작될 무렵, 느릅나무 아기는 빛의 조각처럼 하늘을 헤엄쳐요.]
느릅나무 열매는 비교적 일찍 떨어진다. 초여름부터 열매가 떨어지는데, 열매가 작고 얇아서 마치 마른 꽃잎이 흩날리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기에 작가는 흩날리는 느릅나무 열매가 빛의 조각처럼 헤엄친다는 멋진 글로 연결한 것일 것이다.
이번에 더 재미난 여행을 떠나는 아기들이 나온다. 책에 글에서는 보리수 아기들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 보리수 아기들은 헬리콥터를 타고 멀리까지 간다고 했다. 사실 이 나무는 보리수나무보다는 피나무가 더 맞을 것 같다. 피나무는 꽃이 필 때 꽃줄기에 날개 모양의 이런 ‘포엽’을 달고 있다. 단풍나무나 느릅나무처럼 날개를 가진 열매들은 바람에 멀리 날아가는 역할을 한다. 태풍이 불면 섬까지도 날아갈 수 있다고 하니 자연의 법칙이 놀랍다. 하지만 보리수나무는 염주를 만든다고 할 정도로 열매가 크고 무게가 있어서 포엽이 날개 역할을 하기는 조금 어려울 것 같다. 그런데 왜 여기서는 보리수나무라고 했을까? 이유는 바로 일본에서 피나무를 보리수나무로 잘못 번역한 사례가 많은데, 그것을 그대로 쓴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작가가 오해했을 수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말하는 보리수나무는 앵두와 비슷하지만 더 긴 달걀형의 붉은 열매를 다는 나무이다.
다음 그림에서는 금빛 머리칼로 묘사한 무궁화 씨앗 아기가 콘서트를 여는 장면으로 연결된다. 그리고 앞에서의 흑백 그림에서 갑자기 컬러가 들어간 그림이 등장한다.
이 책에서는 컬러가 총 두 장면이 들어간다. 첫 번째는 도토리나무들이 등장하는 장면이고, 두 번째는 겨우살이 그림이 등장하는 장면이다.
작가는 흑백의 선 중심의 그림을 그리다가 갑자기 두 장면에서 색을 넣었다. 이것은 단조로울 수 있는 그림의 연속에 색을 넣어 변화를 주고, 강조를 주는 기능을 한다. 또한 글에서도 누구누구의 아기들이라는 설명을 반복하다가 색이 들어간 두 그림에서는 [북풍이 숲을 지나가면 도토리들이 투두둑 떨어져요], [이건 새 둥지 나무일까요?]와 같이 반복적인 글 패턴을 쉬어가면서 다른 분위기로 접근하고 있다.
본문은 백 년을 물속에서 잠자고 있는 달맞이꽃 아기들, 운동회를 여는 콩 나무 아기들, 망토를 입은 서어나무 아기들, 민들레 아기까지 글과 그림으로 멋지게 보여주면서 마지막까지 다다른다.
마지막 장면은 숲 속 아기들이 모두 등장하는 판타지 숲 속을 그리면서 글은 [모두들 다시 만나게 될 거야.]로 끝을 맺는다. 그 뒤는 어린 나무줄기를 관찰하는 어린아이의 모습이 작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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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테라피]
여기 의자 하나가 있어요. 이 의자에 앉아있는 아이를 만나볼까요? 누구냐고요? 바로 당신 안에 있는 내면 아이랍니다. 이미 어른이 되어서 내면 아이가 없다고요? 그렇지 않아요.
내면 아이는 우리가 타고난 인격, 본래 모습을 말해요. 우리 인격 중에서 가장 약하고 상처 받기 쉬운 부분으로 직감적인 본능을 뜻하지요. 꼭꼭 감춰둔 내면 아이를 만나보세요. 그 아이에게 말을 걸어 주세요. 그리고 그 아이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무엇 때문에 힘든지 그리고 무엇을 좋아하는지 들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