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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기 Mar 24. 2022

호주 시골, 무인 상점에 갔더니..

정직과 신뢰에 대하여 

늦은 오후 풋티 연습을 하는 아들을 시골 구장에 내려준 뒤 그 동네(Red Hill) 언저리를 잠깐 산책했다. 여름이면 직접 체리를 따고 사 올 수 있는 그곳에 체리 농장과 작은 가게가 있다. 영업이 끝날 시간이었는데도 가게 문이 열려있어 들어가 보았다. 주인장은 이미 퇴근을 했고 필요한 대로 집어가고 표시된 가격대로 돈을 지불하라는 안내가 칠판에 적혀 있었다. 

시골 깊숙한 곳이라 사람이 붐비지는 않겠지만 이리도 정직과 신뢰를 기반으로 장사를 한다니 놀랍고도 왠지 고마웠다. 야채와 과일들은 농장에서 갓 딴것들이라 싱싱하고 탐스러웠다. 오이 호박 고추 자몽 패션 푸릇을 담고 메모지에 가격과 총액을 적은 뒤 카드로 값을 지불했다. 사고 싶은 것들도 많았지만 수퍼에서 장을 본지 얼마 안돼 참아야만 했다. 

호박 시즌인지 크기도 종류도 다양하게 바구니에 담겨있다. 벽난로 안에 태우기 좋은 체리 나무 장작들도 가지런히 쌓여있다.

모르는 가게 주인이 나를 믿어준다는 사실이 특별나게 다가왔다. 서로를 의심하지 않는 공동체에 산다는 것이 엄청난 행운으로 느껴졌다. 야채 몇 가지 사면서 큰 상이라도 받은 듯 긴장이 풀리고 행복해졌다.  

야채 박스를 들고 이런 길을 다시 한참 걸어 나온다. 따사로운 해가 기울기 전이다.

운동을 마친 아들을 픽업하고 집으로 오는 길, 붉은 해가 뉘엿뉘엿 진다. 오늘도 감사한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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