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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기 Aug 26. 2021

호주 시골 '발라렛 트레일'을 걸으며..

아들과 산책하며 하는 사색들.

산책길에 만나는 양 떼와 곡식을 저장해 놓는 거대한 사일로.

집에서 5분쯤 걸어 나오면 '발라렛 트레일'이란 멋진 산책길 입구가 나온다. 발라렛은 스킵튼에서 50킬로쯤 떨어진 소도시인데 그 긴 거리로 산책길이 이어져 있다. 한때 기차가 다니던 길이었는데 서비스가 중단되면서 레일을 치우고 산책길로 만들었단다. 때로는 평평한 흙길이다가 산길이 이어지기도 하고, 시내를 건너는 다리가 있기도 하고, 또 어느 구간은 상징적으로 기차 레일이 좀 남아있기도 해서 심심할 틈이 없다. 광활한 호주 자연을 양옆으로 두고 흙길을 걷는 맛이 일품이다.


주말이면 멜번의 자전거 동호회에서 단체로 차를 타고 와 사이클을 즐기기도 하고 할리 데이비슨 동호회는 굉음을 울리며 몰려다니기도 한다. 이들은 가죽재킷을 빼입고 터프하게 오토바이를 모는 듯 하지만 막상 헬멧을 벗으면 배뚱뚱이 중년 아줌마 아저씨일 일 때가 많아 놀랍다.   

오늘은 아들이 세발자전거를 타고 나섰다. 이 산책길은 사유지를 지나기도 해 한가로이 풀을 뜯는 양 떼도 만나고 곡식을 추수해 저장해 놓는 거대한 사일로도 종종 보게 된다.            

"짜르릉 짜르릉 비키 나시요..."

아들은 엄마가 가르쳐준 올드패션 자전거 송을 부르며 신나게 언덕길을 달린다.   

자전거 타기가 제법 지루해질 쯤이면 본격적으로 등반을 시작한다. 온몸으로 낮은 언덕을 기어오른 뒤 정상에 서서 너무도 흐뭇해한다. 자기가 해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지 후다닥 뛰어내려와 다시 오르고 또 오른다. 바지마다 무르팍이 제대로 남아날 리 없다. 그래서 무언가를 덧대 바지를 수선하는 일이 나의 새로운 일과이자 취미가 되어버렸다. 너무 궁상인가? 

새로 사 입히는 것도 어렵지는 않지만, 내 나름대로의 이유를 몇 가지 들어보자면 이렇다.

첫째, 좀 더 시골 아낙다운 모습으로 살아보고 싶어서다.

호롱불 아래서 바늘 끝에 머리기름 발라가며 바느질하던 할머니들의 모습을 그려보라. 그 따뜻함이 그립지 않은가? 아들에게 아날로그적 추억을 만들어주고 싶다.  

둘째, 어렵게 배운 기술 써먹고 싶어서다.

중학교 가사 시간에 박음질은 어쩌고 저쩌고... 이게 뭐라고 암기에 실기까지 점수로 평가받으며 배웠다. 그땐 대한민국 교육의 전근대성 비실용성 사소한 것을 점수화하는 것들에 대해 비판했고 또 이후로 30여 년간 거의 바느질을 써먹지도 않았다. 하지만 끝없이 새로운 것을 배우기를 강요하는 현대사회가 주는 또 다른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 않고 이미 배운 것 중에도 충분히 쓸만한 것이 있다고 스스로를 격려하기 위해서다. 나의 바느질 솜씨는 지극히 초보적이다. 이미 낡고 작아 입지 못하는 아이 바지의 뒷주머니를 잘라내 아직은 입을만한데 무릎만 닮은 바지 위에 덧대고 엉성하게 꿰어 붙인다.

셋째, 지속 가능한 미래를 아들에게 물려주기 위해서다. 온갖 문명의 이기와 물질이 주는 안락함을 누리고 있고 그걸 한 번에 다 거부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부분만큼은 해보겠다는 자잘한 의지다.

엉뚱한 바느질 얘기하느라 딴 길로 샜다.

그새 아들은 하산하여 땅 위에서 무언가를 탐색하고 있다. 나뭇가지 위에 달라붙어 있는 작은 벌레 한 마리. 벌레와 대화도 하고 노래도 불러준다.

호주 사람들이 거미나 도마뱀 등을 보면 입에서 첨 뱉는 말이 'Beautiful'이다. 전 국민이 그런 건 아니겠지만 말끔한 여자 아이들도 종종 지렁이를 손에 올려놓고 너무 예쁘다며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본다.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그것이 처음에는 문화충격으로 다가왔었다. 

흙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 뒤, 나도 자연 속의 미미한 존재들을 긍정적인 시선으로 보게 됐다. 정원에서 잡초를 뽑다가 지렁이가 나오면 아들을 불러 조용히 같이 관찰한다. 집안에서 별안간 튀어나오는 낯선 생명체들이 마냥 반갑지만은 않지만 자연 속에서 만나는 모든 존재를 인정하는 마음을 갖고 싶다. 그들은 나보다도 먼저 이곳에서 살아왔고 자신의 삶을 열심히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입구로부터 2킬로쯤 걷다가 다시 되돌아왔다. 나머지 48 킬로는 시간을 두고 천천히 탐색해 봐야겠다.   

"엄마, 나 좀 안고 가면 안 돼?" 왕복으로 주야장천 뛰놀던 아들이 지쳐 누웠다.

"엄마는 늙고 연약한 여자란다. 네 힘으로 더 걸어 볼래? "

아이가 '이제 좀 집에 가서 쉬자'고 애원할 때 난 엄마로서의 소임을 다 한 것 같아 뿌듯하다. 자고로 아이들이란 산과 들을 맘껏 뛰놀다가 해질 녘에 집에 돌아와 저녁 먹고 곯아떨어져 자야 하는 존재라고 나는 믿는다. (2009/09/14씀)

길 위에서 무언가를 탐구하는 아들을 기다리며 나도 풍경을 감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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