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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나물 봄동이 Sep 19. 2016

먼지가 되고 싶다

나도 먼지가 되고 싶은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다

제가 이 매거진에서 어떤 얘기를 하고 있냐고요? 엄마와 저의 삶이요, 시시한 삶. 우리의 시시한 삶에 뭐가 있냐고요? 사랑이요, 시시한 사랑들이죠. 그리고 열망, 시시한 열망에 대한 얘기. 저는 알아요, 시시한 사람들이 참 많다는 사실을. 그래서 왜 이 매거진을 별로 읽지 않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요. (장 자끄 상뻬의 <풀리지 않는 몇 개의 신비> 속 구절을 제 마음에 맞게 바꿔 써보았습니다.)    





[엄마의 시]  

  

먼지가 되고 싶다  


      

파란 신호등이 몇 번 켜져도

묵묵히 보며 서 있었다.

길을 건너야 한다는 걸 잊고 있었다.

잃어버린 것은 잠시 놓친 시간만은 아니다.    


그곳에 소중하게 읽던 책 한 권을 두고 왔다.

그곳이 이 지상의 어딘지도 모른다는 것이 날 절망에 빠뜨린다.    


그림 속에 쌓인 숲속의 켜켜로 쌓인 흰 눈 속에

발자국이 길게 나 있었다.

어느 날 전생의 내가 즐겨 찾던 숲길은 아니었을까 망상하는

쓸데없는 버릇은 잃어버리고 싶은데 정작 잃어버려지지 않고...    


차라리 그림 속에 갇힌 

여인이 되고 싶었다.

눈도 귀도 아무 생각도 없는 한 알의

먼지가 되고 싶었다.       




                     


[딸의 이야기]    


먼지가 되고 싶었던 엄마의 상황이 무엇이었는지 나는 정확하게 모른다. 다만 ‘먼지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 뭔지는 잘 알겠다. 나도 그런 적이 있었으니까.


몇 년 전 어느 밤, 나는 지하철 안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어제도, 그저께도, 그그저께도, 일주일 전에도, 보름 전에도 나는 그렇게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내일도, 내일모레도, 일주일 뒤에도, 보름 뒤에도 나는 이렇게 눈물을 흘리고 있겠지. 언제까지 이렇게 퇴근길에 우는 일이 계속될까. 어쩌자고 눈물은 이렇게 계속 나오는 걸까. 그런 생각들을 마치 다른 사람의 일인 양 담담하게 이어갔다.  


책을 좋아했고, 그래서 편집자라는 직업을 갖게 되어 참 즐겁게 생활했는데, 어느 순간 일이 재미가 없어졌다.


“회사를 재미로 다니는 사람이 어딨어? 다들 그냥 돈 벌려고 다니는 거지.” 말하는 사람도 있다. 틀린 말은 아니겠지만 내게 와 닿는 말도 아니었다.


9시 출근, 6시 퇴근. 하루 8시간을 꼬박 보내는 곳에서 재미를 찾지 않는다면 어디서 재미를 찾는단 말인가. 물론 좋아하는 일을 해도 언제나 좋지는 않을 수 있다. 그걸 모르지 않았다. 오히려 괴로움도 있어야 그게 더 진짜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일의 즐거움과 괴로움을 잘 감당하면서 살아왔다. 그동안은 그랬었다.


돌이켜 생각하면 그 무렵은 좀 달랐던 것 같다. 특히 날 괴롭히는 하나의 일이 있기는 했다.


살아오면서 나는 누군가와 원수처럼 싸워본 일도, 특정한 한 사람에 대해서 나쁜 마음을 먹어본 일도 없었다. 그런데 그때 한 사람과 문제가 있었다. 업무적으로 알게 된 사이였고, 업무적으로 일어난 문제였다. 나는 잘 해결하고 싶었다. 상대의 반응이 억지처럼 생각되더라도 내가 진심으로 노력하면 잘 해결될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잘 안 되었다. 상대가 날 할퀴는 말에도 고개를 숙이는 날들이 계속되다가 지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내 마음에 싹트는 나쁜 마음이 싫었다. 통화 속 상대방의 목소리를 들으며 ‘저 사람은 내게 왜 저렇게까지 하는 걸까. 저 사람이 잘 안 되었음 좋겠다’ 생각하고 있는 스스로가 가엾고 싫었다. 


그동안의 삶에 대한 허무도 있었다. 서른이 다 되었는데,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온다고 살아왔는데, 왜 나는 지금 이렇지. 모아놓은 돈은 없고 빚만 있고, 일은 힘들고, 누군가가 잘못되길 바라는 내 마음이 초라하고 아 다 싫다, 그냥 차라리 저기 저렇게 떠 있는 먼지가 되고 싶다…….


그 어둠 속을 빠져나온 지금에서야 뭐 그렇게 힘들어했을까, 그냥 저 사람은 나쁜 사람이야, 내가 잘못하지 않았어도 누군가가 나를 때릴 수 있는 거야, 그렇게 터무니없이 맞았다고 생각되면 상대를 원망해도 되는 거야, 생각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땐 그러지 못했다.


어떻게 그 시기를 지나왔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는다. 그냥 그동안 하루하루 살아왔던 것처럼 하루하루를 살았다. 밑바닥까지 가라앉았다가 서서히 물 위로 떠오른 사람처럼 그렇게 나는 다시 이전의 즐거움과 괴로움이 있는 일상으로 돌아왔다. 


나는 이제 지하철 안에서 눈물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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