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책나물 봄동이 Sep 08. 2016

여름밤, 맥주와 링고링스를

나는 링고링스의 맛을 다시 찾고 싶다

이 매거진 속 이야기들은 제가 혹은 누군가 겪은 일에서 출발합니다. 아, 물론 상상 속에서의 일도 포함합니다. 그렇기에 소설이 아닌 것처럼 보일 때조차도 저는 소설이라고 부를 거예요. 뭐, 그냥 그렇다고요. 



야근하고 집에 들어가는 길.

퇴사라는 단어를 여러 번 곱씹었던 오늘 같은 날엔 그냥 잠들 수 없지.

맥주를 사기 위해 편의점에 들렀다.


수입 캔맥주가 네 캔에 만 원. 나름 퀄리티가 괜찮아 종종 마신다.

평소에는 한 캔이면 충분하지만 오늘은 두 캔은 마셔야 할 것 같다.

안주를 뭘로 하지 생각하며 둘러보는데     


-맥주 안주 찾으세요? 링고링스는 어떠세요?    


알바생의 목소리가 날 붙잡았다. 야간에 들를 때면 마주치던 무심한 아주머니 대신 웬 남자였다.

   

-링고링스라고 이게 새로 나온 건데요, 프링글스랑 비슷한데 좀 덜 자극적이고 맛은 더 괜찮더라고요. 여기 작은 게 한 개에 1700원인데 지금 2+1 행사하고 있어요. 맛은 총 세 종류인데...    


몇 살쯤 되었으려나.

아직 군대도 다녀오지 않은 이십대 초반 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갓난아기가 있는 삼십대 초반의 가장 같기도 했다.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이 남자는 어찌하여 여기서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밤 11시 45분에도 저렇게 미소 짓는 얼굴일 수 있을까.

평소 과잉친절엔 한 걸음 물러서는 나였지만 그날의 친절에는 어쩐지 기분이 나아졌다.

나는 그날 남자가 추천한 링고링스를 2개 샀고 2+1 행사라서 총 3개를 집으로 가져갔고 기분이 나아져서 맥주는 한 캔만 마실 생각이었는데 링고링스가 너무 맛있어서 맥주와 링고링스는 너무 딱 맞는 천생연분이어서 맥주 3캔과 링고링스는 3개를 다 먹고 말았다.     




다음 날 저녁 퇴근길에 링고링스를 사러 편의점에 갔는데 그가 아닌 어떤 할아버지가 있었고 나는 링고링스 대신 자일리톨 껌 한 통만 사서는 나왔다.

어쩐지 그에게 링고링스를 내밀고 싶었다.

그럼 그가 날 기억하고 제 말이 맞았죠 링고링스 맛있었죠 할 것 같았고 그럼 나는 동의하며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사소한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그러나 며칠 동안 그는 보이지 않았고 내 혀에 기억된 링고링스 맛이 사라지고 있었고 그러던 어느 날 그를 보았다.     


친구와 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새벽에 들어가던 길이었다.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할 정도로 오랜만에 많이 취했다. 그런데도 나는 집까지 가지 않고 편의점 앞에서 택시를 내렸다. 혹시나 하고 밖에서 편의점 안을 들여다보았는데 거기 그가 있었다. 컵라면과 삼각김밥을 먹고 있었다.     


갑자기 술이 깨는 느낌이었다. 그가 편의점에 있을 때 링고링스를 사고 싶었는데 어쩐지 지금은 때가 아닌 것 같았다. 그의 식사 시간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몇 초간 그를 보다가 집으로 들어갔다.    

 

자면서 먹고 또 먹고 토하는 꿈을 꾸었다. 깨서는 정말로 화장실에 가서 먹은 것을 토해냈다. 컵라면과 삼각김밥을 먹던 그의 표정이 어땠는지 기억하고 싶었는데 잘 기억나지 않았다. 그와 맛있는 밥을 한 끼 같이 해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말 내내 집에 있다가 월요일 퇴근길에 편의점 안을 보았지만 그는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들어갔다. 커다란 눈이 예쁜 여학생이 있었다. 나는 여학생에게 물었다.    


-여기 알바하시는 분들은 여러 명이 돌아가면서 하나 봐요?


-네. 근데 그건 왜요?    


-그냥... 여기 남자분 밤늦게 일하시는... 야간에 일하시는 분인데.. 요즘 안 보이시길래요.. 그그저께 계시긴 했는데.. 무슨 요일마다 나오시는 건가 하고...    


두서없는 내 말에 여학생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여기 야간에 일하는 남자는 없는데요.    


-그러니까... 한 몇 주 전 목요일 밤에 제가 여기 들러서 맥주를 샀었거든요... 그때 그 남자분이...   

 

내 말을 끊고 여학생이 말했다.    


-다른 편의점이랑 착각하셨나 봐요. 여기 야간에는 주인아주머니만 하세요.    


-아닌데... 제가 분명히... 그때 링고링스랑 캔맥주들이랑 샀거든요. 그 남자분이... 이십대거나 아니면 삼십대일 것 같은데...   

  

이제는 여학생의 표정이 아주 날 이상한 사람 보듯 보고 있었다.   

 

-저기요, 손님. 여기 야간에는 주인아주머니만 일하시고요. 알바생 중에서도 이삼십대 남자는 없어요. 남자는 60대 할아버지 한 분만 계신데... 그리고 링고링스요? 그게 뭔데요?    


링고링스가 뭐냐고?

그건.... 아, 근데 아무리 둘러봐도 링고링스는 보이지 않았다.

맛있게 먹었던 그날의 링고링스 맛이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천 원에 9개인 붕어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