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타이베이
불광사를 가기 위해 이용했던 쭤잉역은 대만고속철도의 종착역과 연결되어 있다. 타이베이로 가는 고속철을 타기 위해 월요일 아침 일찍 숙소에서 체크아웃을 했다.
고속철 요금은 1490 대만달러였는데 Klook이나 KKday앱을 통해 예매하면 1250 대만달러, 우리 돈으로 5만 원 안쪽으로 예매 가능하다. 2018년부터 지금까지 요금이 동결되어 있는 상태다. 그간 물가인상률을 따지면 상대적으로 저렴해진 것이다. 3백 킬로미터의 거리를 두 시간에 주파한다. 일반 열차보다 내부 공간이 다소 좁은 듯 느껴지고 KTX나 SRT에 비해 내부 인테리어는 소박한 편이다.
시먼딩을 다시 찾은 이유는 훠궈였다. 시먼딩은 훠궈천국이다. 블로그를 검색해서 한국사람들이 가장 많이 추천하는 황지아훠궈를 찾았갔다. 월요일 이른 점심시간인데도 대기를 많이 해야 했다. 기다리는 대신 우리는 근처 팔해훠궈에서 식사를 하기로 했다. 선택은 성공적이었다. 2만 원 남짓의 식대로 질 좋은 고기들과 샐러드바가 무한리필이고 하겐다즈 아이스크림과 생맥주까지 무제한이라 가성비가 좋았다.
시먼딩의 별명은 대만의 시부야 혹은 하라주쿠다. 일제강점기 때 타이베이의 대표적인 일본인 거주지역이자 상업지구로 개발된 곳이다. 서울의 단성사 거리, 종로 3가와 같은 역사적 배경을 토대로 명동 같은 공간으로 발전했다가 홍대 앞 거리 같은 곳이 되었다. 우리는 각 거리가 각자 발생 발전한 반면 시먼딩은 굳건히 그 자리에서 시대의 변화를 받아들이며 거리의 색깔을 바꾸고 유행을 선도해 왔다. 하지만 거리의 구조, 즐비한 일본 음식점, 일본식 건축유산, 일본브랜드들은 여전히 일제강점기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국민당 정부의 강압적 점령과 통치의 반작용과 대만 독립의 정체성 속에서 일제가 상대적으로 긍정적 타자로 인식되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다고 한다.
젖어있는 도시는 늘 매력적이다. 특히 비에 흠뻑 젖은 아스팔트의 찐득한 질감은 시각적 흡입력이 대단하다. 젖은 날의 컬러는 왜곡되지 않은 본연의 진한 색감으로 다가온다. 비 오는 날일수록 프레임 안의 색감이 차오르는 빛의 아이러니. 이런 날은 구름의 그라데이션도 다이내믹하다. 여러모로 사진을 찍기 좋다. 빛이 머리 꼭대기에 걸리면 난 카메라를 가방 안 깊숙이 쳐 넣어버리곤 하는데 이렇게 흐린 날은 하루 종일 셔터를 누르는 검지가 아주 바쁘다.
어두운 양수에서 근 일 년을 지낸 후 세상으로 나온 인간에게는 비 자체가 일종의 노스탤지어가 아닐까?
맑고 화창한 햇살은 우리 공간을 진하고 강한 콘트라스트의 세계로 인도하지만 직사광선이 사라지고 나면 그림자 속의 디테일들이 요동을 치며 살아난다. 우리 눈으로 직접 빛의 계조들을 낱낱이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인 것이고 암부의 진실을 발견하는 환희의 시간인 것이다.
사진가는 직사광선이 가려지는 흐린 날을, 북으로 창이 난 공간을, 반사판을, 보조광원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무릇 스포트라이트는 짙은 어둠을 만들고 진실은 그 속으로 기어 들어가 감추어지기 마련이다. 인생도, 사람도 그림자에 갇힌 진실을 들여다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거짓을 감추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반대편에 강한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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