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왜 곤충을 좋아할까?

#기억여행

by 닥터파브르

아이와 함께 유치원으로 향하던 어느 아침, 길가에서 우리는 무당벌레 한 마리를 만났다. 아이의 조그마한 손바닥 위에 살포시 내려앉은, 작고 단단한 생명체. 아이는 그 존재를 들여다보며 눈을 반짝였다. 그 다정한 시선을 바라보다 문득, 어린 시절의 내가 떠올랐다.

알록달록 무당벌레 한마리

매일 밤 나는 잠자리채를 들고 동네 방방곡곡을 누비며 곤충을 찾았다. 골목마다, 가로등 아래마다 곤충이 있을까 두리번거렸다. 특히 어두운 밤, ‘투다리’ 음식점 앞, 둥근 조명 아래 모여드는 수많은 곤충들은 내 모험의 시작점이었다. 그곳엔 언제나 매미가 많았고, 나는 매미를 유독 좋아했다. 사람들은 매미 울음이 시끄럽다 말했지만, 내겐 그것이 여름의 서곡이었다. 대청마루에서 매미 울음과 함께 먹는 시원한 수박 한 조각은 내 유년의 완벽한 휴가였다. 그러고 보면,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고 아이들은 곤충을 좋아한다. 나의 아들에게도 물어본 적이 있다.


“왜 곤충이 좋니?”

아들은 대답했다. “귀엽잖아.”


그 말에 피식 웃음이 났다. 맞다, 귀엽고 말고. 그 순수한 시선이 결국 지금의 나를 다시 곤충 앞으로 데려다 놓았다. 그래서일까. 두 번째 창업 아이템으로 내가 곤충을 택한 것도 그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나는 곤충이야말로 지구 최강의 생명체라 믿는다. 빙하기와 간빙기를 모두 견디며 생존해 온 존재. 기후위기의 시대, 인류를 구원할 열쇠는 어쩌면 그 작고 낯선 다리들 속에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곤충은 지금 나에게 작은 영웅이다.


내 삶에서 단 하나, 뜻대로 되지 않는 존재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다름 아닌 자식이다. ‘청개구리’라 불러도 좋을 내 아이와 나는 아침마다 전쟁을 치른다. 깨우고, 먹이고, 씻기고, 유치원에 데려다 주기까지. 내 인생에서 가장 고된 난이도. 어느 날, 유치원 하원길에 아이가 내게 말을 걸었다.


“아빠, 우리 개미 키워보면 어때?”


그 말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늘 무릎을 구부린 채 땅 위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아이. 요즘 들어 부쩍 호기심이 자라났다. 나는 늘 바쁜 걸음으로 “빨리!”를 외치고, 아이는 그런 나의 재촉이 못마땅한 눈치다.


“아빠는 왜 맨날 앞만 보고 가? 옆에 재미있는 게 얼마나 많은데. 나무도 있고, 애벌레도 있고, 민들레꽃도 있는데... 난 빨리 가기 싫어.”


그 한마디가 내 마음 깊숙한 곳을 쿡 찔렀다. 그러게, 왜 어른들은 늘 앞만 보고 달려가는 걸까. 오늘은 아이의 낮은 눈높이에서 세상을 보기로 마음먹었다. 작고 느린 시선. 그 안에는 내가 스쳐 지나온 순수와 잊고 지낸 생명들이 고요히 살아 숨 쉬고 있었다.


화창한 주말, 나는 아이의 손을 잡고 교외로 나들이를 나섰다. 오랜만에 꺼낸 잠자리채와 채집통이 가방에 담겼다. 오늘의 작은 모험은 잠자리를 찾아 떠나는 일. 파란 큰 밀잠자리는 번개처럼 날아 사라졌고, 고추잠자리는 하늘 저편에서 손이 닿지 않는 곳을 맴돌았다. 곧 동네 삼총사 아이들도 하나둘 합류했고, 아이들은 무더운 햇살 아래서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뛰고 또 뛰었다.

그해 여름, 우리에겐 햇살보다 눈부신 시간이 있었다.

잠자리는 결국 잡지 못했다. 하지만 아이들의 얼굴에는 그 어떤 보물보다 빛나는 웃음이 피어 있었다. 맑고 순한 그 웃음은 문득 오래전 내 기억 하나를 끄집어냈다.

바람을 가르며 외치는 마음, 제발 이번엔 한 마리 만이라도

아득한 유년의 여름, 친구들과 함께 땀을 뻘뻘 흘리며 곤충을 쫓던 나날. 손엔 나무채와 채집망, 눈엔 반짝이는 호기심. 흙먼지 날리는 들판에서 마주하던 그때의 짝꿍들. 늘 함께였고, 그 시간이 영원할 것만 같았던 친구들. 그중에서도, 두더지를 잡겠다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던 한 친구가 떠오른다. 그리고 문득, 그 아이가 보고 싶다.


친구야, 지금 어디서 어떤 여름을 살고 있니? 잘 지내고 있지?”

지나고 나서야 알았다. 그 여름이, 우리의 전부였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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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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