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저는 오랜만에 친구와 짧은 제주도 여행을 왔습니다. 최근 생각을 정리하다 보니 저에게 결여되어 있는 것을 찾았거든요. 바로 2024년에 대한 설렘이었습니다. 11월쯤부터 2024년에 대한 보고서를 써오다 보니 24라는 숫자가 눈에 익어버렸나 보더라고요. 23이라고 쓰다가 '아차차'하는 생각으로 다시 24로 고쳐 쓴 적이 한 번도 없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조금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새로운 시작을 위해 일상을 끊을 필요를 느꼈고 3박 4일의 제주도 여행을 잡았습니다. 최근에 제주에서 뜨는 비행기가 결항하였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인지 날씨에 대한 걱정이 많았습니다. 감사하게 이번 여행 기간, 날씨 요정인 저의 덕으로 꽤 쾌적한 시간을 보내는 중입니다.
저는 날씨 요정 중에서도 상당히 상급인 편입니다. 최근 일본 여행 땐 태풍도 돌려세웠는데, 태풍이 한국으로 방향을 트는 바람에 애국하지 못한 기분에 속상했던 적도 있었어요. 지금은 낮 기온이 17도까지 올라가고 있습니다. 지구가 아픈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날씨가 좋네요. 겨울 제주는 비수기로 알고 있었는데, 낯선 환경의 연속입니다.
제주도 카페 (왼) 호텔샌드 - 협재해수욕장이 보이는 / (오) Lazypump - 돌고래 볼 수 있는
덕분에 환기가 됩니다. 따듯한 날씨로 스프링캠프를 온 느낌이에요. 시즌을 앞두고 운동을 할 수 있는 몸을 만드는 선수들처럼 예열하는 느낌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저의 경우는 마음을 가라앉히는 시간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화창한 날씨를 보면서 책을 읽고, 글을 썼습니다. 밤에는 하늘에 맺혀있는 별도 잔뜩 구경하고 있고요.
한동안 여행이란 사람들을 만나는 용도였기 때문에 낯선 경험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동성 친구랑 오는 여행이었지만, 식도락을 추구하고 음악을 듣고 누워서 쉬기만 하는 시간은 처음이거든요. 이번 3박 4일이 특별한 전환점이자 변곡점이 되지 않을 것이라 알고 있습니다. 다만, '2024년을 여는 시간'이라는 이름을 붙이다 보니 기분이 색다르긴 합니다.
저와는 다르게 KBO와 자이언츠에는 많은 변화가 있을 예정이라고 합니다. 당연히 알고 계시겠죠? ABS(자동 볼 판정 시스템/AutomaticalBall-Strike)와 베이스 크기 확대, 수비 시프트 제한 등이 가장 큰 변화라고 들었습니다. 야구의 매력인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라는 것에서 오는 역설적인 아쉬움, 경기 시간 단축을 위해서 말이에요.
가장 눈길이 가는 것은 사전부터 계속 예고되어오던 자동 볼 판정 시스템이에요. 늘 심판분들의 판정에 대한 불만이 있을 수밖에 없으니까요. 베이스 크기를 늘리는 것도 경기를 더 긴박하고 박진감 넘치는 상황을 많이 연출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규정들이 자이언츠에는 과연 도움이 될지는 지켜봐야 할 것 같다는 것이 중론이겠죠.
투수가 던진 공을 잡은 후 미묘한 손장난으로 '볼'을 '스트라이크'로 만드는 능력이 주 무기인 주전 포수 유강남 선수를 포함해서, 아직도 포수에 대한 약점이 있다고 생각되는 자이언츠에 이런 박진감 있음을 추구하는 상황이 득이 될지, 실이 될지에 대해서는 전혀 감이 오지 않더라고요. 야구라는 스포츠에는 큰 도움이 되는 상황이더라도 말이죠.
총 10개 구단에서 속한 수많은 선수들이 뛰고 있는 프로리그에서 룰의 변화는 사람마다 다르게 받아들여지겠죠. 누군가에게는 환호를, 다른 이에게는 좌절을 줄 것입니다. 사실 이건 야구에만 적용되는 사실은 아닌 것 같습니다. 직장을 다니는 저에게도 결이 비슷한 일이 일어나곤 하는데요. 하지만 일반 직장생활과는 다른 일을 하시는 주니님을 위해 ‘상사’가 바뀌었을 때로 바꿔서 생각해도 될 것 같아요.
회사에서는 아무리 좋은 조직문화를 가지고 있어도 결국 상사의 최종 결정이 있어야 일이 진행되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그 결정에 책임을 져야 하므로 많은 돈을 받고 상사의 역할을 맡겨주는 것이니까요. 대신 책임을 지는 만큼 본인의 색깔에 맞게 조직을 운영하게 되고 밑 사람들은 그 결정을 따라야 하는 숙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기 인사 시기가 되면 사람들이 긴장하는 것도 비슷한 이유겠죠. 어떤 사람이 승진하고 보직을 맡느냐에 따라 작게는 부서, 크게는 회사 전체의 색깔이 바뀌기도 하니까요. 맞춘다는 것은 매번 쉬운 일이 아닌 듯합니다. 개인으로 따지면 업무 수행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말일 수도 있으니까요.
저도 지속해서 상사가 바뀌는 환경에서 지내왔습니다. 거의 매년 부서장이 바뀌고 있으니, 한편으로는 내가 문제인가 하고 돌아봐야 할 만큼 말이에요. 사람마다 원하는 바가 다르니 맞추는 것이 참 쉽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몇 년이 쌓이다 보니 나름의 답은 찾은 것 같아요. 우선 첫 번째는 ‘규칙이 바뀌면 그것에 맞게 바뀌는 것이 필요하다. 원하지 않는다고 상사를 바꿀 수는 없다'. 그리고 두 번째는 '어느 이상 잘하게 되면 그 방식을 존중해 준다.'라는 거예요.
최근 새로 업무가 바뀐 리더에게 조언하는 책을 읽을 기회가 있었는데, 공감을 할 수 있는 몇 개 중 하나가 '상사한테 맞춰라.'더라고요. 너무나도 당연한 말인가요?미국의 유명한 컨설팅 회사의 대표가 한국이나 동아시아 정서에 맞을 것 같은 이야기를 하는 걸 보면서 단순히 문화를 넘어서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조언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The Fisrt 90 Days』- 마이클 왓킨슨
아직 저는 두 번째 답에 대해서는 직접 피부로 와닿는 공감을 할 수 없는 주니어입니다. 그래도 제 레벨에서도 어느 정도 와닿는 부분이 있더라고요. 어쨌든 결과를 내야 하는 조직의 일원으로서 어떻게 해도 완수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인재에게, 굳이 무리하게 허들을 줘가며 일할 필요는 없다는 거죠. 그렇지 않다면 그건 리더에게도 책임이 전가된다고 생각해요.
어느 정도 공감을 하시나요? 다시 자이언츠로 고개를 돌려봅니다. 매년 올해는 다를 거라는 캐치프레이즈로(자이언츠 공식은 아닌), 팬들의 외침이 벌써 들려옵니다. 그와는 별개로 규정이 달라지면서 정말로 새로운 한 해가 예고되었습니다. 다른 팀의 팬들도 이미 많은 걱정과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스포츠의 룰 변경은 일반 직장인보다 더 큰 영향을 줄 수 있을 거로 생각합니다. 스포츠란 미세한 몸의 변화에도 균형이 무너질 수 있는 장르니까요.
그래도 아직 1월이지 않습니까. 저는 잘 해내리라 믿습니다. 매년 믿음이 있기에 투덜거리면서도 응원할 수 있는 게 아닐까요. 그러고 보니 마침 선수들에게는 리더도 바뀐 해네요. 여러 변화가 있는 프로야구에서 그들이 살아남길, 우리 팬들이 웃는 날이 더 많아질 수 있길 바라는 건 애정 대비 큰 욕심은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러고 보니 주니님은 새해를 어떻게 열고 계시는가요? 본인만의 시작점을 따로 설정해 두신 것은 있을까요? 그리고 작년과 다르게 올해의 가장 큰 변화는 어떤 건지도 궁금합니다. 변화에 도태되지 않을 우리 선수들을 위한, 야구 직관과 관련된 목표도 있으신가요? 글을 마치려고 하니 궁금한 것이 샘솟습니다.
그렇게 대화에 양심을 차리지 않는 편이라 제 이야기만 주야장천 하고 싶을 때도 있는데, 오늘은 이성의 끈을 잡은 느낌이네요. 그리고 하고 싶은 말을 마구 쏟아내서 들을 여유도 조금 생긴 것 같고요. 우리도 편지를 주고받는 것도 재미있지만, 결국 정체성을 찾기 위해 야구장도 찾아가야 할 텐데 우리만의 계획도 짜야할 거고 말이죠.
궁금한 게 많습니다. 다행히 이 메일로 주고받는 편지이니 종이가 부족해서 쓸 것이 적진 않을 것 같네요. 원하는 만큼 내용과 정성을 가득 담은 답장을 기대하도록 하겠습니다. 제주도 여행에도 야구 생각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라이트 한 팬은 이만 물러나면서 다시 뭍으로 돌아가 연락을 남기겠단 말과 함께 글을 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