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따금 듣는 표현입니다. 이 말을 들을 땐 늘 "원래로 성공한 사람은 강원래 씨 말곤 없어"라며 우스갯소리로 넘겨버립니다. '원래'라는 표현은 제가 경계하는 표현 중 하나거든요.
사실은 부정하고 싶어 하는 표현 중 하나입니다. 계속 사람은 변하더라고요. 물론 수십 년간 취향이 변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죠. 주변에서도 '쟤는 원래 그래'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말이죠. 음, 성향이 독특하다 하실 수도 있는데, 저는 '왜 그렇게 되었어?'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어 집니다.
드리 : "햄버거는 롯데리아의 새우버거야. 다른 맛있는 프랜차이즈나 수제버거 음식점이 있지만, 새우버거를 좋아해."
친구 : "예전엔 어떤 커뮤니티의 글에서 새우에 알레르기가 있는데, 롯데리아 새우버거를 먹으면 괜찮다는 글을 봤거든. 새우가 없는 새우버거가 좋다고?"
드리 : "응. 난 두툼한 새우가 패티 안에 숨어 있다가 어금니에서 톡톡 터지는 싱싱한 새우로 승부 보는 햄버거가 좋은 게 아니라 롯데리아에서 파는 새우버거가 좋은 거거든"
친구 : "쓸데없이 구체적이네. 근데 왜?"
드리 : "학창 시절에 친구들과 생일파티 할 때 롯데리아에서 했던 기억이 있거든. 그때 먹은 햄버거가 생각나. 기름지거나 양념이 강한 다른 버거보다는 상대적으로 담백한 것도 좋더라고"
회사에서는 최소 하루 한 번은 카페에 방문합니다. 보통 선배들을 따라나섭니다. 업무에 대한 이야기뿐 아니라 잠깐이나마 노닥거리는 소중한 시건이거든요. 가끔은 업무로 못 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럴 땐 선배들과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선배1 : "드리야. 넌 뭐 마실래?"
선배2 : "쟤는 페퍼민트인데, 미지근하게 마셔"
선배1 : "ㅋㅋㅋㅋㅋㅋ 뭐라고? 아이씨 그냥 아이스 아메리카노 마셔. 주문하기 힘들어"
선배2 : "원래 저거 마시더라고 ㅋㅋㅋ"
저는 고등학생 때부터 커피를 마셨습니다. 입사한 뒤로도 계속 마셔왔고요. 출근 후 커피를 다섯 잔 마셨던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커피를 이렇게 마셔도 건강한 걸까?' 이 날을 기점으로 커피 대신 차를 마시기 시작했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원래' 차를 마시지 않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따금 동료들에게 커피 없이 어떻게 하루를 버티냐고 질문을 받아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말이에요.
누군가에게는 다소 과도한 정보일 수도 있지만, '왜?'에 대해 답을 해줄 수 있는 친절한 답변이 좋습니다. '원래'라는 말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고유한 특성으로 만들어버리는 게 아쉽다는 생각입니다. 한 사람의 스토리가 한 단어로 대신해지는 게 아깝다고나 할까요.
미쳤다. 원래 이런 거야?
매우 격양된 목소리였습니다. '원래'를 지양하지만 싫지 않은 탄성이었어요. 자이언츠의 직관을 온 친구 부부가 5분에 한 번씩 내뱉은 감탄사였거든요. 다행이었습니다. 첫 직관의 첫 타석이 3루타로 시작해 빅이닝(한 번 공격에 3점 이상을 낼 때)을 만들어버렸거든요. 예매부터 많은 골머리를 싸맨 보람이 있는 시작이었습니다.
보통 직관을 갈 때 중요하게 생각할 만한 요소는 크게 세 가지라 생각합니다.
첫 번째는 어떤 음식을 먹을 것인가. 처음 야구를 보러 간다면 치맥에 대한 기대가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치킨을 무조건 먹이고 싶지만, 또 다른 맛을 추구하는 사람들도 있거든요. 주전부리를 고민해야 합니다. 다행히 오늘의 경기는 수원에 있는 KT위즈파크의 경기였습니다. 수원의 맛집으로 알려진 '진미통닭'과 '보영만두'가 입점해 있습니다. 본점에서 먹는 바삭함을 기대하긴 힘들지만, 그래도 명물인 치킨을 골랐고요. 보영만두의 만두+쫄면의 기가 막힌 조합도 무시할 수 없으니 같이 골라줬습니다. 쫄면은 생각보다 매콤한 편이기 때문에 3단계 맵기 중 중간 맛을 골라줬고요.
출처 : 보영만두
두 번째는 어디에 앉느냐입니다. 티켓팅을 해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여러 명이 함께 갈 때 이어진 자리를 확보하는 건 보통 난이도가 아닙니다. 응원단 앞자리, 익사이팅존(선수를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는), 테이블 석 같은 곳들은 정말 자리 잡기가 어렵습니다.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최근 여름이 무지하게 덥습니다. 날이 끓는다고 해도 될 정도의 열대야가 이어지니까요. 밤잠도 설칠 만큼 더운 나날들인데, 낮 시간은 말도 못 할 더위가 예상되었던 점이 선택의 폭을 줄였습니다. 응원단 앞에서 응원을 배워가며 응원하거나, 조금 멀어도 그늘이 지는 곳 중 선택하면 되었거든요. 첫 관람이니 햇빛에서 인상을 쓰지 말자던 설득이 먹혔습니다. 그늘에서도 더위가 보통이 아니었기 때문에 만족도가 높았습니다.
마지막으로는 불가항력적인 요소입니다. 선발투수가 누구이고 그날 이길 수 있느냐는 거죠. 특히 첫 직관이라 하면 앞으로 야구를 보러 갈지 말지를 결정할 수도 있는 중요한 시간이 됩니다.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시작한 경기. 잠시 숨을 고르며 오늘의 선발 선수 명단을 훑어보는 와중 함성이 터졌고 1번 타자가 3루에 미끄러져 들어오더라고요. '됐다!' 우리 선수들이 조금 더 힘내면 오늘은 성공적이겠다는 직감이 왔죠.
이상하게 야구장에 갈 때면 감수성이 폭발합니다. 특히 고참 선수들의 활약이 있을 때면 더욱이 그렇게 됩니다. 애증의 관계가 많이 쌓인 덕일까요. 아니면 고된 마음을 안고서 쌓인 것들을 치워내기 위해 야구장을 간 걸지도 모르겠네요. 그렇게 툭툭 주체할 수 없이 올라오는 감정이 싫지 않습니다. 그 감정들은 대개 긍정적입니다. 기저에 화난 마음이 깔려있기 때문에 채워질 수 있는 마음은 대개 좋은 감정만 남아있으니까요. 하지만 처음 직관을 마주한 친구들은 아니었나 봅니다.
"뭐야, 원래 이런 거야?"
경기 중반이 되자 처음의 '원래'는 사라지고 새로운 '원래'가 왔습니다. 점수 차가 꽤 나는 듯하더니 상대방이 따라잡기 시작하다 투수가 강판당하는 모습을 보며 다급하게 찾아온 새로운 '원래'였습니다. 웃음 뒤에 이런 대답해 주었습니다.
드리 : "지금부터는 자이언츠의 필승조가 나올 차례야"
친구 : "와! 그게 뭐야? 필승조면 무조건 이길 수 있는 그런 선수겠네."
드리 : "응, 맞아. 예를 들면 왜 고등학교에 공부 잘하는 애들 모아두고 SKY반 운영하는 그런 거 알지?"
친구 : "오, 그러면 엄청나게 잘하는 에이스들이겠네?"
드리 : "맞아. 근데, 다들 서울대를 가는 건 아니잖아. 비슷한 거야."
쓸데없는 부연 설명으로 불안이 커졌다며 두 손을 꼭 모아 '제발, 제발….'을 되뇌는 친구 부부였습니다. 얼굴에 옅은 미소를 지으며 여유로운 척했지만, 속으로는 합창했었습니다. 9:2로 이기고 있던 경기가 9:7이 되며 마음을 졸였지만, 마무리 투수의 현란한 발재간(김원중 선수가 공을 던지기 전 하는 루틴)과 함께 친구네의 첫 직관 경기는 승리로 끝났습니다.
기도하는 친구네 부부의 뒷모숩
며칠 뒤 함께 밴드 멤버 중 베이시스트(베이스 연주자)와 직관을 한 번 더 갔는데, 똑같은 질문과 역시 같은 대답을 하면서 승리를 챙겼습니다. '원래' 그런 거냐는 질문을 유난히 많이 들었던 직관이었네요. 그렇게 '왜?'라는 질문이 떠 오른다고 투덜거렸지만, '아니 원래는 이렇게까지 화끈하지 않아. 원래는 공격적이었는데 아닌지 좀 오래됐거든.', '맞아. 원래 이렇게 위태롭고 미간이 좁혀지는 것. 이거야 말로 진정한 자이언츠야.'라며 동조했던 시간이었고 말이에요.
매번 같은 듯 다른 인사
비혼주의의 결말이 결혼이라는 이야기도 아시나요? 결혼하고서야 비로소 본인이 틀렸다는 걸 증명한다는 말이 있잖아요.(저는 열렬하게 결혼에 대해 찬성하는 입장이지만요.) 서두에 말씀드렸듯이, 원래 그런 것이라곤 없습니다. 원래 '원래'를 싫어하던 제가 야구장에 들어서면서부터 '원래'를 사용해 말하는 걸 보니 말이에요.
시간이 지나면서 스스로가 조금씩 변하는 사실에 끄덕일 줄 알아야 하지 않을까요. 시대나 유행이 변해가는 거처럼 시시각각으로 변하지 않기 때문에 인지하는 건 참 어렵습니다. 더더군다나 변화를 인정하는 건 말이에요. '원래'와 거리를 두기 위해 다양한 경험을 시도해보려 합니다. 새로운 자극과 경험을 인생의 변곡점으로 삼아 변화를 체감하고 싶거든요. 20대에 학생들에게 강연했던 때가 있습니다. 주로 제 경험을 들려주는 동기부여 시간이었는데요. 항상 마지막에 했던 말로 오늘의 편지를 마무리하려 합니다.
'저는 대단한 사람도, 여러분께 무언가를 강요할 수 있는 사람도 아닙니다. 대신, 제가 걸어가는 길을 계속 보여드리겠습니다. 가끔은 변해가는 모습도 있을 겁니다. 지금의 제 모습을 보며 조금이라도 자극받으셨다면, 함께 해나가는 모습을 나눠 보여주세요. 그게 오늘 제가 여러분께 해드릴 수 있는 유일한 메시지라 생각합니다.'
- 시즌 초에 4연패 당하는 바람에 야구에 흥미를 잃었다 3연승으로 다시 취미를 찾아가며 비교적 헤비해진 드리킴 드림 -
P.S 주니님은 참 한결같은 사람이라는 이미지입니다. 스스로가 느낀 자신이 변화적이 있을까요? 저는…. 아, 제가 혹시 말씀드렸나요? 말씀드리긴 부끄러운데 제가 작곡이란 걸 해봤습니다. 기타와 건반으로 연주되는 정도의 노래예요. '새벽밤'이라는 제목의 노래인데 다음에 만나면 들려드리겠습니다. 그럼, 다음 편지를 기다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