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교관 Apr 21. 2021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430

14장 6일째

430.


 “아마도 많이 남을 겁니다.” 류 형사는 봉투의 겉면을 보며 뜯어보지 않아도 안다는 듯 말했다.


 “뇌물도 아니고 잘못된 돈도 아닙니다.” 마동이 류 형사의 손이 올라가 있는 봉투를 형사 쪽으로 좀 더 밀었다. 또 한 번의 한숨을 류 형사는 내쉬었다. 류 형사의 마음은 이미 봉투를 받아서 주머니에 넣어 버렸다. 하지만 손은 봉투를 향해 뻗어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고개를 들어 마동을 봤을 때 마동의 눈은 괜찮다고 말하고 있었다. 마치 선생님이 사고를 친 반 아이에게 괜찮다고 타이르듯이.


 한시라도 빨리 수빈이의 신장을 고쳐야 하지 않느냐, 그것이 제일 중요한 문제가 아닌가. 수빈이의 건강을 되찾는 것이 당신과 당신 가족의 조화와 균형이 아니겠는가,라고 마동의 눈이 말을 한다고 류 형사는 받아들였다. 그 순간 류 형사의 눈빛은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날개를 다쳐 날지 못하는 참새처럼 한없이 조약 했다. 수빈이를 도와주는 사람이 친척도 아니고 동료 형사들도 아니었다. 용의자라고 의심하는 사람에게 결국 수빈이의 도움을 받는 것이다. 류 형사는 생사의 경계선에 선 기분이었다. 류 형사의 눈빛이 심하게 흔들렸다. 다시 봉투를 꼭 쥔 채 말이 없었다.


 “자기장이 저를 불러요. 자기장이 부르는 대로 가면 분명 균형이 맞아질 겁니다.” 마동의 말에 류 형사는 미궁 속에서 처음 보는 물질이 흘러나오는 것을 발견한 모습으로 희미하게 대답했다.


 “자기장이라……” 류 형사는 마동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생각을 했다. 이 청년이 자기장이 있는 곳으로 간다면 그곳에는 분명 자기장이 있을 것이고 그곳에 닿고 나면 조화가 이루어질지도 모른다. 마동이 말하는 균형이라는 것이 류 형사 입장에서 막연했지만 균형이 이루어지고 나면 지금보다 무엇이든 간에 나아질 것이다. 무엇이 나아진다는 것인지 역시 어렴풋하고 별이 떠 있는 그곳처럼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류 형사가 말을 했다.


 “세상은 끊임없이 흘러가고 발전하는데 제 딸은 도무지 나을 기미가 보이지 않죠. 그건 조금 불균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단순히 돈을 떠나서 수많은 질병과 증후군이 있고 그 질병을 돌보는 많은 곳과 병원에서 모두들 고치거나 나아서 잘 걸어 다니는데 어째서 아직 어른 다리보다 작은 내 딸은 뛸 수 없다는 게 조화롭지 못한 일이 아닐까. 신은 정말 바쁘다고 생각했죠. 신은 얼마나 많은 기도를 접수하겠습니까. 그래도 지치지 않고 아침마다 딸아이를 위해서 기도를 했어요. 진심을 담았는지 어땠는지 정답은 못하겠습니다. 지금 이 순간 신이 내 기도를 들어줬다고 말한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류 형사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볼록한 봉투에 주름이 착 잡혔다.


 비는 더 이상 땅속으로 흘러 들어갈 곳이 없음에도 무섭게 쏟아졌다. 비가 내리면 세상을 촉촉하게 적셔주어서 사람들은 비가 내리는 풍경에 젖어들지만 생각하는 구분을 넘어서 비가 쏟아지면 세상은 긴장하게 된다. 세상의 인간들은 겁을 집어먹고 두려움에 떨게 된다. 검은 하늘에서 속도감 있게 쏟아내는 굵은 빗줄기는 가늘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은 채 사람들을 건물 속에 넣어두고 밖으로는 얼씬도 못하게 했다. 이런 지독한 날씨를 뚫고 마동과 류 형사는 카페에 앉아 마주 보고 있었다. 손에 힘이 들어간 류 형사는 입을 꾹 다물고 그대로 봉투를 집어서 여름과 어울리지 않는 낡아빠진 청바지 주머니에 구겨 넣었다.


 두 사람은 사건에 대해서 좀 더 이야기를 주고받았고 류 형사는 마동의 알리바이를 자신의 때 묻은 수첩에 빼곡히 적었다. 류 형사는 봉투와는 상관없는 냉철한 형사의 모습으로 돌아와야 했지만 봉투와 함께 냉철함도 주머니에 들어가 버렸다. 마동은 류 형사가 하는 질문에 최선을 다해 대답했다. 정직하고 진실하게 답했다. 마동은 류 형사를 통해 그간 진척된 아파트의 두 사건에 대해서도 전해 들었다. 류 형사는 본부에서 마련한 담당 형사들이 있음에도 정부기관에서 파견된 사람들이 하는 조사에 대해서도 낱낱이 이야기를 했다. 마동은 내심 류 형사가 걱정이 되었다. 어두운 하늘에 짙은 어둠이 한 꺼풀 덧칠하려는 기미가 보였다. 검은 구름은 자줏빛을 띠며 세상을 자줏빛 비로 물들여 가고 있었다. 마동은 카페 안에서 카페 밖을 보며 서서히 준비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준비가 그 어떤 것이 되었든 간에.


[계속]



작가의 이전글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429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