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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Dec 11. 2019

기차에서 만난 그리즐리 1

단편소설



기차에서 만난 그리즐리    


 [무라카미 하루키의 ‘개구리군, 도쿄를 구하다.’의 오마쥬]     


   

 기차는 앞으로 가고 있다. 장애물이 있다고 해서 후진을 하거나 철길 위를 이탈한다거나 하는 일은 없다. 오로지 앞으로 그리고 또 앞으로 목적지까지 지속적으로 갈 뿐이다. 그것은 물이 아래로 흐르는 것처럼 또는 시간이 앞으로만 가는 것과 비슷하다.


 아이가 점점 어른이 되듯 기차는 앞으로 나아간다. 달리는 말처럼 멋지게 쿠쿵, 쿠쿵하며 출발하여 터득 터득 터득 터득하는 박자에 맞추어서 기차는 빠른 속력으로 멋지게 앞으로 간다. 다른 교통수단에 비해서 어지간하면 늦는 법이 없는 것이 기차다.


 그래서 그는 타지방으로 출장을 갈 때에는 오로지 기차를 이용한다. 특히 야간열차를 이용해서 목적지까지 가는 것을 좋아한다. 고요하고 창밖으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며 사색을 즐기거나 잠이 오면 그대로 잠들 수 있어서 좋다. 낮의 기차는 잠들지 않은 아기와 같다. 운치와는 조금 멀어지며 사람들의 이동도 잦다. 그래서 낮 기차는 그와 맞지 않았다.


 어두운 밤공기를 가르며 앞으로 가는 기차를 그는 언젠가부터 택하게 되었다. 밖에 보이는 것은 오직 어둠뿐이고 기차의 의자에 몸을 파묻고 있는 것은 어쩐지 양수 속에 들어가 있는 따뜻한 안온감이 들었다. 누군가의 품에 쏙 들어가 있는 기분이 든다고 그는 터무니없지만 생각했다.


 터득 터득 터득 터득하는 일정한 소리를 내며 바퀴를 굴려 꾸준히 지치지 않고 달려가는 야간열차에 그는 오늘도 몸을 파묻고 출장길에 올랐다. 좀 웃기지만 열차의 터득 터득하는 소리는 그래 맞아, 그래 맞아, 그래 맞아. 하는 소리처럼 들렸다. 그는 혼자서 외투에 목을 집어넣고 혼자서 킥킥거렸다. 누군가 볼까 봐 조용히 웃었다.


 이렇게 추운 겨울날에도 지방에 거래 건으로 갈 땐 기차만 한 게 없다. 더 정확하게 야간열차 만한 게 없다는 것이다. 야간열차의 여운은 운치가 있어서 더욱 좋다는 말이기도 하다. 운치라고 해봐야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어둡고 긴 밤의 기운이 드리운 야외에 간간이 보이는 가로등 불빛이나 인공광원이 만들어내는 허술하고 재미없는 이야기를 그는 떠올렸다. 시들어가는 상상력을 부풀리게 했다. 어두운 겨울밤의 공기도 그렇지만 기차에 올라타면 위기의식 같은 것이 조금은 줄어드는 것 같아서 마음이 평온해졌다.


 이렇게 야간열차는 꾸준하게 달려 새벽 2시에는 영주의 간이역에 잠시 정차를 하고 15분간 대기를 한다. 그는 그 시간에 잠시 내려 따뜻한 우동을 한 그릇 사 먹을 요량이었다. 이것이 야간열차를 타고 가는 길목의 가장 짜릿한 순간이다. 어린 시절을 자연스레 생각나게 만드는 간이역에서 쑥갓이 들어간 짭조름한 우동을 먹는 것.

 겨울에 유독 어울리는 간이역의 우동.


 그래서 아직 잠들지 않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창밖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야간열차의 실내는 어두웠고 고요했다. 기차가 철길 위를 달리는 소리만이 리듬감 있게 들렸다. 그래 맞아, 그래 맞아, 하며 말이다.


 영주의 간이역에 도착했다는 방송이 흘러나오고 야간열차는 스르륵 미끄러지듯 멈추었다. 그는 간이역에 내렸다. 기차 밖의 날은 코끝이 아플 만큼 추웠다. 숨을 쉴 때마다 입김이 상당한 양으로 나왔다. 입을 꾹 다물고 와서 그런지 입김에서 비린내가 조금 났다. 그는 내리자마자 간이매점으로 달렸다.


 "우동 한 그릇이요." 그는 어깨를 모으고 추워서 발을 동동 굴렸다. 그가 주문함과 동시에 우동장수가 일 분 만에 우동 한 그릇을 말아 주었다. 그래 이거야, 하며 그는 세상에서 제일 빠르고 맛있는 우동을 받아 들고 후후 불어서 후루룩 먹었다. 우동의 면발, 쑥갓은 신선함과는 거리가 멀지만 오로지 야간 기차 여행에서만 맛볼 수 있는 우동 맛은 어떤 맛과 바꿀 수 없었다. 우동그릇을 들고 국물을 한 모금 마셨다. 세상을 다 가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 짭조름하고 뜨거운 국물이 입안에 들어가서 체내로 퍼지면 몸 안은 뜨거운 기운으로 따뜻해졌다. 조미료가 가득 들어간 뜨거운 우동국물이 위장으로 흘러들어 가는 기묘한 느낌은 어릴 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좋았다.

 그는 국물을 마시면서 생각을 했다. 시대가 이렇게 발전을 했는데 아직도 이렇게 촌스러운 간이매점에서 우동을 팔다니. 그는 무척 묘한 기분이었다. 간이역은 오래 전의 모습 그대로였다. 천장의 형광등도 우동장수가 입고 있는 옷도, 손에 들고 먹고 있는 우동그릇도 아주 오래 전의 모습처럼 보였다. 요즘 이런 촌스러운 기하학무늬의 멜라민 그릇을 사용하는 곳이 있다니. 그는 이 모든 것이 신기하면서 기이했지만 간이역의 우동 판매대에서 서서 우동 한 그릇을 진지하게 먹었다.


 우동을 먹으려고 사람들이 많이 나올 법도 한데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오로지 그 혼자 서서 우동을 후후 불어서 먹었다. 차가운 겨울의 밤, 간이역의 간이매점에 서서 뜨거운 우동을 후루룩 먹는 기쁨을 알고 있는 사람은 전국에 몇 명 없을 것이다. 입안에 우동을 가득 넣어서 입을 오므리고 5분 만에 다 먹고 얼마냐고 묻자, 매점의 우동장수가 500원이라고 했다.


 에? 놀라서 그가 고개를 드니 인심 좋게 생긴 우동장수가 아주 두꺼운 외투를 입고 양팔에 촌스러운 토시를 한 채 웃고 있었다. 그는 갸우뚱 거리며 천 원을 꺼내서 우동장수에게 건네주며 잔돈은 됐다고 했다.    


 세상에 우동이 500원이라니. 질이 안 좋은 면이나 재료를 사용한 것일까. 그리고 외투는 뭐지. 아무리 봐도 20년은 더 된 의복 같았다.    

 

 그가 다시 야간열차에 뛰어 올라서 자리를 찾아서 걸었다. 뭐랄까. 열차 안의 분위기가 기차에서 내릴 때와는 조금 달라 보이는 기분이 들었다. 아무래도 뱃속에 들어간 우동의 뜨뜻하고 더운 기운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기차 안의 온도차 때문인지 기차의 유리면에 성에가 뿌옇게 껴 있었고 그동안 맡아보지 못한, 존재하지 않았던 시간의 냄새가 녹록히 의자에서 느껴졌다. 시간의 냄새는 순수하게 났다. 아주 오래전부터 의자에 있었던 것처럼 순수한 시간의 냄새가 있었다. 시간이란 무엇인가 생성되자마자 사멸되는 관념이다. 반복이다. 그 말은 소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간은 아주 무섭고 그 속에서 사람은 시간의 지배를 받게 된다.    


 어째서 평소에 하지 않던 생각이 드는 것일까.


 그는 고개를 계속 갸우뚱 거리며 자신의 자리로 갔다. 자신의 자리로 갈수록 쌍방향의 의자에 누군가 앉아있는 것이 보였다. 누군가라고 정의하기에는 많은 모자람이 있었지만 누군가 자신의 자리 맞은편에 앉아있었다. 그가 자신의 자리에 가서 앉으니 맞은편에는 곰이 앉아서 신문을 보고 있었다.


 어이없지만 곰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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