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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Dec 12. 2019

기차에서 만난 그리즐리 2

단편소설




 곰? 이라니. 맙소사.    


 곰은 주둥이가 일반 곰에 비해서 길었고 얼굴은 굉장히 컸다. 그에 비해서 눈은 작아 보여서 개그맨의 인상을 풍겼다. 그는 그러면 안되지만 순간 큭큭 하며 웃었다. 그리고 자신이 놀라서 입을 막았다. 곰은 온몸이 털로 뒤덮여 있어서 아주 따뜻하게 보였다. 곰은 신문에 집중을 하다가 그를 한 번 보더니 읽고 있던 신문을 접었다. 저 큰 손으로 신문을 어이없지만 잘 도 접었다. 신문을 보니 83년도 신문이었다.


 "안녕하세요. 전 그리즐리 베어입니다. 네, 분명 보고 계신 것처럼 곰이 맞습니다."


 그는 입을 조금 벌리고 넋이 나간 모습으로 아직 소화기관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서 꿈틀거리는 우동이 다시 목구멍으로 올라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곰이 말을 하고 있었다. 그는 놀라거나 흥분을 하면 먹은 음식이 소화가 되지 않고 역류하는 체질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소화불량 때문에 늘 제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없었다. 시험을 볼 때는 늘 긴장 탓에 이전에 먹은 음식이 시험을 보는 도중에 자꾸 올라와서 집중을 할 수 없었다. 심지어 선을 보는 자리에서도 그는 음식물이 올라와서 화장실에 몇 번을 다녀오는 사이에 상대방이 그대로 집으로 가버리고 말았다. 늘 지는 인생이었다.


 "함고동 씨, 저에 대해 자세한 소개는 좀 있다가 하겠지만 먼저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그는 여전히 넋 나간 모습으로 곰을 쳐다보고 있다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평일, 새벽의 겨울 시간대라 몇몇 안 되는 손님들이 잠의 세계에 빠져있었다.


 "저한테 하시는 말씀이신가요? 제 이름은 함고동이 아……." 그는 아주 작은 소리로 천천히 말했다.


 "네, 곧 차표 검열이 올 겁니다. 제가 지금 기차표 없이 기차에 올라타버려서 제 차비를 좀 계산해 주십시오."라고 곰이 말했다. 저 툭 튀어나온 주둥이로 잘도 말을 했다.


 "하지만."


 "이천 원이면 됩니다."


 "엣? 이천 원이요?"


 "네, 이천 원이면 아마 잔돈을 거슬러 줄 겁니다. 부탁드립니다.”


 "뭐 어려운 부탁은 아니라서 제가 계산을 해 드리면 되는데, 요즘은 기차 요금이 이천 원으로는……."까지 말했는데 곰은 신문을 들어 보이며 지금은 83년도라고 했다. 그는 곰이 뭐라고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기차의 복도 끝에서 은하철도 999의 차장처럼 복장을 한 직원이 다가오고 있었다. 야간에는 할인이 된다고 해도 자신은 4만 원이 넘는 돈을 주고 기차표를 구입한 것으로 아는데 이천 원이라니. 그는 주머니에서 자신의 차표를 꺼내서 차장에게 보여주고 앞의 곰이 차표를 잃어버렸는데 계산을 하겠다고 하니 표정을 알 수 없는 차장은 천구백 원을 내라고 했다.


 그는 주머니에서 이천 원을 꺼내서 차장에게 주고 백 원을 건네받았다. 간이 기차표를 받아서 곰에게 건네주었다. 곰은 두툼한 손으로 기차표를 그에게서 잘도 받아 자신의 주머니에 넣었다. 그것이 주머니인지 무엇인지 알 수는 없었으나 배가 위치한 곳의 털 속으로 기차표는 들어갔다. 곰은 그를 향해 고개를 숙이며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함고동 씨, 고맙습니다. 덕분에 편안하게 목적지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정말 감사하게 생각을 합니다."

 "아, 네. 그런데 제 이름이 함고동이 아니고 그러니까……."


 곰은 비좁아 보이는 의자에 용케도 앉아서 몸을 잠시 흔들었다. 곰이 자신의 앞발을 들어서 조용히 하라는 시늉을 했다. 그는 곰의 발바닥을 처음으로 보았다. 검은 발바닥은 오랫동안 땅바닥에 닿아서 굳은살이 켜켜이 쌓여 거칠하게 보였다.


 "알래스카에 있었으면 지금은 동면을 하고 있을 기간입니다. 그런데 급하게 이곳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차비도, 수행원도, 아무도 없이 혼자 오게 되었습니다. 이곳으로 와서 처음으로 도움을 받은 분이 함고동 씨 당신이군요.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전 역시 행운아였습니다."


 "곰님은 이름이?" 그는 이렇게 물어보는 자체가 당황스럽기만 했다.


 "아아, 제 소개가 늦었군요. 알래스카에서 온 그리즐리 베어입니다. 이름이 있지만 그건 너무 어려워서 부르기가 힘들 겁니다. '그리즐리'라고 불러 주세요. 저의 나이는 아주 많습니다. 함고동 씨가 상상하는 그 이상입니다. 겨우내 잠을 푹 자 둬야 봄에 풀들이 땅을 뚫고 올라오면 움직임이 둔해지지 않습니다. 게다가 다른 곰들의 공격에도 방어를 해낼 수가 있어요. 우리들, 보기에는 이렇게 험상궂게 생겼지만(그는 아닌데, 하는 생각을 했다) 자식을 아주 사랑하는 동물입니다. 우리는 단체로 움직이지 않아요, 가족 내지는 개인적으로 움직여서 힘을 기르는 겁니다. 알래스카의 겨울은 지금 이곳 겨울의 몇 배나 춥습니다. 아주 혹독하게 춥죠. 땅이 얼어버립니다. 그러면 생명이 전부 끊어져버린 것처럼 느껴지는 겨울의 향연이 지속되죠."


 그리즐리는 잠시 말을 끊었다. 곰은 그의 옆자리에 놓여있는 가방의 주둥이에서 비어져 나온 물병에 시선을 두고 있었다. 시선을 물병에 박은 다음 잠시 미동 없이 있었다. 침묵이 흘렀다. 이질적이었다. 침묵은 꽤 농도가 짙었고 손을 집어넣었다가는 다시는 빼지 못할 것 같은 침묵이었다. 그는 물병과 그리즐리의 눈을 번갈아 본 다음 가방에서 물병을 꺼냈다. 그리고 뚜껑을 열어서 그리즐리에게 건네주었다.


 "하하, 뭐 이런 것까지. 단지 목이 좀 마르군요. 아, 정말 감사합니다. 함고동 씨 당신은 참 친절하고 좋은 사람이군요. 당신처럼 좋은 사람은 드문데 전 정말 운이 좋은 곰입니다. 인간들이 오랫동안 곰을 사냥하는데 총력을 기울였는데 당신은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군요. 하하."


 당연한 것이 아닌가. 회사 업무 보기도 바쁜데 곰 사냥에 열을 올릴 시간이 있나.


 사냥? 사냥은 또 무엇인가.


 단어만 알고 있었다. 그건 있는 사람, 즉 시간과 돈이 남아도는 자들의 특권일 뿐이다. 게다가 말하는 곰이라니. 곰은 티브이 속에서나 봤지 실제로 곰을 아직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동물원에도 가보지 못했다. 더군다나 말을 하다니. 그의 의식과 생활 활동 반경에서 곰이라는 존재는 의미도 의식도, 그동안 자신과 별개의 문제였다. 그리즐리라는 곰은 물병의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좋은 사람이라는 소리는 많이 들었다. 그래서 가장 듣기 싫은 말이다. 좋은 사람이란 무엇인가. 모두가 그에게 좋은 사람이군.라고 말을 했다. 경리를 보는 어린 아가씨도 대리님은 정말 좋은 사람 같아요.라는 말로 부탁이나 명령을 절대 거절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모두가 그에게 좋은 사람이라는 딱지를 붙여놓고 가버리고 말았다. 범위가 넓고 제대로 의미가 모호한 말이 좋은 사람이다. 그는 좋은 사람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이미 좋은 사람이 되었다.


 "아, 맛있습니다. 풀 맛이 나는데요. 아주 좋아요. 이런 물맛을 이 먼 곳에서 맛보게 되다니. 이런 곳에는 그저 수돗물이라는 것만 존재하는 줄 알았거든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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