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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Jun 19. 2021

편의점 햄버거가 더 좋은데 나는

음식 이야기

꼬리까지 다 먹고 난 후 보니까 꼬리는 먹지 말라네 젠장.
촌스럽지만 음악을 카세트테이프로 듣는다

나는 맥날이나 버거킹보다 편의점 햄버거가 더 맛있다. 편의점 햄버거를 더 찾는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가장 큰 이유는 햄버거 전문점만큼 내 입에는 맛있다는 데 있다. 굳이 들어가서 고르고 주문하는 행위를 하지 않아도 된다. 쓱 집어서 계산하고 나오면 (내 입에는) 맛있는 햄버거를 먹을 수 있다.

 

수제버거가 맥날이나 버거킹보다 멋이 떨어지고(물론 내 입맛에 그렇다는 것이다) 편의점 햄버거가 맥날이나 버거킹만큼 맛있다. 그러니까 편의점 햄버거 = 맥날, 버거킹, 싸이 버거 > 수제버거. 이런 순이다. 가격적인 면에서도 사실 편의점 햄버거나 전문점 햄버거가 그렇게 큰 차이는 나지 않는 것 같다. 그만큼 편의점 햄버거도 맛이 좋다.


햄버거 전문점 햄버거보다 편의점 햄버거를 더 선호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많이 씹을 수 있다는 점이다. 편의점 햄버거는 전문점 햄버거에 비해 식어 있다. 따뜻하지 않다. 그래서 오래 씹을 수 있다. 나는 날 때부터 좋지 못한 위를 달고 태어나서 인지 햄버거를 먹으면 소화가 잘 되지 않는다. 소화가 안 되면 그저 속이 더부룩하고 말면 그만이지만 나는 그렇지가 않다. 숨이 차고 머리가 아프고 소화가 될 때까지 참 힘겹다. 그래서 소화가 잘 되지 않는 음식을 정리해 놓고 피하려고 하는데 그러지 못할 때가 있다.


두부를 매일 먹는데 같은 두부라도 어떻게 조리를 해 놓느냐에 따라 소화시키는 것은 천지차이다. 두부가 뜨거운 탕이나 국에 들어가 있는 건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가끔 구워놓고 하루 지난 두부를 그대로 먹을 때가 있는데 그러면 어김없이 소화를 못 시킨다. 고생을 하는 것이다. 햄버거도 그런 맥락이다. 전문점 햄버거는 딱 먹기 좋은 온도라서 많이 씹지 않고 그대로 넘겨 버린다. 그러고 나면 소화가 안 된다. 해운대 맥날에서 햄버거를 두 개 먹고 난 후 몹시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기억 속에는 아픈 건 기억이 없고 아픈 것 때문에 어딘가를 가지 못하고 걷지 못하고, 같은 고생한 기억이 있다.


나는 발전하는 기기에 지는 스타일인데(그래서 아이패드나 아이폰보다는 카세트 플레이어로 음악을 주로 듣는다) 맥날에서 주문할 때 이거 저거 주세요 하는 것보다 터치로 주문하는 건 또 훨씬 좋다. 그래서 한 동안 열심히 사 먹었던 서브웨이는 이제 가지 않는다. 며칠 전에 몇 년 만에 일행과 함께 주문했는데 예전보다 더 이것저것 넣어야 할 것들이 많아진 것 같았다. 다행히 일행이 알아서 내 것을 주문해주었다. 나는 소스를 아무것도 뿌려먹지 않기에 알아서 올리브 오일만 뿌려서 주문을 해 주었다. 그러니까 편의점 햄버거는 이 모든 귀찮음에서 벗어날 수 있다. 전혀 귀찮은 것이 없으면서 내 입맛에 딱 맞고 종류도 많고 맛도 좋아서 편의점 햄버거를 왕왕 사 먹는 편이다.


내가 사는 곳에는 굴지의 조선소가 있어서 외국노동자들이 많은데 외국 노동자들도 한국 편의점의 햄버거를 자주 사 먹는다. 점심에 밖으로 우르르 나와서 편의점에 와서 햄버거와 음료 하나를 사 먹는다. 가격도 엄청 저렴하고 이야기를 하며 맛있게 먹는다. 이곳에는 2002년 월드컵 당시 브라질 대표팀이 훈련했던 축구장이 있었다. 그리고 집 근처, 백화점 맞은편에는 맥날이 있어서 당시만 해도 외국인 노동자들이 점심, 저녁, 그리고 24시간 했으니 새벽이나 밤샘 작업을 하는 외국인들이 맥날에 가득 앉아서 햄버거를 먹었다. 그리고 브라질 대표팀에 훈련을 하면서 그들도 이곳의 맥날에 와서 햄버거를 사 먹었다. 그때 당시 햄버거를 주문하는 호나우두와 호베르투 까를루스를 봤다. 나는 카메라를 꺼내서 찍으려고 하는데 경호원들이 못 찍게 했다. 워터 파크 이런 법규. 티브이로 볼 때는 거대하게 보였는데 키가 너무 작더라. 아무튼 그만큼 그 맥날 지점은 엄청난 매출을 자랑하는 지점이었는데 굳건할 것만 같았던 그곳의 맥날은 일 년 전인가 없어졌다.


그 이면에는 외국노동자들이 편의점 햄버거에 대거 몰린 것이 계기가 아닐까. 좀 더 파고들면 조선업의 쇠퇴와 함께 외국인들이 자기네 나라로 돌아가면서 와글와글 거리던 사람들이 점점 흩어졌겠지. 그러면서 언젠가부터 편의점에 햄버거가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그 종류도 많아졌도 맛도 좋아졌다. 사진의 햄버거도 온도가 따뜻하지 않고 냉장고에 넣어놨다가 뜯어서 차갑지만, 그래서 오래 씹을 수 있고 나에게는 더 맛있다. 그러면서 방울토마토와 함께 먹을 수 있으니 훨씬 낫다. 인간은 복잡한 사회 시스템 속에서도 단순하게 흘러가는 것 같다.


햄버거를 야금야금 씹으며 유투의 앨범을 카세트 플레이어로 듣는다

말 나온 김에 2002년 월드컵 하이라이트 한 번 볼까. 보면서 미소가 지어지면서 댓글들을 읽으면 그때가 새록새록. 다시 보니 모두가 미친 듯이 뛴다. 더불어 유상철 선수 덕분에 행복했었는데 영면하세요.

https://youtu.be/Harjy0KzR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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