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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Aug 23. 2021

최 흑 오 10

단편 소설

10.


 “그럼 저는 당장 무엇을 해야 합니까?”


 “제가 오늘 저녁에 다시 올 겁니다. 그전에 당신은 제대로 이야기를 해야 해요. 그것을 하지 않고 떠났다가는 어떤 몹쓸 일에 휘말리게 될지 짐작도 할 수 없을 거예요.”


 “제대로 이야기를?”


 “네, 그래요. 제대로 당신은 이야기를 해야 해요.”


 “무슨 이야기를 제대로 해야 한다는 건지…….”


 “그건 당신이 잘 알고 있어요. 당신이 제때에 해야 할 말을 건너뛴 것에 대해서 말이에요. 여권을 만들고 제가 다시 오기 전까지 당신은 제대로 해야 할 말을 하세요. 그리고 준비를 하면 돼요.”


 “그렇게 하면 쥐의 공격으로부터 피할 수 있다는 겁니까?”


 선글라스를 쓴 최흑오는 조금 생각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네, 의미적으로는 그렇습니다. 좀 더 복잡하지만 그렇게 생각해도 돼요.”


 선글라스의 여자는 생각났다는 듯 “제가 올 때까지 반드시 기다려 주세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선글라스의 최흑오는 나에게 계산을 하고 일어나서 문을 열고 나갔다. 이후로 손님은 오지 않았다. 비가 더 거세게 내렸기 때문에 이 비를 뚫고 왔다가 사진을 촬영할 몰골이 아니게 될 것이 분명했다.


무슨 일이 일어난다는 것일까.


그리고 내가 제대로 이야기를 하지 않았던 것은 무엇일까.


아 그때 그녀에게 제대로 이야기를 하지 못한 것이 떠올랐다.


그렇다, 나는 그녀에게 그 남자에 대해서, 그날 우산을 같이 쓰고 어디를 갔는지 짐작은 가지만 그것에 대해서, 더 나아가 그녀의 마음을 제대로 물어보는 것을 하지 않았다. 물어봐야 아마 대답은 뻔할 것이다. 그녀는 나에게서 스스로 조금씩 물이 빠지듯 멀어져 가고 있었던 것이다. 꺼내지 않으면 절대로 그녀가 먼저 꺼내지 않을 말들에 대해서, 꺼내는 순간 현실이 되어버리는 말들. 그 뻔 한 대답이 아마도 나를 결락으로 이끌 것이 뻔했다. 뻔한 것은 늘 뻔 한 결말을 가져온다. 선글라스의 여자는 내가 그녀에게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한 것을 알고 있는 것일까. 최흑오라는 여자의 정체는 무엇일까. 이름도 이상했다.       


 최흑오.

 검색을 해보니 까마귀의 눈물을 뜻하는 이름의 흑오는 많이 검색이 되었지만 최흑오라는 이름으로 검색이 되는 건 없었다. 까마귀의 눈물이라. 까마귀가 눈물을 흘리면 세상이 이상하게 되는 것일까. 지금 내리는 비는 까마귀가 흘리는 눈물일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휴대전화가 울렸다. 그녀였다. 그녀가 먼저 전화를 걸어오는 건 여기를 찾아오는 것만큼 자주 있는 일이 아니었다. 적어도 근래에는. 나는 그녀에게 제대로 말을 해야 한다. 내가 제대로 말을 하면 그녀도 제대로 말을 해 줄 것이다. 나는 한참 만에 전화를 받았다.


 “손님 있는 거야? 다시 전화할까?”


 “응? 아니, 이제 없어. 괜찮아.”


 “전화받을 수 있어?”


 “응.”


 “비가 정말 많이 오네. 비가 이렇게 오면 손님이 없다고 투덜대던 자기가 생각나”라며 그녀는 전화기 너머로 키득키득거렸다. 처음에는 그녀가 먼저 나에게 전화를 많이 했다. 하지만 손님이 있으면 받지 못하거나 받아도 손님이 가고 나서 다시 내가 전화를 했다. 그것이 죽 길어지니 그녀는 언젠가부터 나에게 시간이 되면 전화를 해달라고 했다. 자신은 늘 받을 수 있다고. 그래서 그동안 내가 죽 전화를 했다. 그동안에는.


 “그래, 맞아. 이렇게 비가 오는 날에는 사진을 찍는 손님들이 드물지.”


 내가 한 말을 듣고 그녀는 수화기를 들고 한참을 아무런 말도 없이 있었다.


 “자기 화나지 않아?”


 나는 그다음 말이 빨리 떠오르지 않아서 가만히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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