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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Aug 24. 2021

최 흑 오 11

단편 소설


11.


 “화가 나지 않는 모양이야. 자기는.”


 “글쎄, 잘 모르겠어. 화가 난다기보다…….”


 또 조금의 틈이 있었다. 틈이라는 게 눈으로 보이는 균열만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아주 예리한 틈이 전화기와 전화기 사이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좋다와 싫다 사이에는 꽤 여러 가지가 있다는 걸 알아. 자기가 늘 하는 말이었지. 하지만 가끔은 좋다, 싫다, 확실한 게 나을 때도 있어.”


 시간은 그 틈을 좀 더 벌리고 깊게 만들었다.


 “이렇게 된 데는 누구의 잘못이 더 크다, 더 많다, 라는 건 어울리지 않아요. 이렇게 될 것은 이렇게 되고 말았다는 거예요.”


 그녀는 갑자기 말투가 높임말로 바뀌었다.


 “어째서 말투가 그렇게 바뀌었지?”


 “당신은 정작 중요한 걸 늘 비켜가고 있어요. 어떻게 하고 싶어요?”라고 그녀가 물었다.


 “어떻게든 될 거야”라는 내 말에 그녀의 웃는 소리가 조그맣게 들렸다. 그 소리는 단무지를 아주 잘게 씹어 먹는 소리처럼 여운이 길게 남았다. 그녀는 짧게 웃음을 끝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녀의 웃음은 노을의 꽁지처럼 내 귀에 길게 맴돌았다.


 “그래요. 어떻게든 되겠죠. 그 말은 어떻게 되든 간에 당신은 상관없다는 이야기군요.” 그리곤 어떤 인사 같은 말도 없이 전화가 끊겼다. 나는 다시 전화를 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아니, 생각은 했지만 생각처럼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와는 그걸로 끝이라는 걸 나는 안다. 나는 그녀에게 제대로 하고 싶은 말을 끝끝내 하지 못했다. 최흑오라는 이름을 가진 선글라스의 여자가 말하는 ‘제대로 이야기하라’라는 말을 따르지 못했다.


 그녀를 만나게 된 건 일 년 하고 5개월 정도 전이었다. 후배 녀석 때문에 나가게 된 한 모임에서 그녀를 만났다. 그녀는 내가 사진을 한다는 말을 듣고 이것저것 많이 물어보면서 둘이서만 따로 만나게 되었다. 그녀는 친밀한 스타일로 얼굴도 작고 예쁜 눈을 가지고 있었다. 눈동자는 마치 컬러렌즈를 낀 것처럼 갈색 빛깔을 띠고 있었는데 그것이 몹시 신비스럽게 보여서 그녀의 눈동자를 많이도 카메라에 담았다. 그리고 그녀에게 그 사진들을 건네주면서 맥주를 마시는 사이로 발전을 했고 같이 자는 사이가 되었다. 막상 사귀는 사이가 되고 나니 거리를 좁히기 위해 다가서려는 행동을 하지 않아도 되어서 일까, 어떠한 면에서 질투도 덜 느끼고 데이트를 해도 그녀 위주로 했고 내가 먹고 싶은 걸 말해본 적은 없었다. 그녀가 먹고 싶은 걸 먹는 것이 나는 괜찮았다. 그녀는 요즘 여자들과 다르게 내가 몰고 다니는 오래된 수동기어 자동차에 대해서도 크게 참견하지 않았다. 오히려 수동기어라서 운전하는 방법을 가르쳐 달라고 해서 빈 운동장에서 운전을 가르쳐주기도 했다. 그때 그녀가 운전을 서툴게 하여 차의 조수석 문에 스크래치가 갔는데 아직 그대로 있었다.


 그녀가 서서히 변해가는 동안 나는 그것을 눈치 채지도 못했으며 눈치를 챘다고 해도 그것에 상응하는 반응을 하지 않았다. 누군가 나에 대해서 흉을 본다고 해도, 욕을 한다고 해도 내 앞에서 대놓고 하는 것을 듣기보다 내 뒤에서 내가 모르는 곳에서 친구들끼리 나를 흉보는 게 훨씬 나았다. 어차피 나의 귀에 안 들어오면 나는 모르는 것이니까 상관없었다. 만약 나에 대한 험담이나 충고 따위가 내 귀에 들어오게 되면 그 친구들을 피하면 그만이다. 그러다 보면 영영 만나지 않는 사이가 되고 그들 역시 살아가는 생활이 바쁘기에 늘 나를 흉보며 살아갈 수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내 것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여자, 내 편이라고 하는 그녀가 떠났다고 생각하니 마음 한 구석의 공간에 검은 물이 가득 채워지는 기분으로 몹시 언짢았다. 거북하고 체한 것 같은 찝찝한 기분이 역기를 든 무게만큼 나를 짓눌렀다. 불쾌한 기분이 온몸을 덮었을 때 한 손님이 왔지만 손님을 받을 기분이 아니었다. 나는 비가 너무 와서 컴퓨터가 고장 났다는 말로 돌려보냈다. 손님은 비가 와서 컴퓨터가 안 된다는 말을 이상하게 들을 법도 한데 나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구십 도로 인사를 하고 돌아갔다. 늘 신나게 들었던 악틱 몽키즈의 노래가 끝났음에도 다시 노래를 틀지 않았다. 가게 안은 그야말로 고요가 모든 공간에 들어앉아 있었다. 도무지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가 없었다. 배가 고프지도 않았고 무엇을 해야 할지 행동의 정당성도 잃은 채 그대로 가만히 앉아 있었다. 비는 계속 쏟아져서 고요함을 깨웠다. 물도 한 모금 마시지 않았으며 화장실도 가지 않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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