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교관 Aug 28. 2021

최 흑 오 15

단편 소설


15.


 택시의 창밖으로 보이는 쥐들은 무화과나무 밑동의 자리에 있던 쥐들과는 달랐다. 작고, 그저 늘 보던 볼품없는 쥐들이었다. 하지만 최흑오라는 여자가 말한 것처럼 쥐들이 이동을 하는지도 몰랐다. 쥐들의 이동은 단순히 지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관을 말하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이 들었다. 새벽인 시간에도 30분 넘게 달려 나는 가게로 왔다. 이 시간에 가게에 온 적은 처음이었다. 완전히 다른 곳처럼 느껴졌다. 매일 와서 생활을 하는 자리다. 하지만 시간만 바뀌었을 뿐인데 생소했다. 그러니까 내가 8년 동안 들숨과 날숨을 쉬며 지내온 그 모든 것이 몽땅 빠져나가 있었다. 몹시 이상한 곳이 되어 있었다. 매일 와서 맡았던 냄새는 전혀 나지 않았다.


 사람이 생활하는 곳에는 냄새라는 게 존재하지만 냄새가 죽어 있었다. 내가 나의 등을 계속 보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불도 켜지 않고 넋을 잃고 앉아서 지금 가게에 오게 된 상황을 생각해 보았다. 나의 꿈속으로 들어왔다는 최흑오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부터, 도저히 믿기지 않을 만큼 크고 붉은 눈을 가진 쥐들과 그 쥐들이 내는 소리와 이상한 손님들과 택시 운전사인 스리랑카인 쉬안을 생각했다.


 생각은 돌고 돌아 원점인 그녀에게로 갔다. 그녀는 우산을 같이 쓴 남자에게 상당히 친밀 적이었다. 처음 만나거나 몇 번의 만남만으로 그런 표정이 나올 수는 없다. 꽤 오래전부터 그녀는 그 남자를 만났을 것이다. 그리고 함께 몸을 섞었다. 그러고 보니 언젠가 그녀가 무릎 밑에 반창고를 붙이고 나온 적이 있었다. 대일밴드만으로 안 되는 상처가 나서 약을 바르고 반창고를 붙였다고 했다. 그때는 몰랐지만 아마도 그때부터 그녀는 우산 속의 그 남자를 만나서 섹스를 즐겼을 것이다. 문득 그녀의 다리에 난 상처도 물린 상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와 함께 우산을 쓰고 있던 얼굴이 보이지 않았던 그 남자가 혹시.


 나는 가게에 불을 켜기 위해 의자에서 일어났다. 이렇게 컴컴하게 있다가는 가게의 어느 곳에서 어떤 손이 나와서 나를 잡아당겨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스위치를 올리려는데 최흑오가 들어왔다.


 “불을 켜지 마세요. 쥐들이 지금 당신 집에 있어요. 당신을 찾고 있어요. 당신이 정액을 물에 희석하여 버렸기에 당신처럼 보이는 형태가 그곳에 남아 있어서 쥐들은 잠시 동안은 그 형태를 당신으로 알고 있을 거예요. 하지만 그리 오래 있지는 못해요. 당신은 어째서 제 말을 듣지 않았죠?”


 나는 대꾸할 말을 찾지 못했다.


 “중요한 것은 일어날 일은 이미 일어났다는 거예요. 불을 켜서는 안 돼요. 일단 문을 잠그세요.”


 여자의 말에 나는 안에서 문을 걸어 잠갔다. 내가 가게 안에 있으면서 문을 잠근 적은 처음이었다. 묘한 기분이 들었다. 문을 잠그는 순간 방호벽이 쳐진 것 같았다. 문 밖에서 어떤 이벤트가 일어나더라도 나는 이 안에서 그저 방관하는 자세로 볼 수 있는 태도만 취하게 된다. 여자는 문 앞에서 문 밖을 잠시 보더니 블라인드를 쳤다. 시각적으로도 단절이 되었다. 그리고 여자는 내가 앉아 있는 의자 앞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가게 안은 그야말로 적막이 가득했다. 검은 적막이 우리 두 사람을 꽉꽉 에워쌌다. 여자는 적막 속으로 손을 뻗어 내 손을 잡았다. 여자는 내 손을 들어 자신의 상처를 만지게 했다. 그 촉감은 몇 시간 전에 꿈속에서 만졌던 여자의 상처와 같은 감촉이었다.


 손등, 팔뚝 그리고 어깨에도 상처가 있었다. 여자는 선글라스를 낀 채로 윗도리를 벗었다. 그 모습이 물이 흐르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가슴 언저리 부분에도 상처가 있었다. 나는 그 상처를 실제로 만지고 있는 것이다. 손끝으로 실제의 상처를 계속 만지고 있으니 내 마음의 한 부분을 만지는 느낌이 들었다. 인간관계에 있어서 어떤 말을 뱉어버리고 나서 그 후에 일어나는 일을 미리 걱정하여 그저 입을 꾹 다물었던 마음이 손끝으로 만져졌다. 그건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한 나의 최선이었다. 입으로 나오는 말은 내 생각과 늘 다르다는 걸 커가면서 점점 느꼈다.    


 “스칸디나비아 반도에 여행을 갔었어요. 그곳에서 죽으려고요. 그런 사정이 있었어요. 이곳에서 더 이상 살아갈 가망이 없다고 생각을 했죠.”


 나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지 않았다. 여자는 그럴만한 상황에 처했다는 것만 알 수 있었다. 이런 여자가 그런 생각을 했다면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나는 그것을 어렴풋하게나마 알 수 있었다.


 “그곳에서 한 남자를 만났어요. 그 사람은 나의 이야기를 걸러내지 않고 들었어요. 전 그걸 알 수 있었어요."


[계속]

작가의 이전글 최 흑 오 14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