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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Sep 02. 2021

선 인장

엽편 소설

rㄱㄱ


 언니와 만난 건 7년 만이었다. 언니와 나는 8살 차이가 난다. 전혀 싸운 기억이 없는데 사이가 좋지 않았다. 어제는 엄마의 장례식이라 언니와 인사만 나눴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지는 않았지만 사람들에게 목례를 하고 나는 언니와 함께 상주 역할을 했다. 여름이라 더웠다.   

 

 7년 만에 온 오래된 집은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단지 엄마가 없을 뿐이었다. 언니가 나를 부르며 짐 정리를 재촉했다. 나는 언니와 함께 엄마의 방 정리를 하고 짐을 옮겼다. 정리가 대충 끝나고 마루에 앉아서 선풍기를 틀었다. 마당에는 언제인지 모를 식목일에 내가 심어 놓은, 손질이 되지 않은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그리고 난초들이 화단에서 작은 숲을 이루고 있었다.    


 그때 볼이 차가웠다.


 "앗, 차가워."


 언니가 맥주를 꺼내서 내 볼에 갖다 댔다. 내가 놀라자 언니가 웃었다.   

 

 "언니는 용케도 마루가 있는 집에서 오래도록 버티고 있네."    


 내 말에 언니는 활짝 웃으며 얼굴의 땀을 닦았다. 그리고 맥주를 마셨다.    


 "넌 이 집이 밉겠지만 난 이 집에서 너를 기다렸어"라며 언니는 나를 보며 웃었다. 7년 만에 보는 언니는 많이 늙었다. 그리고 조금, 뭐랄까 서글펐다. 웃을 때마다 의미 없는 머리의 찰랑거림이 눈에 들어왔다. 어릴 때 나는 늘 화가 나 있었고 내가 화를 내도 언제나 생글생글 웃는 얼굴의 언니가 죽도록 미웠었다.    


 "시간을 훌쩍 건너 맥주를 너와 마시게 되다니 놀라운 일이네. 시간이란 그런가 봐."


 언니는 나에게 맥주 캔을 들어 올렸다. 나는 건배를 했다.    


 마루에는 크고 작은 선인장이 많았다. 엄마는 선인장이든 난이든 꽃 같은 것을 좋아했다. 내가 선인장을 계속 보고 있으니 언니가 생각났다는 듯 선인장에 물을 주기 시작했다.    


 "선인장, 보기보다 꽤 손이 많이 가. 벌레 잡아줘야지, 계절에 민감하기 때문에 영양제도 줘야 하지, 물 양도 조절해야 해. 몸통에 물을 막 주면 또 안 돼."    


 "에? 선인장에 그렇게 손이 가?"라고 내가 물었다.    


 "바보, 살아있는 건 뭐든 손이 많이 가는 법이야. 관리를 끊임없이 해줘야 해."


 언니는 얼굴을 돌려 나를 빤히 보았다. 그리고 웃었다.    


 "왜? 뭐?"    


 처음이랄까, 내 얼굴을 빤히 보는 언니의 시선이 부끄러워 갑자기 얼굴이 달아올랐다.    


 "너 역시 굉장했다구. 엄청난 관리 몬스터였지"라며 언니는 또 웃었다. 나는, "내가 그랬나"라고 얼버무렸다.  

 "엄마가 너를 품에서 내려놓으면 잠이 푹 들었다가도 그새 알아차리고 울어 버리고, 한 번 울면 절대 그치지도 않아, 엄마 왼쪽 젖만 물어서 엄마 젖이 퉁퉁 불어 터지는데도 너는 꼭 거기만 물었어."


 언니는 또 뭔가 생각났다는 듯 방으로 들어가 오래된 앨범을 들고 왔다. 그리고 내 어릴 적 사진들을 보여 주었다. 나는 대부분 울고 있거나 퉁퉁 부은 눈으로 엄마에게 매달려 있었다.    


 "나 말이야, 사실 엄마를 너한테 빼앗겨 속이 상한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어. 내가 아파서 열이 펄펄 나서 엄마가 나를 안고 죽을 먹이고 약을 먹일 때도 너는 그게 싫어서 나를 밀치고 엄마에게 파고들 정도였어. 관리 몬스터에 고집 몬스터 동생아"라며 미소를 지었다. 언니는 맥주를 마셨다.    


 중학생이 되어서 사춘기에 접어든 나에게 엄마와 언니는 한통속에 되어 늘 웃었고 억지로 힘든 일이 없냐고 잘 대해주는 게 미웠다. 나를 좋아한다는, 늘 내 생각을 한다는, 엄마가 하는 말은 모두 거짓말 같았다.    


 여고생이 된 언니가 친구와 방학에 여행을 가기로 했을 때 나는 그게 싫어서 아침에 집을 나가버려 하루 종일 밖에서 놀다가 밤에서야 나타났다. 그때 대역죄인 같은 몰골로 나를 찾아다닌 엄마와 언니의 모습을 통쾌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하루 만에 나를 찾지 못한 것에 화가 나서 집에서 밥도 먹지 않고 말도 하지 않았다.    


 "언니, 이제 집 정리도 끝났으니 나, 가볼게."    


 "갈래? 자고 가라고 하고 싶지만 그 말은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언니는 내 머리를 헝클었다.    


 "머리 건들지 마! 내가 아직 애로 보여?"    


 "그래, 아직 애로 보여. 요 앵그리 몬스터. 그리고 영원히 애로 대할 거야."    


 이상했다. 언니와 다시 만나면 그 보기 싫은 웃음에 서먹할 줄 알았는데 마음이 어쩐지 편안했다. 언니는 일어서서 현관을 나서는 나에게 잠시 있어보라고 했다.    


 "자, 이거."   


 언니가 내 민 것은 작은 선인장이었다. 작은 화분에 작은 선인장과 좀 더 큰 선인장이 같이 있었다.    


 "이 선인장, 엄마가 나중에 너 오면 주라고 하더라, 엄마는 네가 선인장과 닮았다고 했어, 가시가 있어서 가까이 가려면 조심스럽게 다가가야 한다고. 하지만 꽃을 피우면 정말 아름답다고 말이야. 손이 아주 많이 간댔어, 이 선인장은. 그러면서 이 선인장을 보면 네 생각이 난다며 엄마가 없어지고 네가 오면 이 선인장을 주래."    


 언니가 내민 선인장을 받는 순간 알 수 없는 감정이 오고 갔다. 슬픔이나 환멸 같은 것은 아니었다.    


 "있지 엄마에 대해서 재미있는 거 하나 알려 줄까. 가끔씩 엄마가 이 선인장을 들고 등대에 나갔는데, 하늘을 보며 큰 소리로 갈매가! 갈매가!라고 소리를 쳤어. 갈매기야 갈매기야 해도 될 텐데 말이야."


 언니는 맥주를 마시고 웃었다.    


 나는, 나는 언니를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 나는, 나는 그저 언니에게 뭔가 말을 하고 싶었는데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다.    


 "반드시 익숙해질 필요는 없어. 나, 강아지 장례 치르는 일을 하잖아. 하지만 그 일에 익숙해져서 능숙하게 염을 하고 재를 걷고 하는 거…… 어딘가 너무 이상해. 가족이 처음 당한 일처럼 그렇게 대하는 거야. 너도 익숙해지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돼."    


 나는 울음을 꾹 참았다.    


 "선인장을 꼭 잘 키워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아도 돼. 뭐든 언젠가 죽거나 사라지고 말아. 단지 그 선인장은 엄마와 네가 함께한 시간이야. 시간은 사라지지 않거든. 그래서 언젠가 선인장이 없어진다고 해도 엄마는 네가 선인장을 가지고 있던 시간 동안이라도 너와 함께 있었으니까 행복해하실 거야."    


 나는 언니에게 인사도 하지 않고 신발도 제대로 신은지도 모르고 현관을 나왔다. 눈물이 흘렀는데 그 모습을 언니에게 보이기 싫었다.    


 "너, 누가 뭐래도 내 동생이야, 너와 나는 엄마로 연결되어 있으니 언제든 와. 비록 우리는 아버지는 다르지만 가족이잖아. 엄마는 내가 낳은 딸, 아빠가 다른 딸, 이런 생각이 없었어. 그냥 나와 너, 언니와 동생이고 딸들이었어!"


 언니는 조금 큰 소리로 내 등에 대고 이야기했다.    


 나는 내 언니가 친언니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비뚤어지기 시작했다. 언니와 엄마는 나를 소외시키면서 그러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미칠 것 같았다. 하지만 그건 내 진심이 아니었다. 나는 아빠가 다르다는 사실을 알고 언니가 내 친언니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등대에 나가 큰 소리로 늘 갈매가! 갈매가!라고 목이 찢어져라 불렀다.    


 엄마의 소식을 듣고 나는 며칠을 잠을 설쳤다. 나는 엄마, 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서…… 정말 보고 싶어서…… 이제 그런 말도 할 수 없어서.    


 "이 집은 우리 둘의 집이야! 내년에도 올 거지! 꼭 와! 너도 곧 모르는 사람을 만나 가족을 이룰 거야! 너와 나는 인연이 끊어질 수 있지만 부모 자식 간의 인연은 쉽게 끊어지지 않아! 엄마는 널 많이 사랑했어."   


 나는 돌아서 언니에게로 뛰어갔다. 언니는 미소를 짓고 팔을 조금 벌려주었다. 언니를 안았을 때 언니는 웃고 있었지만 언니의 몸이 갑자기 뜨거워지는 게 언니도 울고 있었음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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