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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Aug 07. 2022

바람이 불어오면 42

소설

42 [마지막]


 비가 오는 두말 밤에 대대적인 폭력시위가 있었고 나 또한 그곳에서 다리를 절며 화염병을 나눠주었다. 나는 시위대의 뒤를 봐주는 조에 투입이 되었다. 비는 어깨와 등에 떨어져 김을 모락모락 자아냈다. 무섭게 내리는 비 때문인지 다리가 더욱 아팠다. 현실감을 잃은 온도에서 행동을 하게 하는 것은 정신력도 무엇도 아닌 기계적 반동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무의식으로 하는 행동과 같은 기계적인 움직임으로 시위대의 세력을 도왔다. 우산을 받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시간이 되었고 국민들과 시위대들은 하나가 되어 대통령을 반대했다. 최루탄이 하늘에 뒤섞여 떨어졌고 동시에 방사형 관창에서 물 폭탄이 쏟아져 나와 사람들을 벌렁 나자빠지게 만들었다. 나는 워터캐논에 맞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도망갔지만 저는 다리 때문에 그만 정통으로 얼굴에 물대포를 맞고 말았다. 그것은 굉장한 타격이었다. 국가폭력은 학살 수준이었고 물 폭탄에 레짐은 전혀 개입하고 있지 않았다.

 

 이것이 자유민주주의인가,

 전시도 아닌데,

 다리를 절고 있는데.


 국가는 ‘몰살’에 초점을 맞추고 시위를 하는 사람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워터캐논을 발사했다. 태어나서 그렇게 심각하고 아프게 얼굴을 맞아본 기억은 없었다. 군대에서 고참에게 얼굴을 맞아서 코뼈가 틀어졌을 때에도 이만큼은 아니었다. 나는 뒤로 벌렁 넘어지면서 정신을 잃었다. 다리만 절지 않았어도 도망갈 수 있었다. 불과 몇 초 만에 정신을 차리니 물대포에 사람들이 뒤로 벌렁벌렁 날아가는 장면에 눈에 들어왔다. 곧이어 사막에서 볼법한 전투복과 우지인 같은 마스크를 한 미군과 한국군이 몰아닥쳤고, 나를 비롯한 사람들은 얼굴과 온몸을 군인들이 손에 든 총의 개머리판과 총열로 무자비하게 구타를 당하고 어딘가로 끌려갔다.

 

 눈은 떠지지 않았고 척추는 마치 억지로 꺾인 것 같았다. 절었던 다리의 감각이 없었다. 몸은 심하게 떨렸다. 어딘지도 모르는 작은 사각형의 남루한 방에 옅은 불빛만 보였고 퀴퀴한 냄새만 존재했다. 나에겐 오히려 잘 된 일이었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

 

 우리들은 모두 플라스틱 모조 지구에 들어와 있었다. 냄새나는 초록색 모조 나무 모양을 들고 있는 여자들은 닳아 없어지려고 하는 것이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고 누군가 들어오는 동시에 밖에서 굉장한 천둥소리가 들렸다. 그 순간 건물이 심하게 흔들렸고 무너지는 소리와 가스 같은 것이 터지는 폭발음이 들렸고 사람들의 비명이 혼재했다. 비명소리에는 남자. 여자아이들 할 것 없었다. 내가 있던 곳의 천장이 무너져 내렸고 벽면이 건물에서 떨어져 나와 감각이 없던 내 다리에 떨어졌다. 고통이 온몸을 엄습할 것 같았는데 아무렇지 않았다. 그저 내 눈앞에서 내 다리가 짓눌러지는 모습이 보일 뿐이었다. 뿌연 먼지 한 트럭이 건물이 무너지면서 사방을 뿌옇게 만들었다. 사이렌 소리가 들렸고 건물의 벽이 쏟아지는 소리와 기둥이 부서지는 소리, 유리가 깨지는 소리와 잡음이 심하게 귓가에 울렸다.

 

 합성수지 인간은 불이 붙어서 고약한 냄새를 내며 타 들어갔다. 순식간이었다. 고통을 느낄 여유 따위는 없었다. 불이 붙어 쩍쩍 녹아내렸다. 다리에 올려진 무게감이 전혀 없어서 먼지 때문에 감았던 눈을 떴다. 부서진 건물과 살과 피부가 터진 사람들이 눈앞에 있었다. 왼쪽 다리의 감각은 전혀 없었다. 내 몸은 시멘트의 심각한 먼지에 덮여 있어서 마치 설인 같았다. 숨을 쉴 수도 없었다. 타는 냄새가 코를 자극했고 평소에 듣지 못한 굉음만 주위에 꽉 매웠다. 나는 다리를 끌며 기어서 그곳을 벗어났다. 밖으로 나와서 보이는 풍경은 일그러져 있었다. 고가의 다리 위에는 날개가 떨어져 나간 날벌레들이 수천, 수만 마리가 붙어서 어디에도 가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의 공동체가 되어서 그들이 처한 상황에 대해서 방임하고 있었다.

 

 누군가 그들의 소리 없는 반항이 마땅치 않아 기름을 붓고 성냥에 불을 그었다. 수만 마리의 날개를 잃은 벌레들은 유월의 조개처럼 울었다. 높은 건물에는 고무 인간들이 그 속에서 닳아빠진 몸으로 모조 나무에 물을 뿌리고 있었고 길거리에는 합성수지로 만들어진 남자들이 그 모조 나무를 한 손에 하나씩 들고 거리를 서서히 걸어 다녔다. 어떤 합성수지 인간은 머리에 수술 자국이 선명했으며 더럽게 부서져 있었다. 머리가 움푹 파였거나 눈동자는 안경으로 봉합되어 있는 사람도 보였다. 다리가 제 다리가 아닌 것이 선연하게 눈에 띄는 남자도 있었다. 그런 남자들의 옆에는 모조 나무를 들어주는 여자가 그 남자들의 보조를 느릿하게 맞춰주고 있었다.


 바람이 불어온다.

 바람은 그녀에게 닿을 수 있을까.

 나는 바람을 붙잡아 보려 팔을 들어 애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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