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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Aug 06. 2022

바람이 불어오면 41

소설


41.


 바람이 불어왔다. 지정된 궤도가 없는 바람이었다. 바람은 그렇게 불었다. 추웠다. 바람이 얼굴을 건드리고 지나가니 그녀의 귓불이 보였다. 귀에 붙은 자그마한 귀걸이. 나는 그녀의 귀를 만지려 손을 흔들었다. 그녀의 얼굴이 내 앞에 나타났다가 모래처럼 변했다. 곧 사리질 터였다. 나는 점점 나 자신에게서 멀어지고 있었다. 그녀가 사라지기 전에 바람이 불어와 그녀의 오드 콜로뉴를 가져다주었다. 나는 점점 심하게 다리를 절었다.


 ‘넌 앞으로 전진해야 해. 여기서 이러면 안 돼’라고 그녀가 말했다.


 “전 이미 없어졌어요. 당신이 없어짐과 동시에, 당신이 사라짐과 동시에 전 합성수지 인간이 되어있는걸요. 언젠가 불이 붙으면 걷잡을 수 없이 타 없어질 거예요.”


 ‘아니야, 너의 몸짓, 행동, 생가 하나하나가 네가 선택해야 하는 길이야. 여기서 이러면 안 돼’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의 색이 희미해져 갔다.


  “당신은 언제나 멀어지기만 하는군요”라고 나는 조용히 말했다. 또렷이 새겨져 있던 그녀의 각인 같은 색에 블러가 끼고 희미해져 모래 같았던 그녀는 바람이 불어 허공에서 사라졌다.

 

 아침이 다가오는 새벽은 추웠다. 오래전 새벽의 눈 속에 서 있던 날처럼 차갑고 냉기가 가득한 날이었다. 나는 걸음을 옮기는데 눈에 띄게 다리를 절고 있었다. 새벽 운동을 나온 노인이 너무 심하게 조여진 허리띠가 풀리지 않아 끙끙대며 나에게 허리띠를 좀 풀어달라고 했다. 허리띠를 아무리 풀려고 힘을 줘도 허리띠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만 감당할 수 없는 결락에 몸이 덜덜 떨렸다. 추위 때문이 아니었다. 아무것도 나 자신이 할 수 없다는 두려움으로 오한이 들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알았다. 나는 나도 모르게 허리띠를 너무 심하게 졸라서 노인은 욕을 하며 자리를 떠났고 나는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눈물이 났다. 눈물은 오열로 바뀌었다. 애를 쓰며 사는 사람들을 봐도 노력보다는 이미 그것은 정해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들의 삶은 노력보다는 배열에 가깝게 보였고 배열 속에서 패자들은 행렬에서 떨어져 나가지 않으려고 갖은 애를 쓰고 있었다. 나는 그들보다 더 밑바닥의 생활로 의미 없는 반복과 따분함으로 그녀가 남긴 공백 속에서 지내고 있었다. 그리고 난 아무것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 없었다.


 대통령은 강대국과 외교를 위해서 나라의 어려운 경제상황을 바꿔야 한다는 이유로 언론을 장악했고 금융을 매수하여 미국과 뒤로 손을 잡았다. 사람들은 권력에 반하기 위해 길거리로 몰려나왔고 불이익과 자신들의 권익을 위해서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는 그런 책임을 개개인에게 돌렸고 많은 사람들이 잡혀서 책임을 추궁받았다. 불건전함을 조장하는 개인은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잡아들였다. 그 과정에서 물리적인 충돌이 심하게 일어나기 시작했다. 경기의 침체는 가중되었으며 사람들은 행동으로 정부에 맞섰다. 전투를 방불케 하는 시위대와 진압대의 마찰은 언론에는 공개가 되지 않았고 매스미디어는 티브이나 라디오를 통해 일부 단체의 집단적인 부정행위를 몰이해로 몰아갔다.


 각종 매체에서 경제는 안정궤도에 진입하고 있으며 국민이 잘 살아가는 방법론으로 미국과의 협력을 논리로 내세워서 미국의 물품을 대거 수입하는 것에 대통령은 사인을 했다. 방송사들은 미국과의 협력이 대통령의 대단한 업적으로 방송하는데 주력했다. 국민의 30퍼센트나 되는 1세대들은 대통령이 하는 진실하지 못한 언어를 그대로 받아들였고 그들은 정부에 반하는 세대와 주동자들을 경멸했다. 강제로 밀어붙이는 경제정책과 외교는 국민들을 더욱 일어서게 만들었으며 정부는 그들에 대해서 강압이 넘쳐나는 폭력으로 잡아들였다. 경찰국가의 국가권력의 힘을 국민들에게 여실히 보여주었다. 거리는 핏빛으로 물들었고 통곡의 소리로 가득 찼다. 나 역시 그 속에서 다리를 절룩거리며 화염병이나 돌을 던지며 정부에 반하는 시위를 한지 일 년이 넘어가고 있었다. 세상은 엉망이었다.


 뚜렷한 목적의식이 확립되지 않은 채 나는 이곳에 발을 담갔다가 빼지 못하고 일 년을 넘게 시위대에 투입이 되어 활동을 하고 있었다. 다리를 절고 있어서 일선에서 활동하지 못하고 나는 화염병 제조에 도움을 주었고 그것들을 공수했으며 자동차 헤드라이트 보수를 했고, 사람들에게 옷을 나눠주기도 했다. 시위대의 표정은 언제나 어두웠고 눈빛은 날카로웠다. 긴장하고 있지 않으면 언제 어떻게 어떤 식으로 정부군에게 잡혀 갈지 모르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시위가 과잉되고 포화 상태에 이르자 대통령은 미군 군부를 개입하는 방안을 검토했고 국회는 이를 통과시켰다. 국민들은 분노로 들끓었고 시위대들은 미군이 개입함과 동시에 개보다도 못한 모습으로 끌려갔다. 끌려간 시위대의 소식을 제대로 전해 들은 사람은 없었다. 눈 한쪽이 없어졌다는 소리도 들렸고 망치로 머리를 내리쳐 함몰된 모습으로 고향으로 돌아갔다는 소리도 들렸다. 다리를 많이 맞고 군용 지프로 다리를 밟고 지나가 납작해졌다는 소리도 들렸고 옛날의 나치처럼 치아를 뽑고 전기고문을 한다는 소리도 들렸다. 소문이든 뭐든 간에 고문을 당하는 것은 확실했고 끌려간 사람들의 행방은 묘연했다. 제2, 제3의 천상병이 되었다. 끌려갔고 나왔을 땐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가지 못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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