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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Aug 05. 2022

바람이 불어오면 40

소설


40.


 작업조의 몇 명 중에 몇은 집으로 갔고 나와 조장과 다른 직원이 남아서 포장마차에서 생명력이라는 전혀 없는 붕장어 구이에 소주를 마셨다. 회사의 비리와 작업시간 배분의 불만에 대해서 그들은 술자리에서 단판을 지을 것처럼 필사적으로 이야기를 했다. 어차피 결론이 날 문제면 고민할 필요가 없다. 이러나저러나 결론이 나지 않을 문제면 고민은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이다. 나는 이 말에 전적으로 동감을 했다. 포장마차에 앉아서 조장의 알아들을 수 없는 생채기에 방뇨의 기운이 밀려왔다. 액체를 마시면 소변이 마렵다. 당연한 진리이며 세상은 이런 당연함으로 돌아가고 있다. 이 사이에 금이 가고 틈이 벌어지면 삐거덕거리게 된다. 그것이 사회이든, 인간이든 다르지 않다. 나는 포장마차를 나와서 골목길을 꺾어 모퉁이에서 오줌을 갈겼다. 누군지 모르는 두 사람이 먼저 와서 소변을 보면서 올라가지도 않는 소변을 벽면에 대고 포물선을 만들어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포물선에는 하얀 김이 올라와서 묘한 풍경을 만들었다. 그들 역시 그들이 속해 있는 회사에 대해서 욕을 하고 있었다. 사장과 함께 약자를 괴롭히는 직장 선배에 대한 신랄한 욕을 퍼붓고 있었다. 술을 마시는 노동자들에게는 모두 공통점이 있었다. 직원들에게 욕을 듣지 않으려면 회사의 사장이 되지 않아야 했다. 모두가 욕을 할 누군가가 필요했다. 욕을 하며 뾰족한 자신의 삶을 조금씩 마모시켜 가는 것이다.


 나는 한 손으로 벽을 짚고 소변을 본 다음 포장마차로 들어와서 소주를 한잔 입에 털어 넣었다. 주인아줌마에게 검은 맥주는 없냐고 물었다가 황당한 답변만 들었다. 술을 많이 마실수록 공복이 위장을 잠식했다. 나는 주인아주머니에게 라면 한 그릇을 주문했다. 조장과 직원에게도 한 그릇씩 하겠냐고 물었지만 그들의 대화에 내 말이 들어갈 자리는 없었다. 라면은 촌스러운 연두색의 멜라민 그릇에 담겨 내 앞에 놓였다. 라면 특유의 냄새는 그만의 세계를 만들었다. 스프의 냄새는 허기를 더욱 북돋았으며 국물 안에 들어있는 면발은 오래 전의 기억을 떠올렸다.


 조용하게 오랫동안 없어져있던 그 기억.


 라면 그릇을 쳐다보고 있으니 방향성을 몽땅 잃어버리고 기억 속에 있었던 임계점으로 들어갔다. 지나간 옛시대의 흥분이 보였다. 라면이 자아내는 스프의 향에서 그녀의 오드 콜로뉴가 퍼져 나왔다. 나는 라면 한 젓가락을 떠서 입으로 넣었다. 라면을 씹어 삼키고 국물을 한 모금 마시는 순간 구토의 기운이 올라왔다. 내 좁은 마음속에 그녀의 소멸이 남긴 부재의 구멍은 과장되게 큰 구멍이었다. 구멍에는 내가 살아오면서 어떤 것도 그곳에 닿지 못했지만 라면을 한 젓가락 먹는 순간 라면의 면 가닥이 부재의 구멍을 긁었다.


 나는 라면을 먹다 말고 포장마차를 뛰쳐나와 방금 전 소변을 본 곳으로 가서 토악질을 했다. 토해내는 음식 찌꺼기에는 회식자리에서 먹은 음식은 나오지 않았다. 허리를 구부리고 세상에서 가장 괴로운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나의 눈은 피하지 않고 입에서 쏟아지는 구토물을 보았다. 내가 쏟아내는 내용물은 전부 칼국수의 잔재뿐이었다. 칼국수는 몇 년 동안 몸의 과장된 구멍에 굳은 채로 들러붙어 있다가 오늘에서야 부재의 구멍으로 빠져나왔다. 나는 입을 벌리고 자작거리는 오래된 무성 좀비 영화의 한 장면처럼 벽을 짚고 입에서 오래된 칼국수를 쏟아내고 있었다. 많은 양의 오래된 칼국수가 좁은 기도를 통해서 빠져나왔다. 그녀의 아픔이었고 나의 고통이었다. 소변을 지린 땅바닥 위에 칼국수의 조잡함이 퍼져나갔다. 그 조잡함에 발로 흠집을 냈지만 이내 흠집은 조잡함으로 메워졌다. 욕이 나올 것 같았다.


 나는 벽을 짚고 그녀가 소멸됐을 때 흘리지 못한 눈물을 흘렸다. 내가 흘린 눈물은 눈물로써 제 역할을 전혀 하지 못했다. 정신이 흐렸고 눈앞이 가물거렸다. 나는 두들겨 끌려가다시피 조장에게 이끌려 초이스 하우스에 갔고 거기서 파트너를 품에 끼고 러브호텔에 들어갔다. 파트너가 기계적으로 옷을 벗겨주었고 구부러진 내 페니스를 젖은 수건으로 잘 닦은 다음 입으로 귀두부터 잘 빨아서 억지로 세워주었다. 누워있는 내 몸 위에서 몇 번이나 몸을 뒤틀면서 쥐어짜는 소리를 내뱉고 방출이 확인됨과 동시에 볼에 입을 맞춘 다음 또 봐요, 라는 말을 남기고 방을 빠져나갔다. 자의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아무 데도 없었다. 눈에 보이는 모든 현상이 만들어진 것 같았고 허무하기만 했다. 무엇인가를 만들어 놓으면 모래처럼 사라지고 만다. 일색으로 일관된 모텔방의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잠시 발가벗은 채로 누워 있다가 한기가 파고들어 옷을 걸치다시피 하고 밖으로 나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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