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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Aug 04. 2022

바람이 불어오면 39

소설


39.


 의식의 열매는 뿌리 밑동부터 잘려나가서 피칠갑을 했다. 계절은 어김없이 꽃을 피웠다가 색 바래진 앞을 떨어트렸고 비슷하지만 냄새가 다르고 썩은 바람이 불어왔다. 생성과 소멸은 앞뒤에 붙어 있었고, 죽음과 삶도 별개의 것이 아니었다. 바슐라르는 촛불에서 인간을 보았다. 추상이 가득한 촛불은 불이 붙는 순간 지금 있는 세계와 너머의 세계를 찰나나마 느끼게 해 주었다. 평면적인 일상에 수직으로 오른 촛불은 인간의 근원적인 욕망일지도 모른다. 촛불과 닮은 것들은 세상에 많이 있었다. 성당의 지붕도, 피뢰침도 그렇고 우산의 꼭지도 그렇다. 나는 촛불에 내 몸과 의식을 홀라당 태우고 싶었다. 내 손은 아직도 그녀의 감촉을 잊지 않고 있었고 입술도 그녀를 아직 기억하고 있었다. 그녀를 이토록 잊지 못하는 건 신에게 모진 벌을 받는 것이라 생각했다.


 불꽃처럼 사람들은 흐느적거리며 어딘가에 쏟아져 나와서 어딘가로 뿔뿔이 흩어져 없어졌다. 모든 것이 따분하고 지루하고 의미 없는 것들뿐이었다. 나는 그녀가 소멸한 후로 강렬하게 검정을 갈구했다.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밤이 좋았고 낮에는 일만 했다. 선글라스를 꼈고 검은 음식을 찾아서 먹고, 검은 술을 마셨다. 어쩌다가 이끌리는 것이 있다 하더라도 그녀가 이끄는 것처럼 마음이 가는 경우가 현실 속에는 없었다. 그녀와 함께 내 속에서 소멸하고 남은 찌꺼기를 삶에서 필사적으로 빼돌리려 해도 되지 않아 나는 그대로 내버려 뒀다. 사람에 대한 애착이라는 감정은 사치였다. 2차에서 술을 마시고 포장마차에서 맛없는 안주를 먹으며 소주를 마셨다. 이렇게 노력 없는 나의 삶도 촛불처럼 수직으로 상승하고 싶었다. 그렇게 되면 나는 엑스레이처럼 투명해질 것 같았다.


 그렇지만 나의 바람과는 달리 자본주의에서 노력하지 않는 나도 시간이 흐르면서 계급사회의 꼴을 하게 되었다. 나는 선배가 되었고 신입사원들이 입사하면서 그들을 교육했다. 순차적 반복이 이루어졌다. 나이가 들어 갈수록 절룩거리는 다리는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술 때문인지 욱신거리는 증상이 오는 간극이 짧았고 나는 고통을 느끼려고 병원에도 가지 않았다. 나라고 하는 존재가 이미 없어져야 했지만 아직도 끈질기게 생명의 끈은 삶의 어딘가에서 붙어서 끊어지지 않고 있었다.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에서도, 병균이 도시를 점령해버려도 아이들은 무럭무럭 컸고 자본은 돌고 돌았다. 그것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나는 약자에게는 강했고 강자에게는 한없이 나약한 면이 시간이 지나면서 얼핏 얼핏 드러났다. 타인은 나를 욕하게 시작했고 현실은 나에게서 눈을 돌렸다. 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이러나저러나 지나가는 흐름이라 생각했다. 누군가 나를 욕하거나 타박해도 그것대로 정해져 있는 것이라 여길 뿐이었다.


 나는 타협이니 조율의 시도는 없이 보기 싫은 것에는 눈을 감았다. 조직에서는 시키는 일을 잘하는 나에게 더욱 사람들을 옥죄는 역할을 맡겼고 나는 묵묵히 그것을 해냈다. 나는 1984년에서 빅브라더의 개가 되어 감시자의 눈으로 사상검증을 해냈다. 그럴수록 나는 더욱 다리를 절었고 잠을 자다가 몇 번이고 고통으로 깨어났다. 다리가 떨어져 나가는 고통을 꿈속에서 느끼며 잠에서 깨어나면 옷은 땀에 전부 절어 있었다. 시간이 앞으로 갈수록 그녀를 따라갈 용기와 생각은 점점 희박해져 갔다. 이렇듯 저렇듯 시간은 흘러가는 것이니까. 지금과 같은 모습이 아니라면 나는 시간을 잘 견뎌낼 것인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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