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교관 Aug 03. 2022

바람이 불어오면 38

소설

38.


 죽음을 향한 강한 열망은 하늘도 잠재우지 못했다. 장례식이 있던 날 선배의 회사 사람들이 장례식을 지켜주었고 유난히 울고 있던 나이가 든 한 남성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가 살았던 자취방의 자리에는 막대한 보험금으로 새로운 원룸 형식의 건물이 신축되었다. 공교롭게도 선배가 다니던 회사에서 설계와 시공을 맡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선배와 그녀는 사람들에게 잊혀갔다. 나는 학교를 그만두었다. 더 이상 다닐 이유가 없었다. 어느 곳이든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그대로 집으로 와서 하루하루를 견뎠다. 그녀가 죽으면서 내 속의 무엇인가도 같이 빠져나가 죽고 말았다. 그 자리에 소금을 뿌린 괄태충이 기어 다니고 있었다. 나는 다리를 조금 절룩거렸지만 표가 나지 않게 해서 무사히 입대를 했다. 그해 겨울, 고참에게 맞아서 코뼈가 틀어졌고 겨울에는 똥이 묻은 화장실의 변기를 손걸레로 닦느라 손등에 작은 돌기가 올라왔고 그것들이 터져 갈라졌다. 나는 몇 번이고 해외의 전투지역의 파견 근무자로 신청을 했지만 매번 떨어졌다. 진짜 총알을 수십 알씩 버리고 싶었다. 최고참이 되었을 때 내무반에서는 내가 원하는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제니퍼 원스의 ‘페이머스 블루 레인코트’를 반복해서 들었다. 후임들은 오래되고 고리타분한 노래를 듣는다고 보이지 않게 나를 타박했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이곳은 계급사회다. 조병은 고참에게 대들 수 없다. 나는 고참이 되어서도 해외의 분쟁지역에 파견 근무자로 신청서를 냈고, 제대하는 그날까지 신청서를 냈지만 번번이 수포로 돌아갔다. 사격 기술이 좋아서 나는 늘 연대급 대회에 나가서 중대를 알리는데 큰 공을 세웠다. 그럼에도 나는 파견 근무자로 갈 수 없었다. 다리 때문이었다. 입대하고 나서 나는 조금씩 다리를 저는 모습이 눈에 띄웠다.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열심히 노력한다고 해도 안 되는 것은 안 된다는 것이다.


 제대를 했고 그대로 3년을 놀면서 보냈다. 머리가 길어서 얼굴을 덮었고 동네를 거닐다가 사복경찰에게 붙잡혀가기도 했다. 요즘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라고 했다가 그대로 연행되어 박스형 경찰차에서 한 시간 이상 심문을 당했다. 또다시 2년이라는 시간이 그대로 흘렀다. 내 사고는 어딘가에서 멎어버려 그대로 단단히 굳어있었다. 잠이 들면 어김없이 꿈을 꿨다. 으레 집안에서 미소를 지으며 불에 타는, 머리가 몸뚱이에 거꾸로 달린 그녀가 나타났다. 어떤 날은 그녀의 몸에 벌레의 날개가 달려있거나 벌레의 몸통에 그녀의 머리가 붙어있었다. 나는 강압적인 어떤 힘이 이끌려가서 그녀의 몸통을 발로 밟았다. 무참히 밟았음에도 그녀의 작은 가슴에 내 발길질을 견뎌내고 있었다. 나는 울면서 그녀를 밟다가 잠에서 깨어났다.


 나는 옷도 잘 갈아입지 않았고 며칠 만에 한 번씩 씻었다. 책도 읽지 않았고 티브이도 보지 않았다.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 걸음을 옮길 뿐 잘 걷지도 않았고 밤과 낮의 구분도 힘들었다. 먹는 것이 의미가 없다고 느꼈고 어떤 음식도 맛을 느낄 수 없었다. 당연하지만 음악도 뜨지 않았고 생각하는 것도 피하려 했다. 하지만 생각은 의지와 다르게 쓰나미처럼 밀려왔다가 쓸려갔다. 생각은 곰팡이처럼 습한 곳을 대상으로 영역을 점점 부풀려갔다. 그러다 아버지의 후배 권유로 자동차 회사의 협력업체에 취직을 했다. 헤드라이트를 만드는 회사였는데 자동차 회사의 굉장한 수출이 성사되는 바람에 그해에는 야근이나 야간을 돌아가며 생각 없이 기계적으로 일을 했다.


 몇 개월만 하다가 나와야지 했지만 어쩔 수 없이 만류하는 회사의 부장 덕분에 지금까지 회사를 다니고 있었다. 그녀가 사라지면서 내 속에도 무엇인가가 빠져나갔고 그 자리에는 아무것도 끼어들 수가 없었다. 새벽에 끝나가는 시간대에 집을 나가서 회사에 출근하여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점심시간까지 반복적인 일을 하고 점심을 한 시간 가량 먹고 잠시 해가 비치는 곳에 앉아서 멍하게 앞을 보다가 해가 떨어지는 퇴근이 올 때까지 또다시 반복적인 일을 했다. 반복되는 일이라 전날 마신 술이 덜 깬 직원 중 하나가 일전에 손가락이 잘려나가는 사고가 있었다. 회사는 점점 강압적인 분위기를 이어갔고 우리들은 ‘모던 타임스’의 찰리 채플린처럼 감시를 받으며 일과시간에는 열심히 작업에만 몰두했다. 일을 마치면 나는 직장 상사에게 끌려 회식자리에서 술을 진탕 마셨다. 누군가에게 끌려가는 것에 대한 모호한 안도감이 있었다. 닿을 곳이 없는 무엇인가를 향해서 팔을 뻗어봐야 허공에서 손짓만 허무하게 하다 끝났다. 술을 마시고 이동해서 또 술을 마셨다. 일주일에 4일 이상을 술을 마시고도 멀쩡하게 아침에 일어나서 일을 하고 또 술을 마셨다. 이렇게 술을 마시다가 시인 박인환 같은 죽음을 맞이할 것 같았다. 옆에서 동료가 버지니아 울프 담배를 피웠다. 프루스트는 자아가 군대 행렬 같다고 했다. 여러 자아가 상대방에 따라서 나타난다고 했는데 내 속의 자아는 달랑 하나였다. 대표적인 자아가 없었다.


 그녀와 함께 죽어버렸으니까.


[계속]

매거진의 이전글 바람이 불어오면 37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