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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Nov 15. 2021

우리는 왜 예쁜 손톱을 좋아하는가

물론 안 그런 사람도 있지만

네일아트가 아가씨들의 전유물에서 이제는 모든 여성들의 기호가 되었다. 어쩌면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키우면서 그동안 신경 쓰지 못한 부분에 투자를 하는 여성들이 결혼을 하지 않은 여성들에 비해 더 네일아트를 할지도 모른다. 그건 주위에 네일 샵들이 늘어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예전에는 지나가다가 쓱 들어가서 네일 손질을 받으면 되는데 이제는 예약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스템으로 바뀌었다.


결혼을 하고 다른 곳은 결혼 전에 비해 망가졌을지라도(피부나 몸매) 손톱은 손질을 받으면 받은 만큼 표가 확실하게 나기 때문에 손질을 받기 전과 후의 기분은 정말 다르다고 한다. 또 무엇보다 자기 만족도 있지만 남편이나 남자 친구도 좋아한다. 손톱이 예쁘면 남자들도 좋아한다. 더불어 아이들이나 친구들도 손톱이 예쁘다고 한 마디 한다. 그 별거 아닌 한 마디가 비록 손질한 네일이 무너질지라도 또 내일 열심히 일상을 보내는 동력원이 된다.


나이가 들면 가장 먼저 표가 나는 것 중에 하나가 손톱이다. 단백질이 빠져나가니 줄이 가거나 울퉁불퉁해진다. 네일 손질을 받으면 그렇지 않은 손톱에 비해 그걸 가릴 수도 있다. 또 손톱도 사람의 귀처럼 다 다르지만 손톱 바디가 길고 끝이 뾰족하게 모여 있는 예쁜 손톱을 가지고 있으면 어딘가에서, 누군가들에게 자신의 손을 자신 있게 드러내기도 한다. 왜냐하면 예쁘니까.


우리는 보통 손이 예쁜, 섬섬옥수라고 하는데 실은 손톱이 예쁜 손을 그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손톱이 예쁘게 보이기 위한 네일 손질이 근래에 나타난 건 아니다. 세기의 디바 바바라 스트라이샌드도 손톱에 신경을 아주 많이 쓰는 스타로 알려져 있다. 그녀의 손톱은 늘 정갈하고 길쭉하고 튀는 색의 매니큐어로 되어 있다. 그래서 어쩌면 바바라의 얼굴보다는 손으로 먼저 시선이 갈 수도 있다. 바바라 스트라이샌드는 40년대 생으로 할머니지만 손톱은 지금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도 비슷하다. 66년 1월 1일에 개봉한 아주 재미있는 ‘말띠 신부’라는 영화가 있다. 42년 생의 말띠 동창생들의 이야기다. 엄앵란, 최지희, 남미리, 방성자의 이야기를 코믹하게 그리고 있는데 세련됐고 지금 봐도 재미있다. 영화 속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밴드 키보이스가 나오며 영화 속에서 밴드와 어우러져 뮤지컬처럼 춤과 노래를 한다.


영화 속 최지희는 독보적이다. 사람들과 춤을 추는 장면은 정말 뮤지컬 영화를 보는 것 같다. 이 장면은 왜 그런지 수많은 리메이크 장면을 탄생시킨 존 트라볼타의 토요일 밤의 열기를 떠올리게 한다. 말띠 신부가 66년이고 토요일 밤의 열기가 77년이니 얼마나 앞선 것인가.

이 66년의 영화 속 여주인공들의 손톱은 지금의 네일 손질을 한 것과 거의 차이가 없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아마도 그 오래전부터 손톱이 예쁜 것에 집착 아닌 집착을 했을지도 모른다. 미에 대한 동경은 괴테의 시절에도 예뻐 보이기 위해, 피부가 하얗게 보이기 위해 일부러 피를 빼기도 했을 정도이니 더 거슬러 올라가면 클레오파트라까지 간다.


이렇게 예쁜, 길쭉하고 붉은 매니큐어를 칠한 손톱에 집착한 사람은 마광수 교수였다. 마광수 교수는 평생 윤동주를 연구하다 ‘즐거운 사라’를 펴내면서 사회에 폭풍과도 같은 파란을 일으켰다. 오죽했으면 즐거운 사라는 판매금지를 받고 정부 산하기간에 끌려가기도 했다. 풍속을 어지럽힌다는 이유에서였다. 얼마나 한국이라는 사회가 무지했던가. 마광수 교수는 사라의 손톱에 집착을 했다. 사라는 예쁘고 길쭉한 손톱 바디를 가지고 있으며 늘 매니큐어를 발랐다. 미대생인 사라는 다른 여학생들과는 달랐다. 한지섭 교수의 강의 도중에도 담배를 피우기도 한다. 온 가족이 미국으로 가서 사라는 몹시 자유롭다. 그 자유를 마음껏 누린다. 그 자유에는 예쁜 손톱, 즉 섹시한 손톱은 큰 한몫을 한다. 마광수 교수 자신도 붉은색의 매니큐어를 바른 길쭉한 손톱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소설을 보면 발에 엄청나게 집착한 묘사가 많이 나온다. 예쁜 발을 보면 참을 수 없었다고 다니자키 준이치로 자신이 밝혔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소설에는 발에 대한 집착이 잘 나타난다. 작고 예쁜 발과 발톱이 예쁘면 한없이 무너지는 것이다. 그리고 양말에 그 예쁜 모습은 늘 감추고 있으니 자신밖에 볼 수 없다는 알 수 없는, 악마적인 안도감과 성취감으로 발을, 발가락을 열심히도 탐미한다.


'미친 사랑'을 읽어보면 불편하고 자극적인데 격렬한 문학과는 별개로 인간적인 면모가 가득하다. 나오미의 바람기와 방자함은 그저 그녀가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남자에게 내 보일 때 발이 드러난다. 그 결점을 없애버리면 조지의 것이 되지만 결점이 사라지면 나오미의 가치도 사라져 버린다. 조지는 나오미를 향한 일방적인 미친 사랑에 빠져들어 점점 수몰되어간다.


준이치로의 ‘만’을 읽어보면, 이렇게 예쁜 몸매를 하고 있으니 차라리 죽여 버리고 싶어,라고 하고 죽여줘, 죽여줘. 차라리 당신 손에 죽고 싶다고 한다. 여배우의 나체를 떠올리며 글을 쓰는 준이치로는 발에 집착을 한다. 예쁜 발, 파멸하는 사랑에 빠져서는 안 되는 육체의 한 부분이 성적으로 드러나는 가슴이나 성기가 아닌 누구도 가지지 못한 예쁘고 섹시한 발인 것이다. 다니자키 준이치로가 1880년대 사람이니까 이렇게 너저분하고 악마적이지만 인간의 본능에 몰입하는 소설을 써서 사람들의 술렁거림이 있었을 것이다.


지금은 아무렇지 않은 불륜, 미친 사랑, 자살이 예전에는 금기시되었다. 아니 요즘도 금기시되고 있다. 우리나라 56년도 영화 ‘자유부인’을 봐도 파격적이다. 금기라는 건 그만큼 해서는 안 되기 때문에 하고 나면 강력하고 파괴적이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동경하는 것이 '금기'일지도 모른다. 그 금기 속에는 예쁘고 섹시한 손톱이 있었을 것이다.


여자들도 남자들의 예쁜 손, 손톱을 좋아한다. 한때 소지섭의 길쭉하고 잘빠진 손톱에 여성들이 열광을 했다. 성시경의 요리하는 길쭉한 손가락에 또 눈을 떼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기묘하지만 손가락이 짧은데 손톱 바디가 길거나 손톱 바디가 긴데 손가락이 짧고 굵은 경우는 잘 없다. 소지섭의 예쁜 손은 이렇게 짤로 돌아다닌다.


실사만 그런 게 아니라 만화에서도 예쁜 손톱은 드러난다. 드레곤 길들이기 홈 커밍에서도 예쁘게 손톱을 표현했다.



우리는 왜 예쁜 손톱에 빠지고 좋아할까. 그건 정말 본능에 가깝지 않을까. 누군가를 불러 놓고, 아니면 여럿 모아 놓고 왜 그런가에 대해서 질문을 하면 사람들은 대답을 할 것이지만 이런 본능에 가까운 집착을 말로 풀어서 설명을 하기는 애매하다. 그저 예쁜 것이다. 예쁜 것에는 남자 여자가 따로 없다. 예쁜 것을 보고 끌리는 건 나이와도 무관하다. 그리고 동물들, 새들도 그렇다. 공작새를 보라. 암컷을 꼬시기 위해 엄청난 컬러를 뿜어내며 날개를 얼마나 뽐내는지.


예쁜 것에는 대체가 없다. 베토벤을 살아생전 동경하던 슈베르트는 32살인가, 아주 젊은 나이에 죽었다. 그는 한 번이라도 베토벤을 만나고 싶었지만 베토벤은 만나주지 않았다. 더불어 좋아하는 여자에게도 다가가지 못했다. 배는 나오고 150 정도의 키에 머리통이 커서 사랑하는 여성도 슈베르트를 만나주지 않았다. 사창가를 돌다 그만 성병에 걸려 못다 핀 꽃 한 송이가 되었다. 천재적인 능력도 예쁜 외모를 이기지 못한다. 베토벤은 슈베르트가 작곡한 악보를 보고 왜 만나주지 못했을까 후회를 했다. 사후 후세들이 그 둘의 무덤을 나란히 둬서 조금이라도 슈베르트를 기리고 있다.


예쁜 건 빨리 질리지만 아름다운 건 쉽게 질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본능은 예쁜 걸 찾는다. 예쁜 걸 보면 집착을 하기도 한다. 인간의 미질이 행복을 가져다 주지만 미질 때문에 불행해지기도 한다. 그게 인생이고 인간이다.



오늘의 선곡은 그래서 할머니가 되어서도 예쁜 손톱을 가지고 있는 바바라 스트라이샌드의 워먼 인 러브 https://youtu.be/aHKtYFApKX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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