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 이야기는 아니다
이 글은 재미있는 내용의 이야기가 아님을 미리 밝힙니다.
이맘때가 되면 공터에 다닥다닥 붙은 집들의 마당에서는 어머니들이 모여 김장에 열을 올렸다. 마당이 있고 여러 집이 모여 살다 보면 김장을 하면 대체로 같이 해서 노나 먹거나, 따로 김장을 하더라도 옆집에 나눠 주었다.
김치는 이탈리아로 치면 파스타와 흡사하다. 파스타는 파스타 굵기, 모양, 들어가는 집집마다의 재료, 시간 등, 이런 요건 때문에 가정마다 맛이 다 다르다. 우리가 머릿속에 나열하는 파스타 종류는 아주, 너무나, 지극히 일부다. 우리가 먹는 김치도 그렇다. 김치는 정말 집집마다 맛이 다 다르다. 그러니 어디 외국에 나가서 몇 년 살면서 먹어본 그 나라 음식을 다 안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살면서도 김치의 종류도 맛도 다 보지 않고 소멸하는 게 인간인데. 김치가 집집마다 맛이 다르다는 건 정말 신기한 일이다. 또 같은 집에서 담근 김치라도 일주일, 한 달, 여섯 달 묵혀 둔 기간에 따라 또 맛이 다르다. 너무 신기하지 않을 수 없다.
김장을 하면 이렇게 돼지고기를 삶아 김치에 싸서 먹는 맛 또한 김장의 묘미다. 어린이 때에는 김치가 맛있는지, 삶은 고기가 맛있는지, 김치에 싸서 먹는 고기의 맛이 어떤지 사실 모른다. 그냥 우르르 그 분위기가 좋다. 마당 한 편에서 놀면서 새 새끼처럼 어머니들이 김치에 고기를 싸서 입에 넣어주면 낼름 낼름 받아먹는 재미가 있었다.
내가 어린이였고, 달동네라 불리는 동네에 살았고, 그 동네는 마당이 있는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고, 마당에서 여럿이 모여 김장을 할 때 큰 빨간 고무통에 김치를 담아서 양념을 버무리고 속을 채웠다. 이 빨간 고무통은 일종의 김장 공정에 빠져서는 안 되는 김장도구였다.
이 빨간 고무통이라는 건 만능이었다. 여름에는 물을 받아 물놀이도 했고, 김장을 담글 때에는 김치를 재우고, 씻고, 버무리고. 하지만 그 당시에는 이 빨간 고무통을 그렇게 사용하면 안 된다는 걸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무지했던 것이다. 열심히 일주일 동안 석탄을 캐느라 먼지 때문에 목이 칼칼한 서민들이여, 삼겹살을 구워 먹어라, 그러면 고기 기름이 먼지를 싹 내려줄 것이다. 우리네 아버지, 어머니들은 그 말을 철썩 같이 믿고 주말이 되면 집집마다 삼겹살을 구워댔다. 석탄의 먼지는 코로 들어가 폐로 가고, 고기는 입으로 들어가 위장으로 가는 것임을. 우리는 그 뻔한 이치를 모르거나 망각한 채 삼겹살의 기름이 몸속의 먼지를 씻겨 줄거라 믿었다.
더 거슬러 올라가 보자.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한국군이 돌아와서 고엽제 후유증으로 시달리고 있다. 이는 성석제 소설 ‘투명인간’에 잘 나와 있다. 미군이 던져준 고엽제가 소독이 잘 된다며 머리에 뿌리고 얼굴에 크림처럼 발랐다. 이렇게 하면 베트남에 널려 있는 병균이 죽겠지. 이 철석같은 믿음은 후에 사람을 이유 없이 병균처럼 사망케 했다. 가끔 살균제의 겉면에 살균 100%라고 적혀 있으면 균을 100%로 죽인다는 말인데 그것이 인간에게도 좋을 리는 없다. 우리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살아가지만 종이가 들어갈 그 좁은 틈으로 무지는 들어와서 우리의 삶을 조금씩 망가트린다.
십여 년 전에 친구의 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셨다. 폐암 말기였다. 가족력도 없고, 주위에 담배를 피우는 사람도 없고, 뭔가를 태우는 곳 근처에 살지도 않았다. 느닷없는 죽음이었다. 폐가 암으로 공격받아 검게 점령당하려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할 텐데. 생각할 수 있는 합리적인 의심은 김장을 담글 때 등장하는 빨간 고무통이었다. 긴 세월 동안 어머니는 빨간 고무통에 김치를 재워놓고 양념을 무치고, 물김치도, 동치미도, 음식의 대량화는 전부 빨간 고무통을 사용했다. 뜨거운 양념도 거기서 버무리고. 그 시간이 몇십 년이었다.
이 영상은 KBS 다큐 3일이며 불과 일 년 전, 2020년에 방송된 영상이다. 전통시장 5일장에서의 순대국밥의 3일을 다루고 있다. 거두절미하고 뜨거운 순대를 삶아서 속을 버무리는 작업을 빨간 고무통, 이 붉은 고무대야에서 하고 있다. 이 빨간 고무통은 지구 상에서 가장 안 좋은, 암을 유발하는 성분이 들어있어서 식품을 담거나, 담그거나 하는 용도로 사용하지 못하게 식품 관련 정부 산하기관에서 관리하는 것으로 안다.
그런데 방송에서 이렇게도 버젓이 여봐란듯이 보여줄 일일까. 1: 43초 부분부터 보면 이 빨간 고무통에서 뜨거운 순대 속 양념을 버무리고 있다. 이런 건 옳지 않다. 화면에 나오는 저분들을 나무라기는 싫다. 이런 교양 프로그램 만드는 방송국을 비판하고 싶다. 일하는 사람들이 몇 명인데 이런 걸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다는 것은 비판받아야 한다. 골목식당만 보더라도 뜨거운 음식을 담거나 씻을 때 플라스틱 용기를 사용하면 백종원이 출격해서 식당 주인을 나무란다. 이 방송이 80년대나 90년대의 방송이 아니다. 작년 방송이라는 것이 놀라운 일이다. 빨간 고무통에서 뜨거운 순대 양념을 비비며 음식의 철학을 논한다는 건 어떻게 봐도 이상하다.
빨간 양념의 김치를 대동해서 붉은 대야의 습격이 반 세기 동안 한국을 덮쳤다. 여기에 신파를 붙이면 빈익빈 부익부가 된다. 부자들은 이 죽일 놈의 빨간 고무통을 사용하지 않는다. 이제 시간이 흘러 2021년이 되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들, 우리가 올바름이라고, 진리라고 믿었던 것들은 2021년을 계기로 해서 한 번씩 리셋을 해주는 것도 좋다.
그간 수분 부족으로 인해 해갈하는 방법은 물이었다. 수분 부족으로 인해 눈이 건조해지고 손이 건조해져서 물을 많이도 마셨다. 하지만 물을 많이 마신다고 해서 눈이 덜 건조해지고 손이 촉촉해지지는 않는다고 한다. 눈에는 인공눈물을 넣고, 손에는 핸드크림을 바르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한다. 그리고 정재훈 약사의 말로는 외국에서 실험을 했는데 같은 양의 물과 탄산음료를 성인 몇 명에게 주기적으로 마시게 한 다음 수분 흡수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놀라운 결과가 근래에 공개되었다. 궁금하면 한 번 찾아보기 바람.
편의점 음식을 자주 사 먹으면 사람들은 어떻든 걱정을 한다. 넓게 보면 편의점 음식이 세상에 도래한 후, 인스턴트식품이 인간 세상에 나온 이후 인간의 수명은 늘어났다.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문제는 어쩌면 편의점 음식이 패스트푸드라서 좋지 않다는 생각에 접근을 할 필요가 있다. 라면을 많이 먹어서 몸에 좋지 않은 영향과 유명한 식당에서 유통기한이 지난 식재료를 사용해서 식중독에 걸려서 믿음에 대해서 공격받는 영향에 대해서 한 번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 이면에는 내가 지금까지 진리라고 믿었던 것에 금이 가면 빨리 환기하고 새로운 진리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세상에 영원한 건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알고 시간이 좀 지나 내가 철석같이 믿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 리셋을 해야 한다. 만약 그것이 되지 않으면 내가 믿는 진리가 깨지면 나 자신까지 깨지게 된다. 같이 무너지는 경우가 많다. 이 죽일 놈의 빨간 고무통은 음식과 분리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한다.
그래서 오늘의 선곡은 라디오헤드의 데이 드리밍이다. https://youtu.be/TTAU7lLDZYU
우리가 보는 세상이 이렇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