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 이야기
이 구도에서 동네를 담으면 마치 한국의 어촌이 아니라 꼭 일본의 영화 속에 등장하는 풍경처럼 보인다. 나는 아파트에 살지만 밑으로 조금만 영차영차 달려오면 바닷가가 나온다. 매일매일 바닷가에서 바다를 볼 수 있다는 건 매일 변하는 바다의 흐름을 볼 수 있어서 어쩌다가 보는 바다보다는 훨씬 ‘재미’ 있다.
저기로 가면 바닷가인데 해안이 타원형으로 대략 500미터 정도의 작은 백사장이 있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우리나라에 해안을 따라 있는 수많은 해수욕장이 있지만, 뭐랄까 국가의 등록? 아니면 인정? 받은 해수욕장이 따로 있는 것으로 안다. 그래서 등록이 되어 있는 해수욕장은 시즌에 돌입하면 국가에서 고운 백사장을 깔아주고 정비를 해주는 것으로 안다. 해운대도 시즌에 돌입하기 전에 엄청난 규모의 모래가 백사장에 깔린다.
여기도 6월부터는 아주 분주하다. 아, 오늘부터 좀 덥군, 하며 땀이 흐르는 어느 날 포클레인이 여러 대 등장하여 논을 갈듯 해안을 갈아엎고 모래를 깔고 다지고, 소나무와 야자수를 정돈하고 해안을 깨끗하게 정리를 하기 시작한다. 여러 개의 공영주차장 중에 한 곳의 공영주차장이나 텐트를 펼치는 곳은 무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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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해안을 따라 가다 중간 쯤 해안에서 그 앞의 퍼브와 카페까지 10미터도 안 된다. 그래서 여름이면 해안에서 덱체어를 깔고 맥주를 마시다가 수영복을 입은 채로 카페로 들락날락한다. 바닷가이니 당연하게도 이상하게 보이지 않는다. 수영복을 입은 채로 편의점에 들어가고 앉아서 라면을 먹고 카페에서 음료를 마시는 것이 여름의 해변에서는 당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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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에서는 10년 전부터 해안의 주택과 해안 거리를 정비에 들어갔다. 제주도처럼 거대한 야자수를 계획하며 야심 차게 스무 종의 야자수와 소철을 심었지만 10년 동안 제대로 자라지 못했다. 뿌리를 박고 제주도만큼 무럭무럭 자라지 못한 것이다. 해안에 가득하던 소나무를 뽑고 야자수를 심었다가 자라지 못하는 여러 종의 야자수를 빼고 다시 소나무를 심었다. 그러기를 몇 년이 흘렀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영화 속 외국의 해변은 보기 좋긴 하다. 시원한 차림의 사람들과 바다가 보이는 퍼브에 앉아서 피나콜라다 같은 걸 마시며 석양을 보고 지는 해가 야자수에 가려져 있는 모습들. 하지만 꼭 그런 모습을 따라 해야만 할까. 소나무를 흔히 볼 수 있어서 별로라고 생각하겠지만 소나무도 종류가 많고 소나무도 소나무 나름의 멋을 가지고 있어서 여기 해안가에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그런 소나무를 전부 흰머리 뽑듯 뽑아서 거기에 야자수를 심어 10년이 지나는 동안 야자수는 야자수대로 상처를 받았다.
거대 제조회사 때문에 외국인과 그들의 가족이 살고 있어서 여름이면 외국인들이 아주 많이 해변에 나온다. 그들은 대체로 5월 말부터 훌렁훌렁 벗고 해안에서 일광욕을 즐긴다. 그들은 몸매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남에게 어떻게 보이는지 따지지 않는다. 늘어진 뱃살은 늘어진 대로 드러내고 아이구 오늘 햇살이 참 좋구만. 하며 누워서 책을 읽거나 맥주를 마신다.
저녁이면 퍼브에 모여들어 사부작사부작 이야기를 하며 맥주를 홀짝인다. 모두가 이때만큼은 즐겁고 행복하다. 이상하지만 영국인들이 많이 오는데 그런 날에는 우리도 술이 되어서 오아시스를 크게 튼다. 그리고 테이블에서 ‘스탠 바이 미’를 크게 부르면 도미노가 되어 모두가 스탠 바이 미를 부른다.
야, 너 이 노래 어떻게 알아?
야, 아마 내가 너 보다 너의 나라 노래에 대해서 더 많이 알걸.
하며 우리와 영국 사람들이 또 한데 뭉쳐서 비틀스 이후 블러, 스웨이드, 버브 따위를 주절주절 이야기한다. 불과 몇 년 전인데 매일 축제 같은 일들이 여름에는 펼쳐졌다. 지금은 제조업이 기울면서 그 많던 외국 기술자들이 자기네 나라로 돌아갔고 코로나가 덮치면서 이런 분위기는 전부 소멸했다.
바닷가를 도는데 선거철이라 그런지 여기저기서 대통령 후보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상반된 사람들이 이쪽저쪽에서, 그래 어디 두고 보자 식으로 대치를 한다. 이전에도 선거가 있었지만 이번처럼 세대별로, 나이대로, 성별로 양극으로 갈라지는 경우는 드물었다. 각자 진영에서 자주 듣는 말이 ‘정의는 반드시 이긴다’이다. 요즘에 이 말처럼 듣기가 별로인 말이 있을까 싶다. 정의는 이기는 게 맞다. 그러려면 정의는 이긴다고 말하는 쪽? 단체? 조직이 정의로워야 한다. 이렇게 말을 하는 단체는 그 반대에 있는 단체는 정의롭지 않다고 정의해버린다.
내가 옳다고 확신하는 것들이 타인에게는 잘못된 것일 수 있고, 내가 좋다는 하는 것을 타인은 싫어할 수 있고, 내가 하는 말로 인해 타인이 피해를 볼 수 있는데 근래에 ‘정의는 이긴다’고 말하는 쪽은 전혀 그런 분위기는 없다. 나와 다르면 안 좋은 것, 나쁜 것으로 간주하고 우리가 정의니까 우리가 이긴다, 라는 식이다. 모두가 말 끝에는 정의가 이긴다는 말로 마무를 해버린다.
‘정의는 반드시 이긴다’ 이 말은, 내가 아주 싫어하는 말 ‘우리 모두의 책임입니다’와 같다.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는 말은 사실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시간이 흐르면 ‘우리’라고 하는 교집합 속의 개개인은 자꾸 바뀌며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이 밀려 나갔기에 새로 들어온 책임자는 당연하게도 그 책임을 이전 책임자에게 떠 맡기고, 떠난 책임자는 지금 책임자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다 보면 시간이 흐르고 사람들은 결국 책임을 지는 사람의 합당한 사과나 처우를 받지 못한 채 그대로 흘러가 버린다.
정의는 이긴다는 말이 요즘처럼 모호하고 불분명하게 들리는 것이 착각이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얼버무리는 말로 끝을 맺으면 그들을 응원하는 사람들, 구독자들, 팬들이 그 말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집결한다. 모호한 끝맺음은 그런 힘을 지니고 있다. 정의는 이긴다고 하는 말에, 그 정의가 우리가 알고 있는 정의인지는 의문이 든다.
사실 내가 바라는 대통령, 정당이 집권당이 되지 않는 편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왜냐하면 집권 5년 동안 꽃밭에 호황기를 누릴 수는 없다. 지금까지 늘 그래 왔다. 어느 나라던, 어느 정당이든, 누가 대통령이 되었던 늘 그랬다. 내가 바라지 않는 후보가 대통령이 되고, 야당이 되어야 집권을 잘 못 했을 때 욕이라도 실컷 할 수 있는 빌미가 된다. 자신이 원하는 정당이 집권당이 되었는데 제대로 못했을 때 반대쪽만큼 욕을 시원하게 할 수 있냐는 것이다. 무너지면 같이 무너지게 된다. 정치는 마약과 같아서 내가 믿는 정치인과 정당이 잘못되어서 무너지면 다른 정치인을 응원하면 되는데 대부분 그 정치인을 따라 같이 무너진다. 사람들은 내가 바라던 후보가 대통령이 되고 여당이 되었을 때 축배를 들었던 것을 기억한다. 그렇기에 내가 바라는, 편드는 당이 집권당이 되어서 정책의 구멍이 나서 내가 불이익을 당해도 쉽게 욕을 하지 못한다.
그럴 바에는 내가 바라지 않는 쪽이 대통령이 되고 집권당이 되었을 때 나와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과 함께 실컷 욕이라도 하고, 요즘은 그것으로 구독자가 모여들어 수익도 올릴 수 있다. 일반인들 대신에 욕을 실컷 해주니까 구독자들이 우르르 몰리게 된다. 반사이익 같은 것을 얻을 수 있다. 어쩌면 같은 교집합 속에서도 정권이 바뀌지 않는 것을 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래야 계속 욕을 하고 수익의 달콤한 맛을 계속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교집합 속의 사람들이 서로 물어뜯고 이렇게나 깔아뭉개고 있는 현실이 요즘이다. 질 좋은 대결구도를 보는 건 어쩐지 먼 세계의 일처럼 느껴진다.
정의는 반드시 이긴다, 라는 말은 참 허울 좋은 말이다. 정의는 이긴다고 말할 때 그 정의가 정말 정의인지 사람들에게 확인을 시킨 다음에 그런 말을 해줬으면 좋겠다. 그것이 안 된다면 사람 이름을 ‘정의’라고 지어라. 그리고 격투기나 권투 같은 운동을 열심히 해서 링 위해서 맞붙어 이겨라. 그러면 정의는 이긴다가 된다.
바닷가를 돌고 나서 영차영차 열심히 달리면 현대 백화점이 나오는데 그 주위가 전부 호숫가다. 아마 우리나라 백화점 중에 월요일에 쉬고 노조가 있는 백화점은 여기 현대 백화점만 그런 걸로 알고 있다. 소문에는 백화점을 증축(인지 신축인지 모르겠다. 원래 오래전부터 있던 현대백화점 자리에 허물고 새로운 현대 백화점을 지었다)할 때 다른 지역의 거대한 백화점처럼 짓지 말고 그 주위의 조경에 신경을 쓰자,라고 해서 6층? 7층 정도로 짓고 그 일대가 이렇게 호수다. 그래서 볕이 좋은 날에는 여기 벤치에 앉아서 책을 읽기가 너무 좋다. 근처에서 칼스버그를 사 와서 홀짝이며 소설을 읽는 그 맛이 있다. 하지만 역시 코로나 이후에는 모든 것이 멈췄다.
밑으로는 예전의 바닷가 사진들
그래서 오늘의 선곡은 우리가 술이 되면 퍼브에서 떼창을 했던 오아시스의 스탠 바이 미 https://youtu.be/-4JMohMFjrc
아 너무 좋아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