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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Jul 14. 2022

바람이 불어오면 18

소설

18.


 제일 사랑하는 사람 -

 만약 이 사랑이 영원하길 원하신다면

 날 위한 사랑 변치 말고

 이번 생엔 나와의 꿈만 꿔 주세요

 난 평생 당신의 사랑만 있으면 되니까요

 당신과 함께 팔짱을 끼고 손을 잡고서

 당신이 다시는 팔을 빼지 않길 기도하니

 너무 따뜻하고 고운 이 손에

 끝없는 사랑이 스며들고 있답니다

 만약 이 사랑이 영원하길 원하신다면

 날 위한 사랑 변치 말고

 이번 생엔 나와의 꿈만 꿔 주세요


 노래가 울려 퍼지자 그녀의 눈에서는 구멍이 더 크게 뚫렸는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나는 김 씨 아저씨에게 노래를 꺼달라고 하려는데 그녀가 내 손을 꼭 잡고 있어서 나는 가만히 있었다. 노래는 그녀의 마음을 알고 있다는 듯, 또는 나의 마음을 읽어 내려고 했다. 나는 말없이 소주만 마셨고 그녀는 말없이 눈물만 흘렸다. ‘숲’에서의 시간은 우리를 그곳에 영원히 머무르게 할 것 같았지만 어김없이 피어나는 아카시아의 생명처럼 ‘숲’은 영업을 마감하는 시간이 다 되어 갔다. 술을 너무 마신 나는 자취방으로 어떻게 왔는지 몰랐다. 어렴풋하게나마 나는 그녀에게 키스를 하려고 했던 것 같았다.


 기말고사 끝이 나고, 시험이라는 것이 끝남과 동시에 겨울이 모질게 찾아왔다. 야상과 비슷한 겨울옷이 한 벌 자취방의 작은 옷장에 구겨져 있어서 나는 난방이 잘 되지 않는 방 안에서 그것을 껴입고 잠이 들거나, 침대에 누워서 책을 보거나 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기형도의 ‘소리의 뼈’를 읽었다. 그 교수가 기형도 자신이 아니었을까. 읽고 나니 침묵의 힘이 느껴졌다.


 그 묵직함의 무게감.


 하지만 침묵하는 건 거짓말처럼 세상에서 하지 말아야 할 가장 나쁜 짓인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나는 더 우울했다. 숨을 쉴 때마다 입에서 입김이 나왔다. 나는 시험도 모두 끝나고 학교의 일정이 전혀 남아 있지 않았음에도 고향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있었다. 이유는 그녀 때문이었다. 그녀가 아직 남아 있어서 나는 그녀를 두고 고향집으로 갈 수는 없었다. 수업은 없었지만 낮과 오후에는 강의실 창가에 앉아서 책을 읽거나 볕을 쬐며 엎드려 잠이 들었다. 배가 고프면 구내식당에서 국수를 한 그릇 사 먹었다. 학생들이 빠져나간 학교에서 다른 메뉴는 만들지 않았다. 선택의 폭이 없었다. 오로지 국수밖에 팔지 않았다. 식당에서 파는 국수는 컵라면 값과 비슷했지만 양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오백 원을 더 주면 곱빼기라서 그 양은 엄청났다. 맛이라는 건 먼 나라의 이야기였지만 내 입맛에는 괜찮았다. 그저 허기를 때우는 역할을 하는 정도의 국수였지만 나에게는 일종의 안온 감을 채워주는 역할을 했다. 구내식당에는 술을 팔지 않는다. 보온병에 소주를 부어서 들고 가서 국수와 함께 천천히 그것을 마셨다. 먹고 나오면 배도 부르고 조금 달라 보이는 학교 풍경이 좋았다.


 기말고사가 전부 끝나는 날이 오면 학교 식당은 음식을 만들어내지 않았다. 식당의 매점도 늘 오픈하지 않고 산발적으로 장사를 하게 된다. 하지만 국수가 없더라도 컵라면을 먹으면 된다. 식당에는 단무지가 있는데 컵라면은 김치보다 단무지에 먹는 게 더 맛있었다. 컵라면은 양은 국수에 비할바가 못되었지만 물을 많이 부어서 국물을 후루룩 마시면 허기가 해갈되었다. 책을 읽다가, 앉아 있다가 지겨워지면 어슬렁어슬렁 학교 안을 거닐다가 의상과가 있는 건물로 걸었다. 혹시 그녀를 볼 수 있을까 하며 기웃기웃거리곤 했다. 그녀와 마주치는 일은 없었다. 그녀는 분명 재봉실 안에서, 재봉틀 앞에서 또 다른 자신을 만들어 놓고 열심히 박음질을 연습하고 있을 것이다. 만약 그녀가 재봉실에서 나와서 내 눈에 띈다고 하더라도 나는 멀리서 그녀를 보고는 그냥 와버렸을 것이다. 눈이 마주친다면 고개만 까닥하며 인사 정도를 할 것이다. 비록 그 정도의 마주침이라도 나는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


 여전히 자취촌의 자취생들은 뿔뿔이 흩어지기 전까지 나는 선배에게 두들겨 끌려가서 밥을 먹었고 우리들은 비틀어진 분위기 속에서 이야기를 했고 밥을 먹고 맥주를 마셨다. 어느 날인가 “나 이제부터 교회를 다니기로 했어. 그러니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우리 손잡고 기도나 한 번 하고 밥을 먹을까”라고 선배가 말을 했고 그녀와 선배의 손을 한쪽씩 잡고 눈을 감고 기도를 하는 것 같은 모습으로 잠시 있었다. 선배는 정말 기독교인 양 큰 소리로 여러 가지 기도문을 넣어서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셔서 고맙다고 기도를 했다. 나는 양쪽으로 선배와 그녀의 손을 잡고 있었는데 밖의 추운 날씨와 상반된 선배 방의 따뜻함과 그녀의 손을 잡고 눈을 감고 기도를 하는 것 같은 모습으로 잠시 있었다. 선배는 정말 기독교인 양 큰 소리로 여러 가지 기도문을 넣어서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셔서 고맙다고 기도를 했다. 나는 양쪽으로 선배와 그녀의 손을 잡고 있었는데 밖의 추운 날씨와 상반된 선배 방의 따뜻함과 그녀의 손을 잡는 순간 내 자취방에서 느낀 그녀의 채취와 감촉들. 그리고 그녀의 애인인 선배와 건너편에 있는 또 다른 사람과의 미묘한 관계가 대용량 시험지처럼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나의 손바닥에서는 그런 내 생각을 표출하려는 듯 땀이 나기 시작했다. 그녀의 손은 여전히 작고 아담했으며 슬픈 세계가 숨어있었다.


 선배의 손을, 내가 이렇게 남자의 손을 잡고 있어 보기는 처음이었다. 남자의 손을 잡은 것은 이런 느낌이구나. 이렇게 강인하고 내 손이 선배의 손안에 몽땅 들어가는 느낌.


 손바닥의 거친 면이 전해주는 남자다움이 내 손을 잡고 살짝 눌렀다. 선배는 힘을 풀었다가 또 눌렀다가 다시 힘을 풀었다. 그것이 끝나면 쓰다듬었다가, 손가락이 지렁이처럼 움직였다. ‘숲’에서 그녀가 했던 이야기를 애써 외면해왔지만 선배의 손을 잡고 있는 순간은 그녀의 말이 유독 머릿속에서 나를 괴롭혔다.


 괴롭히는 것은 이념적 사고방식 같은 것이다.


 그 이념에 다가갈 수 없는 나의 마음에 대한 것들.


 전쟁이 일어나면 받는 피해 중에 총이나 대포에 맞아서 죽거나 다치는 사람들은 전시에 불어 닥친 전염병이나 군인들의 강인한 힘에 의한 강간이나 도살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는 것에 비한다면 미미한 부분이다. 전쟁은 곡해와 왜곡이 가득하다. 군인들에게 강제로 끌려가서 가랑이를 벌려야 했던 여자들은 살아남아서 이후에 제대로 된 사랑을 할 수 있을까. 밝은 해를 보며 햇살을 느낄 수 있었을까. 그런 피해는 누가 보상을 해주는 것일까. 이념이라는 것은 시간을 흘러가게 만들지만 피해자들은 지나간 시간 속에서 갇혀 지내고 있다. 누구도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없다. 선배가 왜 내손을 주무르는데 다른 이념에서 오는 간극의 괴리가 나를 괴롭히는 것일까. 어째서 그럴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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