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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Jul 29. 2022

바람이 불어오면 33

소설


33.


 “신발에 밟혀서 내장이 터지고 날개가 바들거리는 벌레는 빨리 죽고 싶었을까. 용서를 해주는 것이 인간에게 가능한 일일까. 우리는 말로는 용서해줄게.라고 하지만 그것으로 정말 용서가 되는 걸까. 용서는 인간의 영역을 넘어가는 관념이 아닐까. 우리는 많은 착각을 하고 그 착각이 완벽하다고 느끼며 살고 있는 것 같아. 이런저런 여러 생각이 싫어서 ‘정의’를 하지만 세상에 정의라는 게 있을까. 고통을 느끼면서도 더 살아있기를 바라지는 않을까. 그러지 않았을까. 벌레는 인간과 다를까?”


 그녀는 조용히 읊조리듯 말했다. 그녀는 분명 무엇인가 버리려는 것이다.


 “글쎄요, 벌레가 안 되어 봐서 모르겠지만 고통이 심하면 벗어나고 싶어 하는 것이 상식이지 않을까요. 상식선에서 생각을 하면 세상은 고르게 돌아가니까요.”


 역시 그녀의 대답을 들을 수는 없었다.


 “그저 조용하게 흘러갈 뿐이야. 조용하게.”


 우리는 천천히 사진 전시를 다 에둘러 봤다. 나는 사진은 거의 보지 않았다. 사진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사진은 사진이었고 나는 나였을 뿐이다. 그리고 내 시선과 신경을 온통 그녀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이렇게 같이 있어도 멀리 있는 그녀에게 나는 생각으로 애무를 하고 있었다. 그녀의 혀를 애무하고 가슴을 애무하고 가랑이를 애무했다. 그렇지만 그녀는 무감각인 채로 애무를 받아들일 뿐이었다. 작고 부드러운 그녀의 손을 잡고 싶었다. 그녀의 피부를 ‘살’로 만들고 싶었다. 살갗이라 부르고 살결의 냄새를 마음껏 맡고 싶었다. 목 언저리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그곳에는 부재라는 관념이 오롯이 존재하고 있었다.


 출구 쪽에 걸려있는 마지막 사진 속의 인물들은 마을에서 오랫동안 살다가 지금은 죽고 없는 노인들이라고 적혀 있었다. 노인들은 사진 속에서 살아 있었다. 달팽이가 기어가듯 엎드려서 기도를 하는 모습도 있었고, 마을을 거니는 모습도 있었다. 사진 속의 노인들 하나하나가 마을의 문명을 만들어왔다. 어느 무명 소설가의 ‘파티가 열려야 하는 마을’이라는 단편 소설이 떠올랐다. 노인들의 모습에서 행복보다는 덜 불행하다는 모습이 많았다.


 노인들의 이런 모습들을 굳이 촬영해야 했을까. 사진을 찍을 당시에는 꽤나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을까.


 나는 슈퍼 주인 할아버지의 말을 되새겼다. 그리스인 조르바는 사람들에게 책을 통해서 말했다. 뭘 그렇게 심각해? 뭘 그리 재는 거야? 뭐가 그렇게 어렵지? 지나가는 거야, 사람의 인생이란 그런 거야.


 우리는 마을회관을 나왔다. 나도 서서히 허기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그녀는 배가 많이 고플 텐데. 아니면 전혀 고프지 않거나. 지금 배가 고프지 않으면 저녁이 되어도, 내일이 되어도 배고픔은 없을지도 모른다. 그저 해주어야 해서 뱃속에 음식물을 넣어주는 것이다. 사람들은 허기를 느끼기보다 의무에 의해서 뱃속에 음식물을 집어넣는다. 서정(敍情)은 죽었으니 음식물을 섭취하는 것은 생존에 필요해서 할 뿐이라는 강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그런데 배는 고프지 않아요?”라고 묻자 그녀는 잃어버렸던 무엇인가를 찾는 듯, 밥을 먹으러 가자고 했다. 마을회관에 전시된 사진 속에 그녀는, 그녀의 나머지를 버리고 나왔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다시 내 손을 이끌었고 목적지도 없는 곳을 향해 걸었다. 날이 더 차가워진 듯했다. 마을회관으로 들어갈 때 떠 있던 태양이 구름에게 잠식되었고 날은 잿빛 가득한 우중충한 날로 변해 있었다. 저 먼 해풍이 몰려와 짠 내 나는 바람이 느껴지면 더욱 움츠러들었다. 그녀가 버린 이름과 민증번호와 주소는 각각 다리 밑의 강물에 버려져서 떠내려가 버렸고. 건물과 도로 위로 날아가 버리고, 외설스럽게 생긴 차에 치여 없어져 버렸고 또 하나는 까마귀들의 밥으로 없어져 버렸다. 프루스트는 한 생명이 태어나면 하나의 세계의 열린다고 했는데 그녀는 하나의 세계만 죽여 버렸다. 살아있는 생명은 살아있는 게 아니었다. 그녀는 마을 회관을 나오면서 얼굴이 달라져버렸다. 그녀는 이 시간까지 지나오면서 꽤 여러 가지를 깨끗하게 차곡차곡 버렸다. 마지막으로 마을회관의 전시된 사진 속에 그녀는 그녀의 모든 것을 버렸다. 그녀의 손은 아무리 잡고 있어서 차가웠다. 더 이상 따뜻해지지 않았다.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 손가락을 조금 움직였다. 그녀의 닫혀버린 문틈으로 어떻게든 들어가려고 했다.


 나는 손가락에 주문을 걸었다. 제발, 제발 그녀의 틈으로 들어가라고. 주문이 힘을 발휘했을까.


 그녀의 손을 통해 그녀는 아직 버리지 못한 것이 있다는 것을 확신했다. 단물을 전부 빨아먹었다고 생각했지만 아직 조금 단물이 남은 추잉 껌처럼 모두 버리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확실하지 않았다. 그녀는 아직 버리지 않고 간직하고 있는 것이 있었다. 내가 그녀와 같은 공동체로 남아서 그 남아있는 것들을 지켜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살아있기에 가능하다. 고독도 버려진 감정도, 이 모든 것이 살아 있기에 알 수 있다.


 “아, 저기 들어가자, 칼국수집이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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