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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Jul 30. 2022

바람이 불어오면 34

소설


34.


 그녀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은 6세 정도 아이가 그려 놓은 듯한 간판이 붙어있는 식당이었다. 우리는 어느새 읍내로 보이는 곳까지 걸어왔다. 2차선 도로를 사이에 두고 낮은 건물이 일렬로 죽 열중쉬어 자세로 붙어있었으며 그 건물 속에는 여러 상점들이 터를 잡고 있었다. 상점 속에는 역시 노인들이 들어앉아 있었고 그들의 표정에는 아무것도 읽어 낼 수 없었다. 모든 풍경이 교통사고를 통해 떨어져 나간 살점들처럼 붉고 지치고 흉해 보였다. 건물은 세월과 풍파에 낡았고 눈이 내려 모든 풍경을 하얗게 덮어서 더 쓸쓸했다. 도로에는 자동차들이 드문드문 오고 갔다. 동네의 개들도 프란시스코 고야의 개처럼 불안한 모습으로 급작스레 와버린 눈 속에 꼬리를 내리고 슬금슬금 다니고 있었다. 우리는 도로를 건너 칼국수집으로 들어가서 칼국수를 한 그릇씩 주문했다. 조미료의 격한 냄새는 그녀의 허기를 조금 깨워주는 모양이었다.


 그녀 앞에 놓인 칼국수 그릇은 다가갈 수 없는 세계처럼 커 보였다. 그녀는 나무젓가락을 찢으며 나에게 미소를 지었다. 미소는 예전 같지 않았다. 미소를 잃지 않으려 애쓰며 그릇을 앞으로 당신 다음 머리카락을 쓸어서 귀 뒤로 넘겨 칼국수를 조금씩 먹었다. 한 가지의 이유를 가지고 칼국수에 들어간 조미료는 칼국수에 여러 가지의 맛으로 퍼져 그녀의 입으로 들어갔다. 조미료는 아무런 맛이 나지 않는 밀가루 면발을 자꾸 입으로 들어가게 하는 마력을 지니고 그녀로 하여금 젓가락질을 자꾸 하게 만들었다. 칼국수와 국물이 들어가니 몰랐던 뜨거운 김이 체내에서 올라오는 느낌이 들었다. 이 뜨거운 김은 그녀의 바닥에 남아있던 잔재가 불에 타고 남은 연기처럼 느껴졌다.  속이 좋지 않았다. 그야말로 구토가 나올 것 같았다. 칼국수는 그녀가 태우고 남은 잔재의 자리에 가서 쌓였다. 소화가 되지도 않고 그 속에 그대로 굳어 버렸다. 거푸집을 만들어 그 속에 시멘트를 부어 넣듯 칼국수는 비워버린 그녀의 마음속에 억지스럽게 들어가서 불쾌한 쾌감을 만들었다. 그녀의 얼굴이 불콰해졌다.


 “만약, 만약 말이다. 날개를 파닥이는 벌레를 불에 태워서 재로 만들어 버린다면 어떨까?”


 그녀가 말했다. 나는 칼국수를 입에 넣고는 그녀의 얼굴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음식을 천천히 먹는데 나보다 칼국수의 양이 줄어들었다. 그녀가 공을 들여 조금은 전투적으로 칼국수를 먹었다.  


 “그러니까 말이야, 밟혀서 죽은 벌레는 그 형태가 남아있으니까 많은 사람들의 신발에 다리가 딸려가고, 머리가 딸려가고, 날개가 딸려가서 결국엔 산산이 흩어져 버리게 되잖아. 그럼 벌레의 영혼은 여러 개로 나뉘어서 이 사람 신발에도, 저 사람 신발에서 갈 것이고 신발을 빨아버리고 나면 벌레의 영혼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되잖아. 그렇게 생각을 하니 너무 딱한 생각이 들어서 말이야. 불에 태워서 재가 된다면 그 영혼은 적어도 여러 개로 나눠지지는 않겠지.”


 작은 어촌의 작은 칼국수집에서는 조미료의 맛에 흠뻑 젖어있는 칼국수를 과할 정도의 양으로 끓여 주었다. 아마도 타지에서 온 젊은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나 보다. 체육대학교 유도부 학생이 먹어도 배가 부를 양이었다. 그녀는 그 많은 양의 칼국수를 다 먹었다.


 “언젠가 칼국수를 한 그릇 다 먹고 마지막에 국물을 마신 후 크라, 하는 소리를 내보고 싶었어.”


 그녀의 얼굴은 거북함을 참지 못하고 찌푸렸다가 다시 돌아왔다. 괴로워 보였다. 허기진 배고픔보다 배부른 포만감이 더 고통스럽다. 그녀는 고통을 느끼려고 하는지도 모른다. 아마도 살아있다는 걸 실감하기 위해서 인지도 모른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잠시 밖으로 나왔다. 노인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약국으로 가서 소화제를 사 왔다. 앉아있는 그녀의 등 뒤로 괴로움과 긴장감, 잠깐이라지만 혼자라는 외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내가 건네준 알약과 활명수를 받아 들고 손톱으로 소화제 병의 종이를 만지작거렸다.


 “어서 드세요. 나중에 체해서 고생하기 전에.”


 한참 후에 그녀가 말했다. “아마 소용이 없을 거야. 끊어진 카세트테이프는 더 이상 못 쓰는 거야.”


 “잘 붙여서 그 뒤에서부터 들으면 돼요.”


 나는 나도 모르게 조금 큰 소리로 재빠르게 말을 해버렸다. 그녀가 들고 있는 소화제 병을 낚아채서는 뚜껑을 따고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그녀는 알약을 입에 넣고 소화제 병을 입으로 가져가서는 마시려다가 그만 눈물을 쏟아내고 말았다.


 지금까지 얼마나 참기 힘들었을까.


 눈물이라는 것은 그녀에게도 나에게도 예고도 없이 떨어졌다. 신도 알지 못했다. 장마가 기와지붕을 타고 내리듯 그녀의 눈물은 보이지도 않는 구멍을 기점으로 하여 뚝뚝 떨어졌다. 그녀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크고 깊은 골을 가지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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