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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Aug 01. 2022

바람이 불어오면 36

소설


36.


 오기는 할머니의 어깨를 감싸 안고 집 안으로 들어가. 오기는 변변찮은 할머니의 식탁을 보고 밖으로 나와서 가게를 찾았어. 그리고 가게에서 닭 요리와 야채수프, 감자 샐러드 한 바가지와 초콜릿 케이크를 사들고 와서 할머니와 식사를 해. 생전 음식을 차려본 적이 없던 오기가 할머니의 식탁에 음식을 차리는 소리와 냄새가 할머니에게 전달되는 거야. 할머니의 마음이 따뜻해져. 그리고 오기는 할머니는 식탁에 앉히고 할머니 접시에 닭 요리를 잘라서 올려줘. 그 장면이 마음을 건드렸어. 닭 요리는 한 눈에도 보잘것없는 요리였지만 오기가 뜨겁게 닭을 데워서 들고 오니 그런대로 괜찮아 보였어. 할머니에게 와인도 한잔 부어주고, 두 사람은 크리스마스 만찬을 즐기는 거야. 할머니가 오기에게 질문을 하면 오기는 대답을 했고 할머니는 몹시 기뻐하며 웃었지. 큰 소리로 말이야. 나는 그 부분을 보면서 눈물이 흐르는 것을 멈출 수 없었어.”


 그녀는 어딘가를 한 번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곳을 보려는 의지는 없었다. 그저 하나의 행동이었다.


 “전혀 눈물이 흐를 장면이 아니었는데 눈물이 흐르는 거야. 오기는 알고 있었어. 할머니가 자신이 로버트가 아니라는 사실을. 그럼에도 두 사람은 무언의 연대로 그날의 크리스마스를 아주 즐겁게 보내는 거야. 오기는 화장실에 가려고 잠시 일어나서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는데 화장실 선반에 포장도 뜯지 않은 카메라가 여러 대 있는 것을 발견해. 로버트가 그동안 훔쳐놓은 카메라였어. 오기는 자신도 모르게 그중에 한대를 주머니에 넣었어. 오기는 자신도 왜 그렇게 했는지 몰라. 생각하기에보다는 그저 그렇게 해야만 했어. 식탁으로 돌아오니 할머니가 그새 곤히 잠들어 있는 거야. 오기는 주머니에게 굿윈의 지갑을 꺼내서 테이블에 올려놓고 조용히 나와. 오기는 카메라를 사용하지 않았지. 그리고 몇 달인가 후에 할머니를 찾아서 또 한 번 그 집으로 가. 그런데 할머니는 그 집에 없었어. 아마도 애슬 할머니에게 오기와 보냈던 크리스마스가 마지막 크리스마스였겠지. 훔친다는 것이 무엇인지, 준다는 것과 거짓말을 한다는 것과 진실된 것이 무엇인지 정확한 것은 어디에도 없었어. 우리는 흔히 ‘절대’라든가 ‘영원’이라는 말을 사용하지만 현실은 그런 관념이 실제로 존재하지는 않거든. 나는 말이야 애슬 할머니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어.”


 그녀가 이야기를 끝냈을 때 그녀는 추위에 입을 덜덜 떨었다. 나는 야상을 벗어서 그녀에게 덮어 주었다. 야상을 벗는 순간 바닷바람이 칼날이 되어 뼈마디까지 건드렸다. 그녀는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차가운 공백이 나와 그녀 사이에 있었다.


 “아기를 지웠어. 나에게 조금 버거운 일이었어. 내 속에 있는 중요한 무엇인가가 몽땅 빠져나가 버린 느낌이야. 다시는 채울 수 없는 마음이 너무 아프고 허전했어. 그래서 날 찾아갔던 거야.”


 나는 그저 “네”라고 대답했다.


 나는 어쩌자고 눈 구경이나 한답시고 밖으로 나간 것일까. 그녀가 나를 찾아왔는데. 그녀가 힘들어서 나를 보러 온 것인데. 나는 눈 구경을 하러 나가서 몇 시간이나 거닐다 들어온 나를 책망했다. 새벽에 나가지만 않았어도 그녀를 몇 시간 더 일찍 볼 수 있었을 텐데.


 “벌레가 된 느낌이 들어. 그래도 벌레는 앞을 보며 날아가지만 난 앞이라는 게 깜깜해졌어. 없어진 것 같아.”


 그녀는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덤덤하게 말을 했다. 그리고 테트라포드에 올라가서 먹은 칼국수를 그대로 전부 토했다. 칼국수는 모양이 변하지 않은 채 하얀 김을 내며 바다 밑으로 떨어졌다. 잔잔한 파도였지만 테트라포드 밑의 물살은 급물살을 탔으며 너울거림이 그녀가 뱉어낸 칼국수를 말끔히 삼켜버렸다.


 “때때로 어떤 식이든 어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까지 말을 하고 그녀는 다시 허리를 구부렸다. 나는 그녀의 등을 슬슬 문질러 주었다. 등은 며칠 새 마를 대로 말라있었다. 작아 보이는 몸집이었는데 손끝으로 느껴지는 몸은 생각보다 작았다. 칼국수는 그녀 속에서 숨 쉬는 기능을 제외하고 다 먹어버린 듯했다. 먹은 소화제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아마도 그녀는 며칠 전부터 먹은 음식이 소화가 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나는 발갛게 물든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녀의 아픔이 내게 오기를 바라듯이. 그녀의 손은 얼음장 같았다.


 “그래도 당신은 당신 자체로 존재하니 가능성을 좀 믿어 보는 게 어떨까요. 저도 당신의 곁에 있고 또…….”


 “너에게 정말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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