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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Aug 15. 2022

라디오를 켜봐요 6

소설


6.


  내가 가장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이 사무실의 그녀이기 때문에 사무실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뿐이지만 그때는 몹시 편안한 마음으로 대화를 하게 된다. 꼭 어린 시절에 걱정 없이 노는 것과 비슷했다. 부모들이 전셋값이나 월세를 올려달라는 주인집에 의해 다음 달에 쫓겨나야 하는 불안감을 지니는 것과는 다르게, 아이들은 하루하루가 재미있고 즐겁다.


 그녀와 사무실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그런 기분이 들었다. 그런 기분이 그녀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의 연결로는 되지 않았다. 이상하지만. 그녀는 일주일에 한 번은 나와 사무실에서 점심을 먹었다. 노사화합이라는 취지에서. 참기름 냄새가 고소하게 흐르는데 그녀의 향이 그 사이를 파고들었다.


 보통 오전에 그녀는 거래처에 가지만 오늘은 오전에 사무실에 있었다. 오전에 틀어 놓은 라디오에서 사연이 흘러나왔다.


 [연애를 시작한 후배가 전화기만 노려보고 있었어요.

남자 친구의 전화를 기다린다면서요.

그러지 말고 먼저 전화해보지 그러냐 하니까,

지난번에 자신이 먼저 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못한다고 하더라고요.

연애에서는 마음을 많이 주는 사람이 지는 게 후배의 생각이었습니다.

연애는 머리보다는 마음 쓰는 일이잖아요.

머리 쓰는 일에 마음 쓰고, 마음 쓰는 일에 머리 쓰고 살고 계시진 않나요?

푸른 오월의 시작입니다.

금요일 정주연의 상쾌한 아침입니다]


 “오빠, 오전의 그 라디오 사연 어떻게 생각해요?” 점심을 먹으면서 그녀가 물었다. 사무실에 배달시킨 음식은 비빔밥이었다. 나는 ‘무슨?’ 같은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왜 있잖아요? 연애하는데 마음 쓰는 일에 머리 쓰고, 머리 쓰는 일에 마음 쓰며 살고 있냐고 하던 사연이요.”


 나는 가만히 비빔밥을 먹었다. 생각해보지 않았다. 아니 생각을 너무 해서 생각이 없어졌다.


“오빠. 우리 오늘 저녁도 같이 먹을래요? 에스 키친에 예약을 할게요. 어때요?” 회식을 하자는 소리다. 그곳은 고급 식당으로 맛있기로 소문이 자자한 곳이다. 회식이 있었지만 회식이 있는 당일에 통보를 받은 적은 그동안 없었다. 보통 내일 저녁을 같이 먹자고 사무실에서 그녀가 말을 하면 그것이 회식이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 거래처 사람이 늘 껴 있었다. 분위기는 대체로 좋았다. 그래서 오늘도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그녀가 예약을 한 테이블은 두 사람이 앉을 수 있는 자리였다. 게다가 전망까지 좋았다. 연어 전문 식당으로 연어 수프가 먼저 나온 후 연어 샐러드, 연어 초밥, 연어구이, 연어 스테이크가 계속 나왔다.


 그녀는 와인을 주문했다. 꽤 비싸 보이는 와인이었다. 그녀는 평소 회식을 하면 많이 먹는 것에 비해 오늘은 입이 짧았다. 덕분에 와인은 빠른 속력으로 줄어들었다. 그녀는 30분 동안 얼추 와인 한 병을 다 마셨다.


 “오늘은 어쩐 일이야?”라고 내가 물었다. 그녀는 연어 수프를 떠먹고 와인을 또 마셨다.


 “오빠, 내가 어릴 때 부모님은 늘 싸웠어요. 저와 친오빠와 동생은 부모님이 싸우면 알아서 놀아야 했어요. 나는 엄마와 아빠가 싸우면서 하는 이야기를 다 알아들을 수 있었어요. 오빠는 나보다 나이가 많았지만 부모님이 싸움을 해도 그저 장난감을 가지고 놀 뿐이었고 나는 동생을 안고 방구석에 가만히 있었죠.”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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