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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Aug 31. 2022

라디오를 켜봐요 22

소설


22.


 “그 다음에 어떻게 해?”


  에어컨의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운전을 한 효상이가 물었다. 우리는 치론이가 지시하는 대로 비막이 안에서 휴대 버너를 설치하고 버너에 물을 붓고 라면을 끓였다. 버너가 세 대가 있었고 두 군데에서 라면을 끓였고 김치도 넣었다. 나머지 버너에서는 밥을 했다. 치론이는 버너 뚜껑 위에 돌을 올렸다.


 “이 돌은 뭐야?” 내가 물었다.


 “몰라, 보이스카우트 때 배웠어. 이제 한 번 써먹어 보는 거야.”라며 치론이는 웃었다. 치론이의 웃음은 막막하기만 한 상황을 환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 웃음 하나로 인해 친구들과 나는 비와 에어컨으로 얼어붙은 몸이 녹는 듯했다. 라면은 그동안 먹어본 라면 중에서 제일 맛있었다. 푸릅푸릅하며 몇 번의 젓가락질만에 라면은 전부 사라졌다. 시동은 끄지 않고 음악을 틀어 놨다. 폭우 때문에 음악 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지만 운치가 있었다.


 “보통 이럴 때 라디오를 들어야 하지 않아?”


  후루룩 하며 국물을 마시는 소리가 들렸다.


 “라디오?”


  후루룩 하며 밥을 말아먹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 라디오를 들어야 주왕산 안으로 깊게 들어갈지 말지 알 수 있을 거 아니야?”


  후루룩 하며 국물과 밥을 먹는 소리가 들렸다.


 “그냥 음악 듣자, 지금 좋잖아.”


  후루룩.


 “밥 더 넣어, 아니 다 넣어.”


  모두 걱정은 물리고 라면 국물에 갓 지은 밥을 그대로 말아서 퍼먹었다. 뜨거워서 입을 다물 수 없었다. 행복한 순간이었다. 배가 부르니 폭우고 뭐고 조금은 잊게 되었고 모든 풍경이 약간은 낭만적으로 보였다.


 하지만 행복의 순간은 짧았고 라디오를 듣지 않은 우리 자신을 속으로 맹비난했다. 현실은 걱정이라는 거대한 검은 구름을 몰고 왔다.


 “비가 이렇게 많이 오니까 주왕산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치우자. 우리 과에 영덕인가? 영해인가? 그곳에 살고 있는 친구가 있거든, 나와 같이 연주를 해서 비교적 친하게 지내는 놈이야. 주왕산을 제외하면 여기 지리를 알고 있는 사람이 없으니까 그 친구에게 연락을 해서 지낼 만한 곳을 물어볼게. 어쩌면 그 녀석 집에서 묵을 수도 있고 말이야. 그 녀석의 고향 이야기를 들으면 꼭 세상에 없는 소설 속 같았거든.”


  상혁이가 음대에서 같이 연주하는 친구의 이야기를 계속했는데 괴짜 같은 놈이라는 결론에 닿았다. 우리는 지도를 열어서 영덕과 영해를 찾았다. 지도는 금세 비의 침공을 받았다. 우리가 있는 주왕산에서 영덕까지도 꽤 먼 거리였고 영덕과 영해도 먼 거리였다.


 영해는 지도상으로 바다와 가까워 보였지만 지도에 속으면 안 된다.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보며 영덕으로 가서 상혁이 친구에게 연락을 하기로 했다. 지금은 폭우를 피하는 게 우선이었다. 비가 얼마나 오는지 버너 속에 빗물이 다 들어갔고 우리는 큰 비막이 안에 있었지만 얼굴도 옷도 다 젖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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