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소설

by 교관


11시 전에 잠이 들면 7시에 일어나기 번에 두 번은 잠에서 깨어났다.


언제부터 그랬는지(오래됐다) 알 수는 없지만 기계적으로 두 번 정도는 깨어나는 것이다.


어제 눈을 떴을 때 새벽 2시 36분, 오늘 눈을 떴을 때 새벽 2시 36분이었다.


무의식의 작용.


눈을 뜨고 아, 잠에서 또 깼구나 싶으면 반사적으로 일어나서 냉장고의 물을 마셨다.


주방의 테이블에 먹다 남은 머핀이 있으면 반쯤 감긴 눈으로 베어 먹기도 했다.


마치 좀비처럼 하나의 의지만 가지고 등이 구부러진 채로 머핀을 우물거리다가 아, 이를 헹구지 않으면 이가 썩어 버리겠는 걸, 하는 생각에 양치질할 엄두는 내지 못하고 물을 한 모금 입에 넣어서 우물우물 갸르르르 헹구고 잠자리에 들었다.


어떤 날은 테이블 위의 쌀 과자를 우걱우걱 씹어 먹었다.


물로 우물우물 갸르르르.


어떤 날은 아삭한 야채가 있으면 입에 넣었다.


물로 우물우물 갸르르르.


또 어떤 날은 먹다 남은 닭백숙의 닭다리 하나를 뜯어먹었다.


물로 우물우물 갸르르르.


38시간 잠을 못 자고 일을 하고 들어와서 폭력적인 수마에 그대로 끌려간 날에도 어김없이 새벽에는 두 번 정도 일어났다.


새벽 2시 37분. 그리고 4시에 한 번 더 일어났다.


새벽 4시는 뭐랄까.


커피를 마시기엔 너무 이르고, 술을 마시기엔 너무 늦은 시간이다.


들어오고 나가는 사람들이 교차하는 시간이 새벽 4시다.


나는 그러한 시간에 구부정하게 일어나 냉장고의 물을 시작으로 무엇인가 테이블 위 소량의 음식을 야금야금 먹어치운다.


뭐랄까.


아무도 살지 않는 나의 집에 마치 누군가가 나의 그러한 습성을 아는지 언제나 테이블에는 소량의 먹을 것을 올려놓은 것 같다.


닭백숙 같은 경우 분명 먹다 남은 백숙을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


그러나 새벽에 일어났을 때 온도가 차갑지 않은 백숙의 닭다리가 그릇에 담겨 있었다.


그렇게 인지부조화 속에서 넋 나간 너구리처럼 앉아서 무엇을 먹고 있으면 나는 정말 살아있다는 걸 느꼈다.


데친 시금치처럼, 시체처럼 푹 잠이 들어 있다가도 새벽 2시나 4시 즈음에 일어나면, 아 내가 아직 잘 살아있구나, 이렇게 잠을 자다가도 일어나서 무엇인가를 먹을 수 있군, 흠. 하며 나 자신에게 격려까지 아끼지 않았다.


그리하여 꿋꿋하게 몸속의 여러 신경이 잠에 빠진 자를 무의식적으로 깨우곤 했다.


그날도 새벽 2시 35분에 눈을 떴다.


일어나서 식탁 위로 갔다.


하지만 음식이 없었다.


이상하다.


냉장고의 문을 열었다.


냉장고 안은 아무것도 없었다.


음식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그야말로 (없을) 무였다.


알 수 없는 회색의 공간만이 냉장고 안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냉장고의 냉각기가 한번 돌아가는 듯하더니 검은 그림자가 하나 나타났다.


그것을 그림자라고 설명하기에는 애매했지만 무엇이라고 정의를 해야겠기에 그림자라 하겠다.


그 그림자는 너구리의 모습처럼 보였다.


그림자가 일어나더니 나를 쳐다보며 말을 했다.


이봐, 넌 그동안 먹지 멀아야 할 것들을 너무 많이 먹었어. 그렇게 먹어대는 동안 너의 그림자는 점점 없어져 간 거야. 아주 희미해진 그림자는 이제 완연히 너의 몸에서 떠날 거야. 그림자가 너의 몸을 떠나면 말이지, 넌 기억이란 걸 완전히 잃어버리게 된다구.


기억을 잃어버린다는 게 무슨 뜻일 것 같나?

일 년 전의 기억, 한 시간 전의 기억도 지나고 나면 완전무결하게 잃어버리지.

잊어버리는 거와는 다른 거라구.


나는 하루 뒤 희미한 그림자가 사라져 버렸고 지금은 기억이라는 것이 없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볶음밥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