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위의 시 간 3

소설

by 교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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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슬픔을 가득 짊어지고 있었다. 기쁜 슬픔을 온몸 구석구석 꽉꽉 채우고 있는 사람을 나는 처음 봤다. 처음 만났을 때 그 슬픔이 나에게 그대로 전해져 왔다. 가늠할 수 없는 깊이의 고독을 지닌 그녀는 슬픔으로 하여금 나를 그녀의 곁으로 가게 만들었다.


그녀의 슬픔은 그녀 자신이 아닌, 타인이 만들어 놓은 것이 분명했다. 그녀는 말이 없었다. 나 역시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우리는 동시에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상대방의 커피 잔을 만지작거리는 손가락에 시선을 두고 한참을 있을 뿐이었다.


그녀가 커피 잔을 들어 커피를 마셨다. 나도 커피를 마셨다. 오른팔은 누가 봐도 불편해 보였고 왼손으로 커피 잔을 들어 올리는 것도 불편해 보이는 그녀였다.


카페 안은 난처할 만큼 따뜻했고 12월의 눈이 내리는 모습이 유리창 너머로 보기 좋게 비쳤다. 겨울의 불투명한 광채는 모순된 차가운 따스함을 머금고 유리벽을 투과하여 그녀에게로 내려앉았다.


고독하고 조용한 풍경이었다. 멈춰버린 시간 속에 우리는 빛의 소자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앉아 그대로 화석이 되어 버린 것 같았다. 불투명하게 반짝거리는 빛만이 카페 안에서 천천히 이동하고 있었다.

“벽을 좋아하세요?”라고 만난 지 50분 만에 그녀가 억양 없이 물었다. 그녀가 내뱉는 말은 말소리처럼 들리지 않았다. 오래되어서 없어져 버린 옛사람들의 언어 같았다. 커피는 조금씩 따뜻함을 잃어 어느새 식어빠진 커피가 되었다.


“전 제가 만든 벽을 좋아해요. 그 벽은 가위가 없으면 만들어지지 않아요. 저는 그 벽 너머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좋아요.” 그녀는 식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말을 했다. 역시 억양이 없었다. 손가락에 가위의 상처가 가득했다. 얼핏 보기에 그 상처들 중에는 일부러 낸 상처도 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청각에 문제가 있었고 나와도 대화를 하다, 라는 것에서 조금씩 멀어지게 되었다.


언제인가부터 그녀의 청각은 배추벌레에게 조금씩 잎이 먹히듯 소멸되어갔다. 청각에 문제가 생기고 나서 연관성은 전혀 없음에도 그녀의 오른팔은 거짓말처럼 굽어져 펴지지 않았다. 오래전 작고 조그마했던 어린 그녀는 오랜 시간 동안 아이들에게 놀림을 당해야만 했다. 인간은 자기와 다른 사람에게는 무서울 정도로 냉정하고 매몰차게 대했다.


그녀는 슬픔을 고독이라는 매개를 통해서 이겨냈다. 벽을 하나씩 쌓아 올렸고 그 안의 세계로 들어가 지냈다. 벽의 세계로 들어가기 전까지 뒤에서 수군거림과 간섭은 귀로 들리지 않는 대신 몸으로 타고 들었다. 그런 그녀의 유일한 친구이자 돌파구는 고독을 같이 지낼 수 있는 가위였다. 가위를 들고 종이를 오리고, 천 조각을 오리고 이어 붙이고 무늬를 만들고 형태를 만들어가며 그녀는 칼날 같은 시간을 견뎌 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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